사진: Unsplash의 JHANY BLUE
처음 던진 질문으로
열여덟 날 전, 첫 질문을 던졌다. 다음 부산은 왜 부산이어야 하는가.
그때 이렇게 적었다. 부산은 곧 다음 시장을 뽑는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를 뽑는지만 이야기하고, 어떤 부산을 뽑는지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오늘이 바로 그 선거날이다. 열일곱 개의 질문을 지나 우리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이 글은 답을 주려는 게 아니었다. 질문을 정리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열일곱 편을 지나고 보니 질문들 사이로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적는다.
열일곱 편은 하나였다
질문들은 흩어져 보였다. 청년은 왜 떠나는가, 바다는 부산의 무엇인가, 왜 게이트웨이가 되지 못하는가, 부산은 무엇을 측정하지 않는가, 누구를 부산 사람으로 알아보는가, 어떻게 사람을 기르고 모으고 잇는가, 어떻게 쌓는가.
그런데 열일곱 편을 지나고 보면, 그 다른 질문들이 하나의 줄기로 모인다. 신뢰다. 부산이 측정하지 않은 것은 신뢰였고, 알아보지 못한 것도 신뢰였고, 떠난 사람과 끊긴 것도, 한 사람과 함께 사라진 것도 모두 신뢰였다. 부산에 없던 것은 자원이 아니었다. 자원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아 신뢰로 만드는 일, 그것이 없었다.
그리고 신뢰는 한 가지 일에서 시작된다. 알아보는 것이다. 누가 무엇을 잘하는지, 누가 진짜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일. 거기서 신뢰가 자라고, 신뢰가 쌓여 제도가 되고, 제도는 사람을 넘어 남는다. 열일곱 편은 그 한 줄기의 다른 얼굴들이었다.
다음 부산은 알아보는 부산이다
그러니 처음의 질문에 이제 답할 수 있다. 다음 부산은 무엇인가.
다음 부산은 사람을 알아보는 부산이다. 항만의 순위도, 예산의 규모도, 새로 짓는 건물도 아니다. 그런 것은 다른 도시도 가질 수 있고, 어떤 것은 부산보다 더 잘 가졌다. 그러나 부산에 와서 무언가 만드는 사람을 알아보고, 그 알아봄을 신뢰로, 신뢰를 사람이 바뀌어도 남는 제도로 쌓는 일. 이것은 순위로 살 수 없고 예산으로 지을 수 없다. 그래서 이것이야말로 부산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단 하나가 된다.
첫 글에서 물었다. 다음 부산은 어제의 향수로 만든 박물관인가, 오늘의 빌더가 일하는 도시인가, 내일 누군가 도착해 머무는 항구인가. 이제 답한다. 알아보는 부산은 그 셋을 하나로 만든다. 빌더를 알아보기에 그들이 일하고, 도착한 사람을 알아보기에 그들이 머물고, 그렇게 쌓인 것이 다음 세대에게 박물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도시로 건네진다.
도시에 남는 마지막 일
여기서 한 가지는 정직하게 적어야겠다. 왜 하필 지금, 알아봄인가.
지금은 점점 더 많은 일이 도구로 넘어가는 시대다. 측정하고, 기록하고, 분석하고, 연결하는 일. 한때 사람만 하던 그 일들을 이제 도구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한다. 도시가 자랑하던 효율도, 데이터도 곧 어디서나 같아질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끝까지 도구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일이다. 누군가의 눈을 보고 이 사람은 진짜다를 아는 것, 그 사람에게 곁을 내주고 신뢰를 거는 것. 이것은 측정되지 않고 자동화되지 않는다.
그러니 모든 것이 같아지는 시대에 도시를 다르게 만드는 것은 오직 이 마지막 한 가지다. 부산이 이것을 자기 일로 삼는다면, 부산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남들이 못 가질 것을 가져서 다른 도시가 된다.
부산에서
열여덟 개의 질문을 던지며 답을 다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부산은 그동안 너무 많은 좋은 것들을 흘려보냈다. 사람을, 기회를, 쌓일 뻔한 신뢰를.
이번엔 다르기를 바란다. 알아보고, 신뢰하고, 제도로 쌓아 흘려보내지 않기를.
그것은 한 번의 선거로 되지 않는다. 누가 당선되든, 그날 이후 매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도시는 그렇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알아보는 일에서 다시 시작된다.
부산에서 시작한다. 부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엔 흘려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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