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윤슬 ·소프트 그라데이션 에어브러시
나는 이 매체를 만들면서 네 명의 칼럼니스트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서 왜 진짜 큰 게 안 나오는가. 빠른 추격도 있고, 인재도 있고, 정부 지원금은 매년 늘어난다. 그런데 글로벌 빅테크급은 안 나온다. 네 사람은 네 방향으로 답을 가져왔다. 오늘은 그걸 한자리에 앉히고, 내가 한쪽 편을 들겠다.
"엑싯요정"부터 보자. 그는 출구가 막힌 게 원인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괜찮은 기술 회사를 만들면 구글이든 메타든 누군가 사 간다. 창업자는 다음 판으로 넘어가고, 직원들은 현금화한 경험과 자본을 들고 또 창업한다. 한국은 대기업이 사 주지 않는다. 사느니 베껴서 직접 만든다. 그러니 창업자는 처음부터 작게 설계한다. 팔릴 수 없는 회사는 크게 지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맞는 관찰이다.
"연준이형"은 자본 비용의 비대칭을 말한다. 미국 창업자는 10년을 버티는 인내 자본을 받는다. 적자를 깔고 시장을 통째로 먹을 때까지 돈이 따라온다. 한국 자본은 그만큼 길게 못 기다린다. 모태펀드 만기가 있고, 회수 압박이 있고, 실패한 창업자에게 두 번째 기회가 인색하다. 같은 야망이라도 자본의 시간이 짧으면 야망의 크기도 깎인다. 이것도 사실이다.
"0과 1 사이"는 더 차갑게 본다. 한국 회사들은 대부분 남의 플랫폼 위에 짓는다. 앱은 애플과 구글의 스토어 위에, 클라우드는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위에, 모델은 오픈AI 위에 올린다. 세입자는 아무리 잘 꾸며도 건물주가 아니다. 통행료는 위로 빠져나가고, 규칙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사업이 흔들린다. 남의 배관 위에서는 아무리 키워도 결국 임차인이라는 것이다.
"원화방어선"은 통화의 한계를 든다. 한국은 5천만 내수에 기축통화도 아닌 작은 통화권이다. 미국 회사는 자국 시장만으로 빅테크가 되고 달러로 자금을 조달한다. 한국 회사는 처음부터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환 리스크와 자본 조달 비용을 동시에 짊어진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이다.
넷 다 옳다. 그런데 넷을 다 옳다고 두면 아무것도 못 한다. 그래서 묻는다. 어느 게 진짜 병목이고, 어느 게 그 병목이 만든 증상인가.
나는 "0과 1 사이"의 손을 든다. 진짜 병목은 우리가 거의 늘 남의 마당 위에 짓는다는 것이다. 나머지 셋은 거기서 흘러나온 증상이다.
생각해 보면 순서가 보인다. 남의 플랫폼 위에 짓는 회사는 애초에 인수 가치가 낮다. 핵심 자산이 내 것이 아니라 건물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기업도 사느니 베끼고, "엑싯요정"이 본 막힌 출구가 생긴다. 자기 배관이 없는 회사는 해자가 얕아서 장기 베팅의 대상이 못 된다. 그래서 "연준이형"이 본 짧은 인내 자본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깊은 해자가 없는데 10년을 기다릴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자기 플랫폼이 없으면 글로벌은 남의 채널을 빌려 나가는 수밖에 없고, 그 채널 비용이 곧 "원화방어선"이 말한 출발선 불리함을 키운다. 출구도, 자본의 시간도, 통화의 한계도, 따지고 보면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가지다.
| 세입자 | 건물주 | |
|---|---|---|
| 핵심 자산 | 남의 것 | 내 것 |
| 통행료 | 매달 위로 유출 | 내가 징수 |
| 규칙이 바뀌면 | 하루아침에 흔들림 | 내가 정한다 |
| 인수 가치 | 낮다 | 높다 |
네이버가 라인을 만들고, 쿠팡이 물류망을 깔고, 카카오가 메신저 위에 자기 생태계를 세웠을 때 우리는 잠깐 큰 걸 봤다. 공통점은 하나다. 그들은 세입자이길 거부하고 자기 마당을 깔았다. 반대로 남의 스토어, 남의 클라우드, 남의 모델 위에 올린 수많은 잘 만든 회사들은 끝내 임차인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한 수는 분명해진다. 정부 지원금을 또 늘리는 게 아니다. 자기 플랫폼을 가지려는 회사, 남이 쥔 배관을 한국이 직접 깔겠다는 회사에 자본과 인내를 몰아주는 것이다. 모델이든, 클라우드든, 결제망이든, 물류망이든. 세입자 100곳을 키우는 것보다 건물주 한 곳을 키우는 게 낫다. 증상 네 개를 따로 치료하지 말고 뿌리 하나를 건드려야 한다.
나는 이 결론에 내 매체의 방향을 건다. 앞으로 SOUTH BRIDGE는 잘 빌려 쓴 회사보다 자기 마당을 깐 회사를 먼저 쓰겠다. 누가 임차인이고 누가 건물주인지, 그것부터 구분해서 기록하는 게 내가 질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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