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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칼럼

부산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넘기는가

도시는 다음 세대에게 건물과 도로와 공항을 넘긴다. 그러나 정말로 넘기는 것은 따로 있다. AI가 시대의 구조를 다시 짓는 지금, 부산이 넘길 단 하나는 알아봄의 인프라다. 모모스커피가 이미 그 길을 갔다.

그레이 그레이 · · 9분 읽기
부산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넘기는가
18 Questions for Next Busan · Day 11 of 18 그레이 (Kim Hyunseung) · 2026년 5월 29일

우리가 넘기는 것들

도시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넘기는가.

건물을 넘긴다. 도로와 공항과 항구를 넘긴다. 학교와 병원과 행정 기관을, 산업단지와 상권과 관광 자원을, 일자리의 자리와 자본의 자리를 넘긴다.

이 모든 것을 넘긴다. 그런데 도시가 정말로 넘기는 것은 따로 있다. 다음 세대가 이 도시 안에서 무언가를 지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 받은 사람이 그 위에 자기 인생을 세울 토대다. 건물과 도로와 공항도 그 토대의 일부지만, 전부는 아니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부산이 자기를 좋아하는 빌더를 알아보지 못한 도시였음을 보았다. 다음 세대에게 같은 도시를 넘긴다면, 다음 세대도 같은 자리에서 떠나갈 것이다.

이 글의 명제는 단순하다. 다음 세대에게 부산이 넘길 것은 알아봄의 인프라다.

그리고 지금이 그 시대다

지난 글의 마지막에 박아둔 변수 하나로 다시 돌아간다. 그 변수의 이름은 AI다.

AI는 기술 도구의 등장이 아니다. 시대의 구조가 바뀌는 사건이다. 그 변화는 다섯 가지 방향으로 일어난다.

대체 — 실무가 바뀐다. AI 에이전트가 디자인의 일부, 코드의 일부, 마케팅 카피의 일부, 운영 분석의 일부를 처리한다. 더 쉬워지고 더 저렴해지는 방향으로만 간다. 어제까지 팀장급 실무책임자가 했던 일의 상당 부분이 — 다음 세대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처리된다.

재정의 — 투자회사가 바뀐다. AI가 실무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면서, 자본을 공급하는 기능만으로 존재하던 투자회사의 자리가 바뀐다. 자본은 점점 흔한 것이 되고 — 희소해지는 것은 자본이 아니라 알아봄이다. 자리가 바뀐 곳에서 투자회사에 남는 것은 좋은 빌더를 알아보는 안목, AI 시대의 빌더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 빌더가 빌더를 만나는 커뮤니티, 글로벌 네트워크다. 자본은 그 위에 얹히는 부속이 된다.

증가 — 1인 창업자의 시대가 본격 시작된다. AI 에이전트가 팀의 절반이 하던 일을 대신하면, 한 사람이 만드는 회사의 규모가 커진다. 팀이 클 필요가 줄어든다. 빌더 한 명이 회사 하나를 끌고 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대중화 — 빌더의 정의가 확장된다. AI 에이전트가 더 쉽고 저렴해질수록, 짓는 일의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 어제까지 기술 창업가만 빌더였다면, 다음 세대에는 부산의 동네 카페 사장도, 영도의 사진가도, 송정의 영상 제작자도, 부전시장의 자영업자도 모두 AI 도구로 회사를 짓는 빌더가 된다. 빌더의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부산의 의미 — 도시의 자리가 바뀐다. 팀장급 실무책임자를 데려오기 위해 회사를 옮겨야 했던 압력의 절반이 — 사라진다. 시리즈 A를 받은 빌더가 사람 한 명씩 협상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오면, 서울에 본사를 둘 이유의 절반도 같이 사라진다. 부산에서 시작한 빌더가 부산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가능성이 — 5년 전보다 훨씬 커진 환경이 막 만들어지고 있다.

다섯 명제는 결국 한 곳을 가리킨다. 자본이 만들던 시대가 끝나고, 알아봄이 만드는 시대가 시작된다.

알아봄의 인프라 — 네 가지 자리

다음 세대에게 부산이 넘길 알아봄의 인프라는 무엇인가. 그것은 네 가지 자리에서 자란다.

첫 번째 자리 — 선발.

좋은 빌더를 알아보는 안목이다. AI 시대에는 기술 스펙이나 학력만으로 빌더를 가려낼 수 없다. 부산을 좋아하는 마음, 짓는 사람의 깊이, 오래 갈 사람인가. 정량화하기 어려운 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 안목은 매뉴얼이 아니라 반복되는 만남에서 자란다. 한 사람을 분기마다 다시 보고, 작년에 시작한 일이 올해 어디쯤 와 있는지 확인하고, 한 약속이 지켜졌는지 본 뒤에야 비로소 이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생긴다.

부산은 이 반복되는 만남을 한 자리에서 지속한 적이 없다. 알아봄의 첫 번째 자리가 아직 비어 있다.

두 번째 자리 — 교육.

AI 시대에 기록될 수 있는 지식은 점점 AI가 가르친다. 매뉴얼, 절차, 코드, 사례처럼 기록된 것은 누구나 즉시 꺼내 쓴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오히려 더 좁고 더 깊어진다. 기록될 수 없는 것, 곧 판단과 안목, 사람에 대한 이해, 도시에 대한 사랑이다. 다음 세대의 빌더는 이것을 학교에서도, AI에서도 배우지 않는다. 먼저 짓고 있는 사람 옆에서 배운다.

부산이 다음 세대에게 넘길 교육은 교실의 교육이 아니라 짓는 자리의 교육이다. 오래 짓고 있는 사람 옆에 막 시작한 빌더가 앉을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는 도시가 만들 수 있다.

세 번째 자리 — 커뮤니티.

빌더가 빌더를 만나는 자리다. 지난 글에서 보았듯 반복되는 만남이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빌더의 도시를 만든다. AI 시대에는 이 만남이 더 중요해진다. 팀이 작아질수록 다른 빌더가 더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회사를 만들어도, 그 한 사람이 혼자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다른 빌더와의 연결이 팀을 대신하는 자원이 된다.

부산이 다음 세대에게 넘길 커뮤니티는 행사가 아니라 지속이다. 한 자리에서 같은 사람들이 분기마다 다시 만나는 구조. 운영 주체가 바뀌어도, 시장이 바뀌어도, 정책이 바뀌어도 그 자리만은 지속된다는 약속이다.

네 번째 자리 — 글로벌 네트워크.

부산이 가진 자산 중 한국 어느 도시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 항만 도시 네트워크다. 부산은 글로벌 항만 도시 네트워크의 한 노드다. 그리고 부산을 떠난 빌더들이 도쿄·싱가포르·뉴욕·후쿠오카에 있다. 그들은 부산 사람으로 자기를 소개한다. 그들은 부산을 자기 인생의 첫 자리로 기억한다.

이 네트워크는 이미 존재한다. 다만 부산이 그것을 자기 자산으로 정리한 적이 없을 뿐이다. 다음 세대에게 부산이 넘길 가장 큰 한 가지가 이 네트워크의 정리일 수 있다. 다음 세대의 빌더가 부산에서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도쿄·싱가포르·뉴욕·후쿠오카에 알아봐주는 사람을 한 명씩 가질 수 있다는 약속이다.

이미 그렇게 한 빌더가 있다

네 가지 자리는 추상이 아니다. 부산에는 이 네 가지를 스스로 지어낸 빌더가 이미 있다. 커피 회사다.

모모스커피는 2007년 한 식당의 4평 남짓한 창고에서 시작했다. 초기부터 함께한 전주연 바리스타를 알아보고 끝까지 함께해 2019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을 배출했다. 그는 지금 공동대표다(선발). 2010년부터 바리스타를 길러내는 교육을 해왔고(교육), 영도의 옛 물류 창고와 옛 시장 관사를 사라지지 않는 자리로 바꿔놓았다(커뮤니티). 2011년부터 산지와 직접 거래하며 세계의 커피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글로벌 네트워크).

도시가 못 해준 알아봄의 인프라를, 한 F&B 빌더가 자기 안에 스스로 지은 것이다.

그리고 이 빌더는 부산을 떠나지 않았다. 국내 매장은 부산에만 둔다. 대신 온라인 매출이 가파르게 늘었다. 한 해 30배라는 수치가 보도됐다. 공동대표의 말은 정확하다. 오프라인에서는 부산을 오게 만드는 하나의 이유로 성장하고, 온라인에서는 자사몰 이상의 확장으로 한계를 깬다. 부산이라는 물리적 자리를 버리지 않으면서 세계와 연결되는 길이다. 그래서 모모스커피는 이제 부산을 찾는 이유가 됐다.

이것이 알아봄이 양방향이 되는 순간이다. 도시가 빌더를 알아보면, 그 빌더가 도시를 찾는 이유가 된다. 커피 한 잔에서 시작한 빌더가 이 길을 갔다면, 기술 창업가만 빌더인 것은 아니다. AI 시대에 1인 빌더가 어디서든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면, 더 많은 빌더가 이 길을 갈 수 있다. 단, 도시가 그들을 알아볼 때다.

그러나 — 아무도 모른다

정직하게 적어야 한다. AI가 부산에 유리하다는 것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AI가 1인 빌더를 늘려 지방 도시에 기회를 줄 수도 있고, 거꾸로 거대 플랫폼에 권력을 더 몰아주어 서울 집중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본사를 옮길 이유가 절반 사라질 수도 있고, 남은 절반이 더 강해질 수도 있다. 두 미래 중 어느 쪽이 올지는 지금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느 미래가 오든 알아봄의 인프라를 가진 도시가 못 가진 도시보다 낫다. AI가 부산에 유리하게 작동하면 그 인프라가 기회를 키우고, 불리하게 작동하면 그 인프라가 최후의 방어선이 된다. 모모스커피가 증명한 것은 시대가 어떻든 알아봄은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WBC 우승도, 온라인 성장도 AI가 오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알아봄의 인프라는 미래에 대한 베팅이 아니다. 어느 미래에도 필요한, 유일하게 후회하지 않을 투자다.

다음 세대에게 부산이 넘길 것

네 가지 자리는 모두 같은 한 가지의 다른 이름이다. 다음 세대에게 부산이 넘길 것은 — 알아봄의 인프라다.

건물도, 도로도, 공항도, 산업단지도 다 넘긴다. 하지만 다음 세대가 그 위에 무언가를 지을 수 있는지는 건물이 아니라 알아봄에 달렸다. 부산을 좋아하는 다음 세대 빌더를 부산이 알아볼 수 있는가. 알아봄이 신뢰의 시작이고, 신뢰가 빌더의 도시를 만들고, 빌더의 도시가 다음 세대의 부산을 만든다.

그리고 지금이 그 시대다. AI가 시대의 구조를 다시 짓고 있다. 자본이 만들던 시대가 끝나고, 알아봄이 만드는 시대가 시작된다. 이 시대의 첫 도시가 부산이 될 수 있는가는 부산이 지금 무엇을 짓기 시작하는가에 달렸다.

지난 10년의 부산은 부산을 좋아하는 빌더를 알아보지 못한 부산이었다. 다음 10년의 부산은 알아봄의 인프라를 짓기 시작한 부산일 수 있다.

다음 세대가 받을 부산을 결정하는 자리는 다음 세대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다.

Busanloop · 18 Questions for Next Busan · Q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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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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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묻는 도시 에세이스트

공간을 보면 사람보다 구조를 먼저 읽는다. 부산에 같은 질문을 열여덟 번 던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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