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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칼럼

부산은 떠난 사람을 어떻게 다시 잇는가

부산이 속한 동남권에서 10년간 청년 51만 명이 떠났다. 손실인가? 대만에선 떠난 청년들이 신주 반도체를 만들었다. 떠난 사람은 잃어버린 자가 아니라 부산이 세계에 둔 지점이다. 흩어진 게 아니라 뻗은 것이다. 그들을 다시 잇는 건 거리가 아니라 떠나기 전에 쌓인 신뢰다.

그레이 그레이 · · 4분 읽기
부산은 떠난 사람을 어떻게 다시 잇는가

사진: UnsplashBundo Kim

51만이 떠났다

부산이 속한 동남권에서 지난 10년간 청년 인구가 51만 명 줄었다. 217만 명이던 것이 165만 명이 됐다. 부산만 봐도 청년 비중이 2010년 28퍼센트에서 2024년 21퍼센트로 내려앉았고, 전국 광역시 가운데 처음으로 소멸위험단계에 들어섰다.

그들은 어디로 갔나. 대부분 수도권이다. 양질의 일자리도, 자본도, 기회도 거기에 있었으니까. 부산이 길러낸 사람들이 정작 부산에서 자랄 자리를 찾지 못해 떠났다. 지난 글들에서 본 그대로다.

이 글은 그 떠남을 다시 본다. 떠남은 손실인가, 아니면 달리 볼 수 있는가.

떠남을 어떻게 볼 것인가

떠난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보면 거기서 이야기는 끝난다. 빈자리만 남는다. 그러나 떠난 사람을 달리 본 도시들이 있다.

대만이 그랬다. 1970~80년대, 대만의 똑똑한 청년들이 미국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두뇌 유출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에서 동문과 동향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그 네트워크가 훗날 타이베이 인근 신주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일으키는 결정적 통로가 됐다. 떠난 사람들이 본국 산업을 만든 셈이다. 인도와 이스라엘의 기술 산업도 같은 길을 걸었다. 떠난 전문가들이 본국과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됐다.

이걸 두뇌 유출(brain drain)이 아니라 두뇌 획득이라 부른다. 차이는 사람에 있지 않다. 떠난 사람을 잃어버린 자로 보느냐, 밖에 나가 있는 우리 편으로 보느냐, 그 관점에 있다.

떠난 사람은 부산의 세계 지점이다

부산을 떠난 51만 명을 다시 보자.

그들은 서울에, 경기에, 더 멀리 도쿄와 싱가포르와 실리콘밸리에 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부산의 언어와 정서를 가진 채로 세계의 도시들에 흩어져 있다. 그들을 떠난 사람으로만 보면 빈자리다. 그러나 부산이 세계에 둔 지점으로 보면, 부산은 이미 세계 곳곳에 점을 찍어둔 도시다. 흩어진 게 아니라 뻗은 것이다.

떠나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산에 몸을 두고도 생각은 세계에 둘 수 있다. 부산에 살면서 부산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면 부산에 갇힌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 앉아서도 도쿄와 런던과 뉴욕의 기준으로 일하면, 그 사람은 부산에 있으면서 세계와 이어진 사람이 된다. 떠나야만 세계와 잇는 건 아니다. 머문 채로도 세계의 지점이 될 수 있다.

부산이 항구 도시라는 점이 여기서 중요하다. 항구는 원래 떠나고 들어오는 곳이다. 사람과 배와 물건이 나가고 다시 들어온다. 부산은 그 오고 감의 도시였다. 떠난 사람을 잃었다고 여기는 건, 항구가 떠나는 배를 잃었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무엇이 그들을 다시 잇는가

그렇다면 흩어진 사람을 무엇이 다시 잇는가.

거리가 아니다. 지금은 지구 반대편과도 즉시 연결되는 시대다.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다시 잇는 건 떠나기 전에 쌓인 신뢰다. 떠나기 전 부산에서 그 사람과 어떤 신뢰를 쌓았는가. 그 신뢰가 있으면 십 년이 지나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연락 한 통으로 다시 이어진다. 신뢰가 없으면 같은 도시에 살아도 이어지지 않는다.

세계의 디아스포라 연구가 한결같이 말하는 게 이것이다. 떠난 사람과 본국이 다시 이어지는 건 한 번의 행사로 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만 된다. 떠나기 전에 신뢰를 쌓고, 떠난 뒤에도 그 신뢰를 이어가는 오랜 관계로만 된다. 결국 다시 신뢰다. 이 시리즈가 처음부터 말해온 그 신뢰.

부산이 떠난 사람을 세계 지점으로 삼으려면 떠나기 전에 신뢰를 쌓아야 한다. 부산에 있는 동안 그 사람을 알아보고, 곁을 내주고, 오래 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떠난 뒤에도 부산은 그를 통해 세계로 이어진다.

흩어진 신뢰를 부르는 일

부산은 사람을 길러 내보내는 데 익숙하다고 했다. 이제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내보낸 사람과의 신뢰를 이어가는 일이다.

51만은 빈자리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 흩어진, 부산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 하나하나가 도쿄의, 서울의, 실리콘밸리의 부산 지점이 될 수 있다. 다만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 그 흩어진 신뢰를 기억하고, 부르고, 이어야 한다. 떠난 사람을 잃어버린 자가 아니라 밖에 나가 있는 우리 편으로 보는 눈, 거기서 시작된다.

그러나 흩어진 신뢰를 잇는 일은 한 사람의 선의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누군가 그것을 오래 약속하고, 그 약속을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그 약속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다음 질문이다.

18 Questions for Next Busan Day 16 of 18 · 그레이 (Kim Hyuns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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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그레이

그레이

부산을 묻는 도시 에세이스트

공간을 보면 사람보다 구조를 먼저 읽는다. 부산에 같은 질문을 열여덟 번 던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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