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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칼럼

부산은 어떻게 사람을 자라게 하는가

부산은 배우와 운동선수를 길러냈다. 모두 학교가 가르치지 않는 영역에서다. 가르쳐 만든 게 아니라, 스스로 하려는 사람을 막지 않았을 뿐이다. 가르침이 흔해진 시대에 도시가 길러야 할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의지다. 의지는 가르쳐지지 않는다. 자랄 자리가 있어야 자란다.

그레이 그레이 · · 4분 읽기

학교가 죽이는 것

켄 로빈슨은 2006년, 가장 많이 본 TED 강연에서 한 문장을 남겼다. 우리는 창의성으로 자라나는 게 아니라, 교육이 우리를 창의성 밖으로 길러낸다는 것이다.

학교는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정답이 있는 과목을 위에 두고, 정답이 없는 과목을 아래에 둔다. 표준화된 경로를 따라온 사람에게 자격을 주고, 그 경로 밖의 사람은 떨어뜨린다. 로빈슨의 진단은 20년 전 것이지만 지금 더 날카롭다. 그가 말한 '길러내진 것', 곧 스스로 묻고 스스로 시작하고 정답 없는 문제를 끝까지 붙드는 힘이야말로 지금 가장 희소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명제는 단순하다. 가르침이 흔해진 시대, 도시가 길러야 할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스스로 하려는 의지다. 그리고 의지는 가르쳐지지 않는다 자랄 자리가 있어야 자란다.

가르침이 흔해진 시대

가르침은 이제 거의 공짜다. 모르는 것은 물으면 몇 초 만에 답이 나온다. 한 사람의 지식과 기술과 이력은 기계가 즉시 분석해 점수를 매긴다. 지식을 전달하는 일, 학교가 백 년간 해온 그 일은 빠르게 값이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희소해진 것은 정반대편에 있다. 무엇을 물을지 스스로 정하는 힘,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시작하는 힘, 답이 안 보여도 끝까지 붙드는 힘이다. 가르침이 흔해질수록 가르쳐지지 않는 것이 귀해진다.

부산은 인재를 못 기르는 게 아니다

부산이 인재를 못 기르는 것은 아니다. 부산은 배우와 가수를, 야구선수와 격투기 선수를, 대기업 임원과 대학교수를 길러냈다. 어떤 분야에서는 한 도시가 배출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이름을 내놓았다.

여기서 한 가지가 보인다. 부산이 두각을 낸 분야는 대개 학교가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연기, 노래, 운동, 격투. 정답표가 없고, 스스로 파고들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부산은 이들을 가르쳐 만들지 않았다. 스스로 하려는 사람을 막지 않았을 뿐이다. 막지 않은 자리에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스스로 자랐다.

그렇다면 질문은 분명해진다. 가르치지 않는 영역에선 인재가 나오는데, 왜 짓고 만드는 영역, 곧 창업과 기술과 산업에선 그러지 못하는가. 부산 청년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연기와 운동에서 그랬듯, 스스로 하려는 사람은 그 영역에도 분명히 있다. 다만 그들이 부산에서 자랄 자리가 없을 뿐이다. 그래서 그 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난다. 길러낸 사람이 부산에 머물지 못하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랄 자리의 문제다. (떠남 자체의 문제는 뒤에서 따로 다룬다.)

가르치지 않는데 자란다

그런 자리를 만든 사례가 있다. 파리의 에콜42라는 학교다. 교사가 없다. 교과서도, 정해진 수업 시간도 없다. 매일 프로젝트가 주어지고, 학생은 스스로 알아내야 하며, 평가는 동료가 한다.

설립자가 입학에서 보는 기준은 단 두 가지, 논리와 동기다. 범죄 기록이 있든 수학을 못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가르치지 않는데도 이 학교 학생의 약 80%가 과정을 마치기도 전에 일자리를 얻는다. 핵심은 단순하다. 가르침을 줄이고 스스로 할 자리를 늘렸더니 사람이 자랐다.

물론 이것이 만능은 아니다. 의지만으로 모든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에콜42가 증명한 한 가지는 분명하다. 도시가, 혹은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을 가르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려는 사람이 자랄 자리를 짓는 것이다.

의지가 자라는 자리

그러면 부산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의지를 가르칠 수는 없다. 의지는 주입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지가 자랄 자리는 지을 수 있다.

스스로 시작한 일이 환영받는 자리. 실패해도 다시 할 수 있는 자리. 정답 없는 문제를 붙들고 있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자리. 경로를 벗어난 사람이 비껴가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자리. 부산이 연기와 운동에서 막지 않아 인재를 냈듯, 짓고 만드는 영역에서도 막지 않고 나아가 자랄 자리까지 짓는다면.

이것은 측정하기 어렵다. 강의 수, 수료생 수, 자격증 수로는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가르침이 흔해진 시대에 도시가 길러낼 수 있는 단 하나는 이것이다. 스스로 하려는 사람이 부산을 떠나지 않고도 자랄 수 있는 자리.

그리고 스스로 하려는 사람도 혼자서는 오래 못 간다. 의지를 가진 사람 곁에 또 다른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어떻게 만나는가. 다음 질문이다.

18 Questions for Next Busan Day 14 of 18 · 그레이 (Kim Hyuns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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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그레이

그레이

부산을 묻는 도시 에세이스트

공간을 보면 사람보다 구조를 먼저 읽는다. 부산에 같은 질문을 열여덟 번 던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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