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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칼럼

노포가 원료가 될 때

부산의 오래된 가게와 시장은 누군가의 생활공간이었다. 지금은 카메라가 먼저 들어온다. 로컬리티가 정체성에서 캐낼 수 있는 광맥으로 바뀌는 동안, 거기서 일하는 사람은 무엇을 내주고 있나.

퇴근길 퇴근길 · · 5분 읽기
노포가 원료가 될 때

그림 조각 ·종이 콜라주 컷아웃

새벽 다섯 시 반, 부산진시장 안쪽 통로는 아직 셔터가 반쯤 내려가 있다. 원단 가게 사장이 리어카에 두루마리를 싣고 좁은 통로를 직각으로 꺾어 들어간다. 바퀴가 바닥 타일 깨진 틈에 한 번 걸렸다 빠진다. 그 손목의 각도, 통로의 폭, 셔터 높이는 30년 동안 이 사람 몸이 시장에 맞춰 깎여 나온 결과다. 두 시간 뒤 같은 통로에 삼각대를 든 촬영팀이 들어온다. 담으려는 건 정확히 같은 장면이다. 다만 그들에게 그건 동선이 아니라 그림이다.

이 둘의 차이가 오늘 내가 하려는 말의 전부다.

누가 노포를 발견했나

노포가 콘텐츠가 됐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노포는 발견된 게 아니라 추출되기 시작했다. 발견이 거기 있던 걸 알아보는 일이라면, 추출은 거기서 떼어낼 만한 걸 골라내는 일이다.

지난 몇 년 부산의 영상과 로컬 브랜딩이 향한 곳을 떠올려보자. 영주동 산복도로의 계단, 부평깡통시장의 야시장 불빛, 초량의 오래된 중식당, 범일동 일대의 철공소 골목. 하나같이 분위기가 짙고 손때가 묻었다. 카메라는 정확히 그 손때를 원한다. 새것은 어디에나 있지만 시간은 복제가 안 되니까. 그래서 시간이 가장 비싼 원료가 된다.

여기서 시선이 갈라진다. 도시를 관광지 리스트로 보는 사람에게 노포는 '꼭 가봐야 할 곳' 항목이다. 다녀오면 소비가 끝나는 좌표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의 동선으로 보면 노포는 좌표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새벽 경매와 도매상의 시간표, 단골의 외상 장부, 옆 가게와의 품앗이가 한 덩어리로 돌아가는 생태계. 콘텐츠는 이 생태계에서 가장 사진이 잘 받는 표면만 얇게 떠 간다. 표면을 떠 가는 게 도둑질은 아니다. 문제는 표면만 거래되고 그 아래 시스템에는 한 푼도 흘러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추출 가능한 것과 추출 안 되는 것

원료라는 비유를 끝까지 밀어보자. 광산에서 광석을 캐면 정련소가 가공하고 시장이 값을 매긴다. 노포의 광산은 골목이고, 정련소는 편집 타임라인이며, 시장은 피드다. 그런데 광물과 달리 노포의 원료에는 사람이 붙어 산다.

추출되는 건 시각적 질감이다. 빛바랜 간판 글씨, 손으로 쓴 메뉴판, 연륜 있는 사장의 얼굴, 김 오르는 국솥. 추출 안 되는 건 그 가게가 동네에서 해온 기능이다. 영도의 어느 노포가 40년간 동네 노인들의 점심을 책임지고 혼자 사는 단골의 안부를 챙기던 역할은 프레임에 담기지 않는다. 담겨도 값이 안 매겨진다. 피드는 질감에는 후하고 기능에는 무관심하다.

이 비대칭이 위험하다. 콘텐츠로 뜬 노포에 사람이 몰리면 임대료 신호가 먼저 반응한다.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전포동 카페거리, 해리단길, 흰여울문화마을이 걸어온 길을 보면 패턴은 분명하다. 진짜를 찍으러 온 카메라가 진짜를 비싸게 만들고, 비싸진 자리는 원래 거기서 일하던 사람을 밀어낸다. 카메라가 사랑한 질감의 공급원이 카메라 때문에 사라진다. 추출 산업이 광맥을 고갈시키는 그 오래된 논리가 골목에서 반복된다.

빌더에게 필요한 안목이 여기 있다. 로컬을 소재로 무언가 만든다면, 당신은 발견자인가 채굴자인가. 둘을 가르는 기준은 의도가 아니라 흐름의 방향이다. 가치가 골목 밖으로만 빠져나가면 채굴이고, 일부라도 되돌아 들어가면 발견이다.

되돌려보내는 설계

반론이 있다. 추출이라는 비판은 결국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향수 아닌가. 노포가 콘텐츠가 되어 매출이 늘고 폐업을 면한 가게도 분명 있다. 부산진시장 원단상이 SNS 덕에 전국에서 주문을 받는다면 그건 명백한 이득이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추출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추출의 설계다.

설계는 디테일에서 갈린다. 사장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쓰면서 그 가게 영업 정보는 빼는 영상과, 같은 얼굴을 쓰되 주문 동선과 단골 후기를 함께 흘려보내는 영상은 같은 추출이 아니다. 전자는 질감만 떼어 가고, 후자는 기능을 함께 운반한다. 로컬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동네 이름을 브랜드에 빌리면서 그 동네 상인회와는 한 줄도 나누지 않는 프로젝트가 부산에 적지 않다. 이름은 떼어 가기 쉽지만, 이름값을 되돌리는 설계는 일부러 만들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만드는 사람이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로 줄어든다. 이 콘텐츠가 노포의 질감을 가져갈 때, 노포의 기능에는 무엇을 남기는가. 손님 한 명을 실제로 보내는가, 일손을 한 번 거드는가, 최소한 다음 세대가 그 자리에서 계속 일할 이유를 한 줌이라도 보태는가. 답이 전부 아니오라면, 당신은 도시를 만드는 게 아니라 도시를 캐고 있는 것이다.

노포는 배경이 아니라 누군가 지금도 출근하는 일터다. 도시를 찍기 전에, 거기서 일하는 사람의 새벽을 한 번 살아보고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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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퇴근길

퇴근길

기술 전환기 현장 관찰자

발표장 맨 앞줄보다 새벽 항만 게이트가 더 궁금하다. 기술에 먼저 젖는 어깨를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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