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조각 ·종이 콜라주 컷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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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부산항 신항. 컨테이너를 집는 크레인이 사람 없이 움직인다. 운전석은 비어 있고, 멀리 떨어진 관제실에서 한 사람이 화면 여러 개를 본다. 비가 오면 빗방울이 카메라 렌즈를 먼저 때린다. 기술이 비를 먼저 맞는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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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첨단이라고 하면 판교의 통유리 사무실을 그린다. 책상마다 모니터 두 대, 따뜻한 조명, 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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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신기술이 가장 먼저, 가장 거칠게 투입되는 곳은 오래된 산업 현장이다. 항만, 조선, 물류. 부산이 그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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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단순하다. 여기서는 1초가 돈이고, 한 번의 사고가 사람 목숨이다. 절박한 곳이 먼저 실험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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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 신항의 일부 부두는 자동화 야드로 굴러간다. 무인 운반차가 컨테이너를 옮기고, 크레인은 원격으로 조종한다. 시범이 아니라 매일의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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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빌더가 챙길 첫 번째 안목. 데모와 운영은 다른 동물이다. 컨퍼런스 무대의 자율주행은 맑은 날 한 번 성공하면 박수를 받는다. 부두의 자율주행은 태풍 다음 날 새벽에도 컨테이너를 정확히 내려놔야 한다. 실패가 누적되면 멈추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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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로 가보자. 영도에서 거제로 이어지는 벨트. 용접 로봇과 디지털 트윈이라는 말이 여기서는 마케팅 문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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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한 척은 도면이 수만 장이다. 설계를 가상으로 먼저 짓고 충돌을 잡아내는 디지털 트윈은, 쇳덩이를 자르기 전에 실수를 잡으려는 절박함에서 나왔다. 화면 속 모델이 틀리면 현장의 철판이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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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안목. 제약이 심한 곳일수록 기술이 정직해진다. 오차 허용치가 밀리미터고, 자재값이 억 단위면, 화려한 기능보다 틀리지 않는 기능이 이긴다. 빌더가 자기 제품을 시험하고 싶다면, 봐주는 사용자 말고 봐주지 않는 현장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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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도 마찬가지다. 부산은 환적 화물의 도시다. 배에서 내린 컨테이너가 다른 배로 갈아탄다. 어느 칸에 무엇이, 언제, 어디로 갈지. 이 거대한 경우의 수를 푸는 게 알고리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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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반론. 그럼 결국 노동자가 밀려나는 것 아니냐. 자동화의 끝은 일자리 소멸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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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절반만 맞다. 무인 크레인 옆에는 그 크레인이 멈췄을 때 들어가는 정비공이 있다. 원격 관제실에는 화면을 읽는 새로운 직무가 생긴다. 노동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노동의 위치가 옮겨간다. 기름때가 데이터로 번역될 뿐, 현장을 아는 사람의 값은 오히려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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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안목. 기술은 일을 없애는 게 아니라 일의 좌표를 바꾼다. 빌더가 만든 도구가 누구의 일을 어디로 옮기는지 모르면, 그 도구는 현장에서 거부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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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부산을 관광지 리스트로만 읽지 마라. 광안대교 야경과 회 한 접시 너머에, 비 맞으며 미래를 먼저 입어보는 현장이 있다. 항구는 늘 다음 기술의 첫 사용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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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태도는 이렇다. 멋있는 데모는 도시에 안 남는다. 비 오는 새벽에도 작동하는 것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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