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윤슬 ·소프트 그라데이션 에어브러시
밤 여덟 시 반, 민락수변공원 난간에 줄이 선다. 다리 쪽으로 카메라를 든 사람과 등을 돌린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부딪힌다. 광안대교 조명이 켜지자 누군가 짧게 "지금"이라고 외친다. 그 순간 수십 대의 휴대폰이 같은 각도로 올라간다. 회 한 접시를 두고 둘러앉은 가족, 텀블러를 든 야간 러너, 삼각대를 펴는 사진 작가가 한 프레임에 겹친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그 풍경을 쓰는 방식이 갈라져 있다.
풍경이 슬롯이 되는 순간
예전 광안리의 밤은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모두의 것이었다. 다리 불빛은 가만히 있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그 앞을 지나갔다. 지금은 다르다. 정해진 시간에 드론쇼가 뜨면 해변 전체가 관람석으로 바뀐다. 시작 십 분 전부터 좋은 자리는 채워지고, 끝나는 순간 인파가 한꺼번에 빠져나간다. 밤이 시간표를 갖게 된 셈이다.
시간표가 생기면 자리에 가격이 붙는다. 입장료를 따로 받는 건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요금이 작동한다. 다리가 정면으로 잡히는 카페 창가, 드론 군집이 수면에 반사되는 데크의 어느 구간, 노을과 야경이 겹치는 짧은 시간대. 이런 건 이제 '경치'라기보다 '재고'에 가깝다. 수량이 한정돼 있고, 회전율이 있고, 더 좋은 컷을 뽑는 사람이 먼저 차지한다. 도시의 밤이 부동산처럼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던지는 질문은 좋다 나쁘다가 아니다. 광안리 야경은 지금 누구의 것으로 분류되는가. 거기 사는 사람의 창밖인가, 거기서 장사하는 사람의 미끼 상품인가, 한 번 다녀가는 사람의 콘텐츠 소재인가. 같은 빛을 셋이서 동시에, 그것도 제각기 다르게 소유하고 있다.
만드는 사람이 봐야 할 것
이 지점에서 도시를 관광지 리스트로만 보는 시선과 갈라진다. 명소 열 곳을 꼽고 별점을 매기는 눈은 광안리를 '가볼 곳'으로 닫아버린다. 정작 빌더에게 필요한 건 이 풍경이 어떤 자원으로 굴러가느냐다. 광안리는 부산이 가진 몇 안 되는 '검증된 배경'이다. 카페가 거기 들어서고, 팝업이 거기를 노리고, 영상 제작자가 거기로 향하는 건 풍경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 풍경이 이미 사람들의 시선을 모아둔 곳이라서다. 트래픽이 깔린 땅인 것이다.
그렇다면 빌더의 안목은 풍경 자체가 아니라 풍경의 '여백'을 보는 데 있다. 정면 다리뷰는 이미 포화 상태다. 모두가 같은 컷을 찍는 자리는 역설적으로 가장 차별화가 안 되는 자리다. 차라리 다리를 등지고 골목 안쪽으로 한 블록 들어간 자리, 드론쇼가 끝나고 인파가 빠진 밤 열 시 이후, 관람객이 아니라 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의 동선. 이런 데에 아직 분배되지 않은 시야가 남아 있다. 남들이 슬롯을 두고 다툴 때, 슬롯이 못 되는 시간과 각도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게 만드는 사람의 일이다.
공유재를 지키는 건 결국 동선이다
반론은 분명하다. 명소화 덕에 광안리 상권이 살았고, 드론쇼가 비수기 관광을 끌어올렸으며, 사진 한 장이 도시를 전국에 알린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콘텐츠 부동산화는 돈을 돌게 했다. 다만 부동산에는 임차인이 밀려나는 속성이 있다. 풍경이 비싸지면 그 풍경을 매일 그냥 보던 사람의 자리부터 좁아진다. 줄 서지 않고 다리 불빛을 보던 동네 사람, 평일 새벽 빈 해변을 달리던 러너, 자리값 따위 의식하지 않고 친구와 캔맥주를 들던 청년. 이들의 밤이 촬영 슬롯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도시 경관을 공유재로 지키는 길은 거창한 조례가 아니라 동선의 다양성을 남겨두는 데서 시작한다. 시간표 하나, 명당 하나, 사용법 하나만 남으면 풍경은 콘텐츠로 단일화된다. 여러 속도와 여러 각도가 함께 있을 때라야 그 밤은 다시 모두의 것이 된다.
좋은 풍경은 더 많이 찍히는 곳이 아니라, 더 많은 방식으로 쓰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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