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의 한 골목, 늦은 저녁 카페에서 노트북을 덮은 사람들이 다시 모인다. 낮엔 각자의 회사에 흩어져 있던 얼굴들이다. 부산에서 일하다 보면 알게 된다. 진짜 대화는 대개 해가 진 뒤에 시작된다는 걸.
낮의 부산과 밤의 부산은 다른 도시다
낮의 부산은 흩어져 있다. 센텀의 오피스, 서면의 사무실, 집에서 원격으로 붙은 개발자. 물리적으로 떨어진 채 각자 화면만 본다. 그런데 저녁이 되면 이 도시가 묘하게 한자리로 모인다. 부산은 서울처럼 크지 않아서, 한 다리만 건너면 대개 아는 사람이거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다. 이 좁음이 약점이 아니라 자산이다.
낮의 흩어짐이 밤의 모임으로 바뀌는 데 별다른 장치는 필요 없다. 퇴근길에 한 사람이 가볍게 안부를 묻고, 마침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이 끼어들고, 그렇게 약속도 없던 자리가 생긴다. 큰 도시였다면 동선이 멀어 흐지부지됐을 일이, 여기서는 지하철 몇 정거장 안에서 이어진다. 거리가 가깝다는 건 결국 마음이 식기 전에 한 번 더 마주칠 수 있다는 뜻이다.
밋업을 고를 땐 규모에 속지 마라. 사람 많은 행사가 좋은 자리는 아니다. 빌더에게 쓸모 있는 건 끝나고도 남는 자리가 있는 모임이다. 발표 끝나면 다들 흩어지는 행사보다, 누군가 자연스럽게 근처로 자리를 옮기자고 말하는 모임이 낫다. 다음 협업은 발표 슬라이드가 아니라 그 두 번째 자리에서 나온다.
밤에 동선을 짠다는 것
서면은 모이기 좋은 중심이다. 교통이 사방으로 열려 있어 해운대에서 오든 센텀에서 오든 부담이 적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부담 없이 말을 트기 좋은 자리도 많다. 가볍게 시작하고 싶을 때 무난하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광안리 쪽으로 옮겨도 좋다. 바다를 끼고 걸으며 하는 대화는 회의실 톤과 다르다. 방어막이 한 겹 풀린다. 누군가의 사이드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오고, 마침 그게 필요했던 사람이 옆에 있고, 그렇게 다음 주에 한번 보자는 말이 오간다. 부산의 협업은 대개 이렇게 시작된다. 거창한 제안서가 아니라, 늦은 밤 누군가의 한마디에서.
그 다음 주 약속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한 번 보면 또 다른 자리에서 마주치고, 세 번째쯤 되면 서로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강 알게 된다. 그쯤이면 누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찾고 있는지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협업은 그 그림이 충분히 선명해졌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부산에서 일이 엮이는 속도는 만남의 횟수에 비례한다.
밋업을 고르는 안목 하나. 주최자가 누구를 위해 그 자리를 여는지 봐라. 자기 회사 홍보가 목적인 자리는 끝나면 명함만 남는다. 반대로 그냥 부산에서 비슷한 걸 만드는 사람들이 외로워서 여는 자리가 있다. 후자가 오래 간다. 그런 모임은 화려하지 않아도 매번 같은 얼굴이 조금씩 늘어난다.
협업 공간을 쓴다면, 일하러만 가지 말고 행사가 열리는 저녁에 한번 남아봐라. 낮엔 조용하던 공간이 밤이면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인다. 거기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결국 같이 일하게 되는 사람이다.
부산의 밤은 빨리 친해지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여러 번 마주치게 만든다. 그 반복이 신뢰가 되고, 신뢰가 일이 된다. 서두르지 말고, 자주 나와라. 이 도시는 자정 무렵에 가장 솔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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