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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칼럼

텅 빈 전시장, 매진된 자존

부산의 미술관과 비엔날레가 감상이 아니라 사회적 증명을 파는 장치로 작동할 때, 공공예술 예산은 누구의 주머니로 흘러가는가. 일하는 사람의 동선에서 본 도시의 안목.

퇴근길 퇴근길 · · 4분 읽기
텅 빈 전시장, 매진된 자존

그림 각잡이 ·기하학 플랫 벡터

평일 오후 두 시, F1963의 한 전시실. 작품 앞에 선 사람은 셋인데 둘은 등을 돌리고 있다. 작품을 등진 채 그걸 배경으로 세우고 팔을 뻗어 각도를 잡는다. 셔터가 끝나면 다음 방으로 넘어간다. 작품을 본 시간은 길어야 십오 초, 카메라를 든 시간은 그 두 배다. 큐레이터가 석 달을 들여 짠 동선은 실제로는 광각 렌즈에 가장 잘 담기는 벽 하나를 향한 순례가 된다.

이 풍경을 게으른 관람객 탓으로 돌리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도시를 관광지 리스트로만 읽는 시선이 딱 거기서 멈춘다. F1963 갔다, 부산현대미술관 찍었다, 다대포 빛 축제 봤다. 체크리스트가 채워지면 도시를 소비했다고 믿는다. 그런데 만드는 사람 자리에서 보면 질문이 달라진다. 여기서 진짜 거래되는 상품은 무엇인가. 답은 작품이 아니다. 작품 앞에 선 나의 이미지다.

감상이 사라진 자리에 증명이 들어선다

전시는 원래 두 가지를 한꺼번에 판다. 작품과 마주하는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했다는 사실. 인스타그램 이전에는 이 둘이 한 몸이었다. 본 사람만 봤다고 말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은 갈라졌다. 봤다는 신호를 만드는 데 감상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입장하고 찍고 태그하면 증명은 끝난다. 전시장이 텅 비어도 표가 매진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람들이 사는 건 입장권이 아니라 입장했다는 알리바이다.

부산 비엔날레가 회를 거듭하며 SNS 친화적 설치 작업을 늘려온 건 우연이 아니다. 거대한 거울, 빛이 쏟아지는 방, 색이 강한 몰입형 공간. 이런 작업은 비평적으로 약하다는 평을 자주 듣지만 운영 지표는 정직하게 올라간다. 미술관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관람객 수가 곧 예산을 정당화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숫자가 무엇을 셌느냐다. 작품을 본 사람의 수인가, 작품 앞을 지나간 사람의 수인가.

예산은 숫자를 먹고, 숫자는 사진을 먹는다

공공예술 예산은 성과로 측정된다. 그 성과의 가장 손쉬운 대리지표가 방문자 수와 온라인 도달이다. 여기서 비뚤어진 회로가 생긴다. 예산을 따려면 숫자가 필요하고, 숫자를 채우려면 찍히기 좋은 작업이 필요하고, 그러면 다시 예산이 나온다. 이 회로 안에서 가장 덜 보상받는 건 조용히 오래 봐야 하는 작업이다. 십 초 안에 강렬한 한 컷을 주지 못하는 작품은 같은 벽을 두고 경쟁에서 밀린다.

진짜 수혜자를 따져보자. 흔히 예술가라고 답하지만 절반만 맞다. 인증샷 경제에서 가장 크게 버는 건 포토제닉한 스펙터클을 설계하는 소수의 작가, 그 옆에서 카페와 굿즈를 파는 운영 주체, 그리고 방문자 수치를 자기 치적으로 가져가는 행정이다. 정작 변두리 작업실에서 팔리지 않는 작업을 계속하는 다수의 부산 작가는 이 회로 바깥에 있다. 영도와 수영 골목의 작은 작업실들이 임대료에 밀려나는 동안, 예산은 가장 잘 찍히는 벽으로 흐른다. 예술 진흥이라는 이름이 사실은 배경 진흥으로 굴러간다.

반론은 가능하다. 인증샷이라도 사람을 미술관 문 앞까지 끌고 오지 않느냐고. 맞다. 진입 장벽을 낮추는 미끼로서 스펙터클은 분명한 기능이 있다. 다만 미끼와 본식은 구분해야 한다. 찍으러 온 사람을 다음번엔 보러 오게 만드는 설계가 있는지, 아니면 다음 핫플로 갈아타고 마는지. 부산현대미술관이 을숙도라는 외진 입지에서도 사람을 모으는 건 미끼가 통한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두 번째로 돌아오는지는 다른 질문이고, 지금의 지표는 그걸 묻지 않는다.

빌더의 안목으로 다시 보기

여기서 만드는 사람이 챙길 안목은 분명하다. 먼저, 공간을 만들 때 두 개의 시간을 나눠서 설계하라. 찍히는 시간과 머무는 시간은 서로 다른 동선을 요구한다. 둘 다 잡으려다 둘 다 놓치는 공간이 부산에 너무 많다. 다음으로, 성과를 셀 때 도달이 아니라 체류와 재방문을 세는 지표를 하나라도 끼워 넣어라. 측정하지 않는 가치는 예산 회로에서 곧장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미끼와 본식을 의식적으로 나눠 배치하라. 입구의 한 컷이 안쪽의 느린 작업으로 사람을 데려가는 경로가 없다면, 그 공간은 미술관이 아니라 포토존이다.

전시장이 텅 비어도 매진된다는 건 실패가 아니라 신호다. 도시가 경험을 증명으로 바꿔 파는 법을 배웠다는 신호. 부산은 이 거래에 능숙해지는 중이고, 그래서 더 위태롭다. 잘 찍히는 도시와 다시 보고 싶은 도시는 같지 않다. 만드는 사람이라면 후자를 택해야 한다. 사진은 십 초 만에 끝나지만, 안목은 두 번째 방문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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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퇴근길

퇴근길

기술 전환기 현장 관찰자

발표장 맨 앞줄보다 새벽 항만 게이트가 더 궁금하다. 기술에 먼저 젖는 어깨를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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