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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ups Tech 칼럼

딥테크는 왜 한국서 늦는가

소프트웨어의 시간으로 반도체 소재와 로봇을 재단하는 자본 구조. 자본 회수 기간과 기술 성숙도의 어긋남을 산업 축적의 시간 단위로 다시 읽는다.

30년차 30년차 · · 5분 읽기
딥테크는 왜 한국서 늦는가

그림 윤슬 ·소프트 그라데이션 에어브러시

5년 펀드와 12년 기술

부산 강서구의 한 소재 스타트업이 작년에 문을 닫았다. 이름을 밝히기는 어려운 회사다. 이차전지 음극재의 미세 구조를 바꾸는 기술을 들고 있었고 실험실 데이터도 좋았다. 그를 죽인 것은 기술이 아니라 펀드의 만기였다. 처음 받아준 벤처펀드의 존속 기간은 8년, 투자 집행이 끝나는 4년차에 그는 양산 라인의 첫 결함률 곡선을 막 잡는 중이었다. 회수 시계는 멈추지 않는데 공정 수율 곡선은 아직 무릎에 머물러 있었다. 후속 투자자는 같은 질문만 반복했다. 매출은 언제 나옵니까. 정직한 답은 하나뿐이었다. 모릅니다, 라인을 한 번 더 돌려봐야 압니다.

이 장면이 불편한 까닭은 우리가 소재와 부품에서 이미 세계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믿음은 절반만 맞다. 한국이 강한 영역은 대개 추격이 끝난 곳, 문제의 정답이 외부에 이미 나와 있던 곳이다.

추격의 시계는 짧고, 프런티어의 시계는 길다

한국 벤처 자본의 표준 문법은 소프트웨어에서 왔다. 빠른 출시, 빠른 피벗, 빠른 지표 상승, 36개월 안의 다음 라운드. 이 문법은 코드의 한계비용이 0에 수렴하는 세계에서나 작동한다. 한 번 짠 서비스를 백만 명에게 복제하는 데는 공장이 더 필요하지 않으니까.

딥테크는 그 반대편에 있다. 반도체 소부장, 신소재, 로봇 구동계는 물리 세계의 마찰을 통과해야 한다. 1나노 결함, 0.1퍼센트 수율, 10만 시간 내구. 이 숫자들은 코드 수정으로 줄지 않는다. 오직 시도 횟수로만 줄어든다. 실패한 웨이퍼 한 장, 갈라진 시제품 하나가 다음 설계의 입력값이 된다. 축적이란 이렇게 실패가 데이터로 남아 다음 시도의 비용을 낮추는 과정이다.

여기서 자본 회수 기간과 기술 성숙도가 어긋난다. VC 펀드의 표준 존속은 8년에서 10년, 실제로 투자할 수 있는 기간은 그 절반이다. 반면 신소재가 실험실에서 양산 라인에 안착하기까지는 보통 10년 안팎이 걸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연구원이 소부장 자립을 말할 때 늘 강조하는 시간 단위가 바로 이것이다. 회수 시계는 소프트웨어 속도로 돌고, 기술 시계는 제조 속도로 돈다. 한 회사 안에서 두 시계가 어긋나면 죽는 쪽은 언제나 느린 쪽이다.

독일은 수율을 사고, 한국은 매출을 묻는다

차이는 자본의 인내심이 아니라 자본의 종류에 있다. 독일에는 프라운호퍼 연구회가 있다. 응용 연구를 수십 년 단위로 떠받치며 시제품과 양산 사이의 죽음의 계곡에 다리를 놓는 곳이다. 미국의 반도체 패권도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이 수십 년간 돈 안 되는 질문에 자금을 댄 결과다. TSMC가 오늘 누리는 공정 우위는 30년치 수율 데이터가 쌓인 것이지 어느 천재의 한 수가 아니다.

한국의 구조는 다르게 설계됐다. 정부 R&D는 단년도나 3년 과제로 잘게 끊겨 있고 평가는 성공률로 매긴다. 성공률이 높다는 건 실패할 만한 질문을 애초에 던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패가 감점이 되는 시스템에서 연구자는 이미 답을 아는 문제만 신청한다. 민간 자본은 빠른 회수를 요구하고 공공 자본은 빠른 성공을 요구한다. 양쪽 다 느린 축적을 처벌하는 셈이다.

반론도 가능하다. 쿠팡과 토스가 증명했듯, 빠른 자본 회전이야말로 한국이 잘하는 방식 아니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 둘은 물류와 금융이라는, 정답이 해외에 이미 있던 영역이다. 빠른 실행으로 따라잡을 수 있었다. 프런티어에는 따라잡을 정답 자체가 없다. 그래서 같은 무기가 여기서는 둔기가 된다.

무엇을 축적할 것인가

먼저 인내 자본의 종류를 늘려야 한다. 한국에 부족한 것은 돈의 총량이 아니라 12년을 기다릴 수 있는 돈의 종류다. 국민연금과 정책금융이 존속 15년짜리 딥테크 전용 펀드의 후순위 출자자로 들어가 회수 시계를 늘려야 한다.

다음은 실패의 자산화다. 실패한 공정 데이터가 다음 회사의 입력값이 되도록, 죽은 스타트업의 실험 기록이 사장되지 않고 산업의 공용 자산으로 남는 구조가 필요하다. 프라운호퍼가 하는 일의 핵심이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은 현장의 시간이다. 부산과 울산의 노후 산단에는 수십 년 공정 노하우를 가진 엔지니어들이 있다. 이 암묵지는 논문에도 코드에도 없고 오직 라인 위에 있다. 딥테크 창업이 대학 연구실보다 제조 현장에서 더 자주 나와야 하는 이유다.

추격의 시대에는 정답을 빨리 찾는 나라가 이겼다. 우리는 그 게임을 잘했다. 프런티어의 시대에는 질문을 먼저 만든 나라가 이긴다. 한국에 지금 없는 것은 빠른 손이 아니라, 답 없는 질문 앞에서 12년을 버틸 수 있는 시간의 구조다. 그 구조를 짓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남이 낸 문제만 빨리 푸는 우등생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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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30년차

30년차

산업 축적론자

빠른 추격은 빚이다. 축적의 시간을 건너뛴 기술은 현장에서 그 빚을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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