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조각 ·종이 콜라주 컷아웃
부전역 플랫폼에서 본 것
평일 오전 일곱 시, 부전역 무궁화호 승강장에는 노트북 가방을 멘 사람들이 줄을 선다. 동대구로, 서울로 가는 환승객이 섞여 있지만 그중 일부는 분명 이 도시에서 일을 시작했던 사람들이다.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고, 부산에서 첫 회사를 차리거나 첫 직장을 잡았다가, 지금은 매주 혹은 매일 도시를 빠져나가는 사람들. 창업 생태계를 도시 단위로 놓고 보면 이 승강장이 손익계산서의 마지막 줄이다.
부산은 창업가에게 줄 게 많은 도시처럼 보인다. 센텀시티와 문현금융단지에는 입주 공간이 있고,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가 돌아가고, 매년 데모데이와 IR 행사가 열린다. 지원금 공고도 분기마다 갱신된다. 그런데 5년 뒤까지 살아남아 직원 열 명을 고용하는 회사의 숫자는 행사 포스터의 숫자와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 흔히들 자본이 부족해서라고 진단한다. 나는 그 진단이 틀렸다고 본다. 부산 창업의 진짜 적은 돈이 아니라 두 번째 채용이다.
한 명은 뽑는다, 두 번째에서 무너진다
창업가는 첫 직원은 보통 어떻게든 구한다. 같이 졸업한 친구, 같은 동아리 후배, 전 직장 동료. 신뢰와 인연으로 메우는 자리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직원은 인연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사 와야 한다. 직무가 정의돼 있고, 경력이 검증되고, 연봉이 시장 가격으로 협상되는 진짜 채용 말이다. 부산의 창업가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공통적으로 막힌다.
왜 막힐까. 뽑을 사람이 도시에 없거나, 있어도 더 나은 선택지를 향해 떠나기 때문이다. 부산에는 대학이 많고 졸업생도 많지만, 3년차에서 7년차 사이의 '두 번째 직원감', 그러니까 혼자 한 기능을 책임질 수 있는 중간 경력자의 풀이 얇다. 그 연차의 사람들은 대체로 이미 수도권으로 옮겨 갔다. 백엔드를 혼자 설계할 줄 아는 개발자, 퍼포먼스 마케팅을 처음부터 돌려본 마케터, B2B 영업 사이클을 한 바퀴 완주해본 영업 담당. 이 직군의 4년차를 부산에서 채용해보려 한 사람은 안다. 후보 자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창업가는 둘 중 하나를 택한다. 검증 안 된 신입을 두 번째 직원으로 앉히고 본인이 두 사람 몫을 더 떠안거나, 채용을 미루고 성장 자체를 포기하거나. 전자는 대표가 번아웃으로 쓰러지는 길이고, 후자는 회사가 영원히 1인 프로젝트로 남는 길이다. 자본을 더 부어도 이 갈림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통장에 1억이 더 있어도 그 돈으로 채용할 4년차가 도시에 없다면 숫자는 그냥 숫자다.
행사는 입력을, 인재는 출력을 본다
부산이 잘하는 것은 입구를 넓히는 일이다. 창업 경진대회, 입주 공간, 초기 지원금. 전부 '시작하는 사람'을 위한 인프라다. 이건 이것대로 의미가 있다. 다만 생태계의 건강은 입구가 아니라 출구에서 측정된다. 5년을 버틴 회사가 몇 개인지, 그 회사들이 두 자릿수 고용을 만들었는지, 그 직원들이 다음 회사를 또 부산에서 차렸는지. 이 출력값이 빈약하면 입구를 아무리 넓혀도 생태계는 채워지지 않는다. 물을 계속 붓는데 바닥이 빠진 양동이와 같다.
여기서 도시 구조 이야기가 나온다. 인재가 떠나는 건 부산이 매력 없는 도시여서가 아니다. 광안리의 저녁과 영도의 풍경을 두고 떠나는 사람은 풍경이 싫어서 떠나는 게 아니다. 경력의 다음 칸이 보이지 않아서 떠난다. 지금 다니는 스타트업이 망해도 옮겨갈 다른 회사가 같은 도시에 충분히 있어야 사람은 그 도시에 정착을 건다. 회사가 열 개뿐인 곳에서는 한 곳이 무너지면 이직이 곧 이사가 된다. 그래서 합리적인 4년차일수록 처음부터 회사가 수백 개 모인 판교나 강남을 택한다. 개인의 배신이 아니라 시장의 두께에 거는 베팅이다.
반론도 가능하다. 원격근무 시대에 도시 단위 인재 풀이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서울 회사에 다니며 해운대에 살면 되지 않냐고. 절반은 맞다.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델은 부산 회사가 아니라 부산 거주자를 만든다. 그 4년차의 노동력과 세금과 경력은 서울 회사로 흘러간다. 부산의 두 번째 직원 문제는 그대로다. 원격근무는 인재의 거주지를 부산에 묶어둘 수는 있어도, 그들을 부산 스타트업의 채용 후보로 되돌려놓지는 못한다. 오히려 서울 연봉에 부산 물가로 사는 사람이 늘수록, 지역 스타트업이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은 상대적으로 더 초라해진다.
빌더가 봐야 할 자리
그러면 이 도시에서 회사를 키우려는 사람은 무엇을 봐야 하나. 첫째, 두 번째 채용을 사업 계획의 1번 리스크로 올려라. 자금 조달 계획만큼 구체적으로, 핵심 직무의 중간 경력자를 부산 안에서 구할 수 있는지부터 검증하라. 못 구한다면 그 직무를 원격으로 열거나, 신입을 1년 키워 두 번째 직원으로 만드는 시간을 사업 일정에 미리 넣어라. 막연한 낙관이 가장 비싸다.
둘째, 떠나는 출구가 아니라 돌아오는 입구를 보라. 부산을 떠난 7년차, 10년차 가운데 일부는 가족과 삶의 무게 때문에 돌아올 의향이 있다. 이들은 이미 수도권에서 '두 번째 직원'을 넘어 팀을 이끌어본 사람들이다. 한 명의 복귀가 신입 다섯 명보다 회사를 멀리 보낸다. 지역의 인재 정책이 졸업생 붙잡기에만 쏠려 있다면, 빌더 개인은 거꾸로 떠난 사람들의 귀환 동선을 직접 설계하는 편이 빠르다.
셋째, 같은 처지의 회사들과 인재를 공유하는 두께를 인위적으로라도 만들어라. 한 회사가 망해도 그 직원이 옆 회사로 건너갈 수 있다는 믿음이 도시에 사람을 남긴다. 경쟁사를 적이 아니라 인재 풀의 공동 운영자로 보는 관점. 이게 판교는 가졌고 부산은 아직 못 가진 것이다.
부산은 창업을 시작하기 좋은 도시다. 문제는 시작이 아니라 두 번째였다. 도시가 사람을 키우지 않고 흘려보내는 한, 행사장의 박수는 손익계산서에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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