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조각 ·종이 콜라주 컷아웃
부산 벡스코 한쪽 부스에서 2인 개발팀이 자기 게임을 보여준다. 데모는 좋다. 손맛이 살아 있고, 비주얼은 비슷한 시기의 일본이나 북미 인디와 견줘도 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야기가 출시 계획으로 넘어가면 답이 늘 똑같다. 일단 스팀에 위시리스트를 깔고, 운이 좋으면 페스티벌 한 번 타고, 그다음은 모르겠다는 것이다. 게임은 글로벌을 보고 만들어졌는데, 정작 그걸 세상에 내보내는 길은 스팀 하나로 수렴한다.
여기서 흔한 진단이 나온다. 마케팅을 모른다, 비즈니스 감각이 없다, 영어가 약하다. 죄다 창업자 개인을 탓하는 말이다. 나는 이런 진단이 게으르다고 본다. 한국에 좋은 게임 창업자가 부족한 게 아니다. 좋은 게임이 스팀 한 곳을 넘어 여러 글로벌 채널로 펼쳐지도록 받쳐주는 유통과 펀딩 구조가 약할 뿐이다.
스팀 한 칸으로 수렴하는 출구
지금 글로벌 인디 유통은 분명히 갈라지고 있다. itch.io에는 개발사가 수수료를 0까지 직접 정할 수 있고 실험적인 작품을 찾는 커뮤니티가 모여 있다. 에픽게임즈스토어는 70 대 30이 아닌 88 대 12 분배로 판을 흔들었다. GOG는 DRM 프리와 보존 프로그램으로 자기 색을 냈고, 험블번들은 묶음 판매로 무명작에도 초기 플레이어 기반을 만들어준다. Rokky 같은 유통 인프라는 200개 넘는 퍼블리셔를 200개 넘는 지역 스토어프론트에 연결해, 스팀 위에 얹는 채널만으로 매출을 평균 10~20퍼센트 더 만든다고 말한다.
세계의 인디는 이미 멀티 스토어프론트를 기본값으로 쓴다. itch.io에서 커뮤니티를 키우고, 스팀과 에픽으로 매출을 받고, GOG와 험블로 도달 범위를 넓힌다. 그런데 부산 부스에서 만난 팀 상당수는 이 경로 지도가 머릿속에 없다. 개인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한국 생태계가 그들에게 가르치고 연결해주는 디폴트 경로 자체가 스팀 하나뿐이라서다.
병목은 능력이 아니라 연결망이다
자본, 인재, 규제, 고객 접근을 차례로 짚어보자. 자본부터 보면 2026년 한국 인디 펀딩은 분명 좋아졌다. 부산 Bu:Star 게임콘텐츠 제작지원이 있고, 슈퍼패스트처럼 개발 단계에 맞춰 투자와 퍼블리싱을 함께 대는 민간도 들어왔다. 전국 12개 글로벌게임센터가 사무 공간과 수출 지원을 깐다. 문제는 이 돈의 성격이다. 대부분 제작 단계까지를 받쳐주는 개발 자금이다. 게임을 만드는 비용은 메워주는데, 정작 만든 게임을 다섯 개 채널로 동시에 밀어 넣고 지역별 결제와 현지화, 스토어 심사를 통과시키는 출시·유통 운영 자본은 여전히 비어 있다.
인재 병목도 같은 모양이다. 한국에는 게임을 잘 만드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itch.io 빌드를 따로 관리하고, 에픽 분배를 협상하고, 브라질이나 베트남 지역 스토어에 게임을 얹는 일을 해본 퍼블리싱 오퍼레이터는 드물다. 고객 접근도 마찬가지다. BIC 2025는 약 270개 인디게임을 모았고, 오프라인 기간에 브라질과 남미, 유럽, 일본, 태국, 베트남 권역의 퍼블리셔와 투자사가 만나는 수출상담회를 연다. 좋은 시작이다. 다만 사흘짜리 미팅이 끝나면 그 관계를 1년 내내 굴려줄 상시 채널이 없다. 규제는 게임 자체보다 해외 결제와 환전, 세무 같은 운영 레이어에서 작은 팀의 발목을 잡는다. 네 병목 모두 창업자의 머리가 아니라 그 바깥의 배선 문제다.
부산이 점할 수 있는 빈틈
여기에 부산의 자리가 있다. 부산은 한국 최대 게임 전시인 G-STAR와 아시아 최대 인디 쇼케이스인 BIC를 한꺼번에 가진 유일한 좌표다. 트래픽은 있다. 부족한 건 그 트래픽을 펀딩과 퍼블리싱으로 바꿔주는 상시 엔진이다.
스타트업 펀딩 관점에서 보면 빈틈이 명확하다. 제작비가 아니라 멀티 스토어프론트 출시 자체를 대주는 작은 출시 펀드다. itch.io와 에픽, GOG, 험블, 그리고 Rokky형 지역 유통까지 동시에 깔아주는 비용을 회수형으로 대는 구조 말이다. 퍼블리싱 관점의 빈틈은 사흘 상담회를 12개월 계약으로 이어주는 운영 대행이다. 채널별 빌드 관리와 분배 협상, 현지화, 지역 결제를 한 팀이 패키지로 묶어 파는 마이크로 퍼블리셔다. 둘 다 거대 자본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부산이 이미 모아놓은 270개 팀과 글로벌게임센터 인프라 위에 얇게 얹는 레이어다.
반론은 이렇다. 스팀이 압도적이니 결국 거기에 집중하는 게 합리적이고, 채널을 늘리면 작은 팀의 운영 부담만 커진다는 것이다. 절반은 맞다. 그래서 핵심은 채널을 개발자에게 떠넘기지 않고 생태계가 운영 레이어로 흡수하는 데 있다. Lizard Smoothie의 Shape of Dreams가 스팀 출시 2주 만에 50만 장을 넘긴 사례는 단일 채널의 폭발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예외적인 행운이고, 그 아래 수백 팀은 두 번째, 세 번째 채널이 없어 사라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속도를 따라가야 하는 쪽
부산이 점할 빈틈은 결국 한 문장으로 줄어든다. 게임은 만들지만 내보내지 못하는 팀과, 갈라지는 글로벌 유통망 사이에 운영의 다리를 까는 일이다. 그 다리를 펀딩과 퍼블리싱 운영의 형태로 상시화하면, G-STAR와 BIC의 트래픽은 사흘짜리 축제가 아니라 1년짜리 출구가 된다.
창업자는 이미 세계를 보고 있다. 스팀 다음 줄에 어떤 스토어들이 서 있는지도 안다. 지금 느린 건 그들을 거기까지 데려다줄 생태계의 배선이다. 이제는 생태계가 창업자의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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