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BRIDGE
합류하기
Web3 Startups 칼럼

DAO는 결국 회사가 된다

수천 개의 트레저리가 Safe 멀티시그 몇 명에게 수렴하는 현실. 분산 거버넌스가 효율 앞에서 위계로 되돌아가는 패턴을 한국 web3 팀의 법인 대 DAO 선택 딜레마로 읽어본다.

엑싯요정 엑싯요정 · · 6분 읽기
DAO는 결국 회사가 된다

그림 번짐 ·수묵 담채 + 미니멀 선

서울 강남의 한 web3 팀이 토큰 발행 직전에 멈춰 섰다. 백서에는 'DAO 거버넌스'라고 적혀 있었는데, 변호사가 물었다. 자금은 누가 집행하나요. 답이 막혔다. 트레저리는 Safe 멀티시그 지갑에 들어 있고, 서명 권한은 창업자 두 명과 초기 투자자 한 명이 쥐고 있었다. 이게 DAO인가요, 아니면 그냥 서명자 세 명짜리 회사인가요. 그 질문 앞에서 팀은 토큰을 미뤘다.

이 장면은 예외가 아니라 전형이다. 온체인 데이터를 모아둔 DeepDAO 같은 트래커를 보면 등록된 DAO는 수천 개에 이르지만, 분기마다 실제로 표결이 일어나고 토론이 도는 조직은 그중 일부뿐이다. 대다수 트레저리는 Safe(구 Gnosis Safe) 멀티시그 위에서 소수 서명자가 움직인다. 거버넌스 토큰을 발행해도 투표는 보통 한 자릿수 주소가 좌우하고, 나머지는 위임하거나 침묵한다. 우아한 분산 구조를 설계해 출발한 조직이 1년 뒤 들여다보면 운영위원회 몇 명이 결정하는 평범한 회사처럼 굴러간다.

분산은 이상이고 위계는 중력이다

여기서 흔한 진단이 나온다. 그 팀이 게을렀다, 진짜 탈중앙화 의지가 없었다, 토크노믹스 설계를 못 했다. 창업자 개인의 역량과 진정성을 탓하는 익숙한 화법이다. 나는 이 진단이 틀렸다고 본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다.

조직이 빠르게 움직이려면 의사결정 비용을 낮춰야 한다. 1만 명이 토큰 투표로 마케팅 예산을 정하는 데는 일주일이 걸리지만, 운영진 세 명이 정하면 한 시간이면 된다. 시장은 한 시간짜리 조직에 보상한다. 그래서 분산 거버넌스를 내건 조직도 살아남으려면 핵심 결정을 소수에게 위임하게 된다. 이건 배신이 아니라 중력이다. 로널드 코스가 1937년에 던진 질문, '왜 시장이 있는데도 회사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이 여기 그대로 적용된다. 거래비용이 높으면 위계가 그 비용을 내부화한다. DAO는 거래비용을 코드로 낮추겠다고 약속했지만, 합의와 조율의 비용까지 없애지는 못했다. 그 비용 앞에서 다시 회사로 수렴한다.

미국과 유럽의 생태계는 이 수렴을 부정하지 않고 제도로 받아냈다. 미국 와이오밍주는 2021년 DAO를 LLC의 한 형태로 법제화했고, 마셜제도와 일부 관할권도 DAO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길을 열었다. a16z 같은 대형 펀드는 진작에 '점진적 탈중앙화'를 공식 전략으로 내세웠다. 처음엔 회사처럼 빠르게 만들고, 제품이 자리 잡으면 천천히 권한을 커뮤니티로 넘기라는 것이다. 글로벌 생태계는 DAO가 회사에서 출발해 회사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전제로 깔고 도구를 미리 깔아둔 셈이다. 한국 팀에는 그 도구가 없다.

병목은 의지가 아니라 인프라다

한국 web3 팀이 마주하는 벽은 네 겹이다. 자본, 인재, 규제, 고객 접근. 이 중 가장 단단한 건 규제, 그리고 규제가 만드는 구조적 공백이다.

자본부터 보자. 토큰을 발행하면 한국 벤처투자 제도권의 상당수는 투자를 주저한다. 가상자산 익스포저를 꺼리는 LP, 명확하지 않은 회계 처리, 평가의 어려움이 겹친다. 그래서 한국 web3 팀은 자본을 찾아 싱가포르와 두바이로 떠난다. 법인을 싱가포르에 세우고 재단을 두는 구조가 사실상 표준 경로가 됐다. 창업자가 영악해서가 아니라, 국내에 토큰 기반 조직을 담을 그릇이 없어서다.

규제가 핵심이다. 와이오밍이 DAO LLC를 만든 동안, 한국에는 DAO에 대응하는 법인격이 없다. 트레저리를 멀티시그에 두면 그 자산은 법적으로 누구의 것인가. 서명자 개인 자산인가, 존재하지 않는 조직의 것인가. 세금은 누가 내는가. 이 질문에 한국법은 깔끔한 답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 팀은 두 갈래 중 하나를 고른다. 그냥 주식회사로 등록하고 web3는 제품 레이어로만 쓰거나, 한국을 떠나거나. 2024년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췄을 뿐, '온체인 조직을 어떻게 법인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비워 두었다. 빈칸은 그대로 비용이 된다.

인재와 고객 접근도 여기 묶인다. 토큰 인센티브로 글로벌 기여자를 모으는 게 web3의 강점인데, 국내 규제 불확실성 탓에 한국 팀은 그 카드를 마음껏 쓰지 못한다. 고객, 즉 토큰 보유자와 사용자는 애초에 글로벌이다. 그런데 조직의 법적 기반은 국내에 묶여 있다. 제품은 세계를 보는데 법인은 국경 안에 갇혀 있는 불일치. 이게 한국 web3 팀이 국내에서만 강하고 밖으로는 못 크는 구조의 본질이다.

부산은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한때 이 공백을 메울 후보였다. 실증특례로 일부 실험은 열렸지만, DAO의 법인격이나 트레저리의 소유 구조 같은 근본 질문까지 풀어주는 단계로는 아직 나아가지 못했다. 특구가 샌드박스를 넘어 '온체인 조직의 등기소'가 될 수 있다면, 한국 web3 팀이 싱가포르로 떠나지 않을 첫 이유가 생긴다.

DAO가 회사로 수렴한다는 사실을 설계로 끌어안기

반론이 있다. DAO가 결국 회사로 수렴한다면, 굳이 DAO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냥 처음부터 회사로 하면 되지 않나. 절반은 맞다. 거버넌스 자체가 목적인 조직은 드물다. 하지만 종착점이 회사라고 해서 출발점과 경로까지 무의미한 건 아니다. 토큰은 글로벌 사용자에게 초기 자본과 정렬된 인센티브를 동시에 주는 도구다. 회사라는 종착지로 가더라도, 그 경로에서 토큰이 모아주는 유동성과 커뮤니티는 전통 법인이 복제하기 어렵다. 문제는 '회사냐 DAO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회사로 수렴하는 그 경로를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밟을 수 있느냐다.

그래서 필요한 조건은 세 가지다. 먼저 DAO를 회사로 인정하는 법인격. 와이오밍 LLC의 한국판, 혹은 부산 특구발 등기 모델이다. 다음은 토큰 발행 조직에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의 통로. 토큰을 보유한 펀드 구조와 그에 맞는 회계 기준이 필요하다. 마지막은 '점진적 탈중앙화'를 단계별로 인정하는 규제 프레임. 처음엔 회사로 빠르게 만들고 나중에 권한을 넘기는 경로를, 탈세나 책임 회피로 의심하지 않고 정상 경로로 받아주는 태도다.

한국 web3 창업자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안다. 그들은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우고, Safe로 트레저리를 운영하고, 점진적 탈중앙화를 설계한다. 세계 표준을 정확히 따라가고 있다. 창업자는 이미 세계를 보고 있다. 따라가지 못하는 건 그들을 담을 한국의 그릇이다. 이제 생태계가 그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

이 글이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글쓴이

엑싯요정

엑싯요정

스타트업 생태계 전략가

국내 1등엔 강한데 세계로 가는 다리 앞에서 멈추는 한국 팀들. 그 병목을 추적한다.

엑싯요정의 다른 글 보기 →

이 글이 유용했다면 공유해 주세요

엑싯요정 칼럼 더 보기 →

엑싯요정의 다른 글

전체 보기 →

관련 스토리

Web3 전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