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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책임지나, 한국의 AI 공백은

한국이 AI 시대에 진짜 위험한 지점은 모델 격차도 반도체도 아니다. 칼럼니스트 다섯을 한 테이블에 앉혀 부딪쳐 보면 위험은 더 깊고 조용한 곳에 있다.

데니 김 데니 김 ·
누가 책임지나, 한국의 AI 공백은

그림 각잡이 ·기하학 플랫 벡터

나는 이 매체에 다섯 개의 다른 눈을 심어 두었다. 같은 사건을 봐도 다섯 개의 다른 그림이 나온다. 오늘은 그 눈들을 한 테이블에 앉혀, "한국이 AI 시대에 진짜 위험한 지점은 어디인가"를 놓고 서로 멱살을 잡게 할 참이다. 발행인이 사회를 보는 게 아니라, 결국 발행인이 한쪽 편을 들 것이다.

먼저 우리 "0과 1 사이"를 부른다. 이 친구는 세상을 전부 배관과 통행료로 본다. 그가 쓴다. "한국의 위험은 단순하다. 우리는 남의 파이프 위에 살림을 차렸다. 모델도, 클라우드도, 토큰 과금도 전부 미국 회사의 미터기를 통과한다. AI를 많이 쓸수록 우리는 더 깊이 세입자가 된다. 위험은 못 따라가는 게 아니라, 따라갈수록 통행료가 커지는 구조 그 자체다." 날카롭다. 그리고 절반만 맞다.

여기서 나는 "30년차"를 끌어온다. 이 사람은 빠른 도입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반박한다. "통행료? 통행료는 돈으로 메우면 된다. 진짜 위험은 우리가 '쓰는 법'만 배우고 '만드는 깊이'를 쌓지 않는 거다. 조선과 반도체가 왜 우리 손에 남았나. 30년간 현장에서 불량과 수율과 공정을 몸으로 축적했기 때문이다. AI는 지금 전 산업이 '구독해서 쓰는' 기술로 들어오고 있다. 구독은 축적되지 않는다. 5년 뒤 우리는 능숙한 사용자가 되어 있고, 그 사이 제조의 암묵지는 프롬프트 몇 줄로 외주화돼 사라져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등이 서늘해진다. 통행료는 청구서지만, 축적의 실종은 청구서조차 오지 않는 위험이다.

그런데 "명암"이 코웃음을 친다. 이 냉소가는 효율의 뒷면만 본다. "두 분 다 너무 진지하시다. 한국의 진짜 위험은 격차가 아니라 과잉 적응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신기술을 가장 빨리, 가장 매끄럽게 도입하는 민족이다. 그게 문제다. 우리는 AI를 비판할 시간조차 갖기 전에 전 국민이 능숙하게 써버린다. 콜센터가, 신문이, 학교 숙제가, 행정 민원이 한 분기 만에 AI로 갈린다. 효율은 올라가고, 그 효율을 누가 가져가는지 묻는 사람은 사라진다. 위험은 AI가 아니라, AI에 대한 질문이 멸종하는 속도다." 반어 속에 뼈가 있다.

이쯤에서 "연준이형"이 손을 든다. 이 사람은 모든 걸 금리와 자본 비용으로 번역한다. "감성적인 이야기는 됐고. AI는 자본집약 게임이다. 모델 한 번 돌리는 데 드는 건 전기와 GPU, 곧 돈이다. 미국은 자국 통화로 무한히 찍어 데이터센터에 붓는다. 우리는 환율 방어하면서 같은 경주를 뛴다. 금리가 높을 때 대규모 인프라 투자는 한국 같은 나라에 더 비싸게 매겨진다. 위험은 기술이 아니라 자본 비용의 비대칭이다. 같은 야망에 우리는 더 비싼 이자를 낸다." 차갑고 정확하다.

마지막으로 "받아쓰기"가 칠판 앞에 선다. 어려운 걸 쉽게 푸는 사람이다. "정리해 드릴게요. 네 분 말이 다 맞아요. 그런데 다 빠뜨린 게 있어요. 지금 한국에서 AI 정책을 '국가의 기준'으로 세우는 사람이 안 보인다는 거예요. 통행료를 누가 협상하나요. 축적을 어느 학교가 가르치나요. 효율의 분배는 어느 법이 정하나요. 자본 비용은 어느 부처가 떠안나요. 기술은 빠른데, 그걸 받칠 공공의 문장이 없어요. 위험은 모델이 아니라, 규칙을 쓰는 손이 비어 있다는 거예요."

다섯 개의 눈이 다섯 개의 위험을 가리켰다. 통행료, 축적의 실종, 질문의 멸종, 자본의 비대칭, 규칙의 공백. 발행인은 평균을 내지 않는다. 평균은 비겁이다. 나는 한쪽에 선다.

나는 "30년차"와 "받아쓰기" 편에 선다. 그리고 "0과 1 사이"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를 반박하겠다. 통행료는 가장 눈에 띄는 위험이라 가장 덜 위험하다. 청구서가 오면 누구나 화를 내고, 화는 협상을 부른다. 진짜 무서운 위험은 청구서가 오지 않는 종류다. 제조 현장의 암묵지가 프롬프트로 외주화되며 조용히 증발하는 것, 그리고 그 증발을 막을 국가의 기준이 끝내 쓰이지 않는 것. 이 둘은 합쳐지면 한 문장이 된다. 한국은 AI를 가장 잘 쓰는 나라가 되는 동시에, AI 안에서 무엇을 지킬지 결정한 적 없는 나라가 될 수 있다.

"명암"의 냉소도 받아들인다. 우리는 질문할 틈 없이 적응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체념까지 받지는 않겠다. 질문이 멸종한다면, 멸종을 막는 게 매체의 일이다. 그게 내가 이 다섯 개의 눈을 한 몸에 심어 둔 이유다.

그래서 결론은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그래서 누가 책임지나. 통행료는 기업이 협상하고, 자본 비용은 정부가 분담할 수 있다. 그러나 축적을 가르치는 일과 규칙을 쓰는 일은 미룰수록 비용이 복리로 불어난다. 한국의 진짜 위험은 뒤처지는 게 아니다. 가장 능숙한 손으로, 가장 깊은 것을 놓치는 것이다. 나는 이 매체가 그 놓침을 매주 기록하게 만들 것이다. 책임은 거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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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데니 김

데니 김

SOUTH BRIDGE 발행인. 부산에서 AI와 산업의 구조 변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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