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각잡이 ·기하학 플랫 벡터
- 1
한 게시판에서 댓글창이 사라졌다. 운영자는 "건강한 토론 환경"이라고 적었다. 아무도 끌려가지 않았고, 아무 문장도 빨간 줄로 지워지지 않았다. 그냥 자리가 없어졌을 뿐이다. 이걸 검열이라고 부르긴 어색하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 2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오래 검열의 반대말로 배웠다. 누가 입을 막으면 자유의 침해, 막지 않으면 자유. 이 구도에는 손이 보인다. 손목을 잡는 국가, 삭제 버튼을 누르는 운영자.
- 3
그런데 지금 여론장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그 손이 안 보인다. 글은 올라간다. 삭제도 안 된다. 다만 아무에게도 도달하지 않는다. 노출 0, 추천 노출 제외, 연관 게시물 미표시. 살아 있는데 보이지 않는 글이 매일 생산된다.
- 4
여기서 프리즘의 질문은 하나다. 표현의 자유에서 핵심 비용은 '말할 수 있는가'에서 '닿을 수 있는가'로 이미 넘어갔는데, 우리 법과 감각은 아직 앞 문장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닌가.
- 5
이 일은 효율의 이름으로 진행됐다. 혐오 발언, 스팸, 불법 촬영물, 도배. 사람이 일일이 못 막는다. AI 모더레이션은 초당 수천 건을 분류한다. 실제로 욕설과 디지털 성범죄물 차단에서 이 자동화는 사람을 구했다. 이건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 6
문제는 같은 파이프라인이 '도달률 분배기'로도 작동한다는 점이다. 무엇을 위로 올리고 무엇을 아래로 가라앉힐지 정하는 가중치. 그 가중치는 공개되지 않는다. 기업 자산이라서, 어뷰징 방지라서, 영업비밀이라서.
- 7
그래서 한국 온라인 여론장은 지금 이중으로 닫혀 있다. 무엇이 차단됐는지 모르고, 무엇이 그냥 안 보이게 됐는지는 더 모른다. 앞엣것은 그래도 통계라도 나온다. 뒤엣것은 통계 자체가 설계상 존재하지 않는다.
- 8
여기서 누가 비용을 떠안는가. 일단 글쓴 사람은 자기 글이 가라앉은 걸 모른다. 항의할 대상도 모른다. 알고리즘은 피고가 되지 않는다. 이의신청 창구는 대개 자동응답이고, 사람 검토자에게 닿는 길은 일부러 좁다.
- 9
다음 비용은 모더레이션 노동자가 진다. 자동 분류 뒤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가장 끔찍한 콘텐츠를 하루 종일 보고 판정하는 외주 검수자들. 페이스북 모더레이터들의 외상후스트레스 집단소송은 이 노동이 어디로 외주됐는지 보여줬다. 효율의 깔끔한 화면 뒤에서, 비용은 가장 약한 계약 단계로 흘러간다.
- 10
그리고 시민이 진다. 광장이 어떤 모양인지 아무도 전체를 못 본다. 내가 보는 타임라인이 모두의 타임라인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여론은 측정 불가능한 무언가가 된다. 선거를 앞두고 이건 추상적인 걱정이 아니다.
- 11
여기서 흔한 반론이 나온다. "사적 플랫폼이 자기 공간 노출을 정하는 건 당연한 영업의 자유 아닌가. 다 보여주면 혐오와 스팸이 광장을 점령한다." 절반은 맞다. 큐레이션 없는 광장은 가장 시끄러운 자가 이기는 곳이 된다.
- 12
그런데 영향력이 일정 규모를 넘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수천만이 거기서 뉴스를 보고 정치적 판단을 한다면, 그건 사적 카페가 아니라 사실상 공적 인프라다. 전기와 통신을 사기업이 운영해도 우리가 규칙을 다는 이유와 같다. 규모가 권력을 만들면, 권력에는 설명 의무가 붙는다.
- 13
그래서 프리즘은 기술을 멈추자고 말하지 않는다. AI 모더레이션은 필요하다. 묻는 건 작동 방식이다. 누구의 규칙으로 무엇을 가라앉힐지 정하는가, 그리고 가라앉은 쪽은 그 사실을 알고 따질 수 있는가.
- 14
한국이 만들 규칙은 세 줄로 줄일 수 있다. 도달 제한도 제재다. 차단만이 아니라 노출 강등도 당사자에게 통지하라. 사람 심사로 가는 이의신청 경로를 좁히지 말고 의무화하라. 일정 규모 이상 플랫폼은 모더레이션 결과를 집계해 공개하라. 무엇을, 얼마나, 왜 가라앉혔는지.
- 15
EU가 디지털서비스법으로 이미 그 방향을 잡았다. 부산의 한 소상공인 커뮤니티든 전국 포털이든, 보이지 않는 강등이 영업과 발언을 좌우한다면 같은 질문이 적용된다. 누가 가중치를 쥐고 있고, 그걸 따질 창구가 있는가.
- 16
광장에서 댓글이 사라질 때, 우리가 잃는 건 댓글이 아니다. 무엇이 사라졌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는 상태, 그것이 진짜 손실이다. 표현의 자유의 다음 전선은 삭제 버튼이 아니라 노출 슬라이더 위에 있다. 그 슬라이더를 누가, 무슨 규칙으로 움직이는지. 지금 정하지 않으면, 그건 이미 정해진 채로 우리에게 도착한다.
이 글이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이 글이 유용했다면 공유해 주세요
명암 칼럼 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