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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빈 화면 앞에서 막막했던 경험은 거의 사라졌다. 프롬프트 한 줄이면 블로그 글, 보고서, 뉴스레터, 제안서가 몇 초 만에 완성된 모습으로 쏟아진다. 모두가 이걸 효율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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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다. 쓰기는 이렇게 쉬워졌는데, 읽히기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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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이라는 단어는 늘 비용을 줄인다는 뜻으로 쓰인다. 맞다. AI는 글 한 편의 생산 비용을 사실상 0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이 비용이 사라진 게 아니라 옮겨갔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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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이 공짜가 되면, 희소한 자원은 생산물이 아니라 그걸 받아줄 주의력이 된다. 글은 무한히 늘어나는데 사람의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이고, 눈은 두 개다. 공급이 폭발하면 가격은 다른 곳에서 폭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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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 기술은 누구의 비용을 줄였고, 누구의 비용을 늘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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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을 줄인 쪽은 분명하다. 콘텐츠를 양으로 찍어내는 사람, 검색 상위를 노리는 마케터, 트래픽으로 광고를 파는 플랫폼. 이들에게 무한 생산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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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을 떠안은 쪽은 읽는 사람이다. 진짜와 가짜, 검증된 것과 그럴듯하게 지어낸 것을 가려내는 노동이 통째로 독자에게 전가됐다. 예전엔 편집자와 데스크가 했던 일을, 이제 각자가 매일 무보수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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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플랫폼의 역할을 짚어야 한다. 추천 알고리즘은 '좋은 글'이 아니라 '오래 붙잡는 글'을 고른다. AI 양산물은 이 기준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래서 피드는 점점 평균을 향해 수렴하고, 모두 비슷한 톤으로 비슷한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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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모델 붕괴라 부르는 연구자들이 있다. AI가 AI의 출력을 학습하고, 그 출력이 다시 데이터가 되는 순환. 그 끝은 풍요가 아니라 평균값의 늪이다. 정보는 많아지는데 신호는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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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지막까지 비싸게 남는 것이 등장한다. 큐레이션, 신뢰, 사람의 보증. 누군가 자기 이름을 걸고 "이건 내가 읽었고, 사실이고, 읽을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행위.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건 문장이 아니라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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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강한 반론이 있다. 그래도 좋은 글은 결국 떠오르지 않나. 품질이 이긴다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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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만 맞다. 소음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품질은 발견되기 전에 묻힌다. 좋은 글이 이기는 게 아니라, 좋은 글을 찾아줄 신뢰의 통로를 가진 사람이 이긴다. 둘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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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이 구조는 더 날카롭게 드러난다. 중심이 아닌 도시의 목소리는 원래도 작았는데, 이제 서울발 양산 콘텐츠의 홍수에 한 번 더 덮인다. 알고리즘은 이미 큰 목소리를 더 키우도록 설계돼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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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래서 비중심의 기회가 생긴다. 모두가 무한 복제로 갈 때, 복제 불가능한 것, 그러니까 특정 장소에 발 딛은 구체적 목격과 그걸 보증하는 사람의 이름이 오히려 희소재가 된다. 소음이 클수록 진짜 목소리의 값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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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멈추자는 게 아니다. AI 생산은 되돌릴 수 없고 되돌릴 이유도 없다. 다만 이 도구가 누구의 규칙으로 작동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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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은 만들 수 있다. AI 생성물의 출처 표시 의무, 추천 알고리즘이 무엇을 최적화하는지에 대한 공개, 사람의 검증 노동에 값을 매기는 구조. 이건 기술 거부가 아니라 설계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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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물어야 할 건 하나다. 무한히 쓸 수 있게 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읽을지 누가 정하게 둘 것인가. 그 결정권을 트래픽 알고리즘에 넘길지, 이름을 건 사람들에게 둘지. 효율은 이미 우리 손에 있다. 정해야 할 건 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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