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숯 ·목탄·연필 스케치 + 워시
금요일 밤, 한 사람이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켠다. 30초쯤 화면을 훑다가 "오늘 너에게 추천"이라는 줄에서 두 번째 작품을 누른다. 자기 취향대로 골랐다고 느낀다. 거기까지가 정확히 설계된 장면이다. 고른 건 그 사람이지만, 무엇을 후보로 띄울지는 추천 엔진이 정했다. 효율은 분명하다. 탐색 시간이 줄고, 실패한 선택이 줄고, 만족도가 올라간다. 문제는 그 효율의 대가가 어디로 갔느냐다.
취향은 언제 자산에서 잔여물로 바뀌었나
한때 취향은 개인이 쌓아 올린 자산에 가까웠다.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영화를 곱씹는지는 시간과 시행착오를 들여 만든 사적 재산이었다. 그 자산의 핵심은 비효율에 있었다. 잘못 산 음반, 끝까지 못 본 영화, 우연히 들른 동네 책방의 헛걸음. 그 헛걸음들이 모여 한 사람의 윤곽이 됐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바로 그 비효율의 제거다. 멜론과 유튜브뮤직이 다음 곡을 알아서 잇고, 쿠팡과 무신사가 다음 구매를 미리 깔아두고, 인스타그램 릴스가 다음 15초를 끊임없이 채운다. 헛걸음이 사라진 자리에 추천이 들어선다. 편해진 건 맞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취향의 소유 구조가 조용히 바뀌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가장 정확히, 가장 먼저 아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 플랫폼이 됐다.
이걸 소유가 아니라 구독으로 바꿔 보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취향은 이제 내 안에 저장된 무엇이 아니라, 추천 엔진이 매 순간 갱신해 빌려주는 상태값에 가깝다. 로그인을 끊고 앱을 지우면 그 취향은 따라오지 않는다. 9년치 청취 기록과 그걸로 학습된 선호 벡터는 플랫폼 서버에 남는다. 임차인은 사용자이고, 임대인은 알고리즘이다.
줄어든 비용과 늘어난 비용은 같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
효율을 옹호하는 쪽 논리는 단순하다. 좋아할 걸 빨리 찾아주니 모두에게 이득 아니냐는 것이다. 절반만 맞다. 줄어든 비용과 늘어난 비용의 청구서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발행되기 때문이다.
줄어든 건 사용자의 탐색 비용이고, 동시에 늘어난 비용은 세 가지다. 먼저 발견의 비용이 사라지면서 우연도 사라진다. 추천 엔진은 본인의 과거를 재료로 미래를 짓는다. 어제의 나와 닮은 것만 끊임없이 권한다. 취향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 어제의 좌표로 수렴하는 것이다. 다음은 창작자 쪽으로 옮겨가는 비용이다. 알고리즘이 띄워주는 후보 안에 들려고 음악은 도입부 15초에 후렴을 욱여넣고, 영상은 첫 3초에 모든 걸 건다. 추천 가능한 형식이 좋은 형식을 밀어낸다. 마지막은 가장 조용한 비용이다. 한 사람의 선호 데이터가 광고 타기팅과 가격 차별의 원료로 재가공된다. 같은 항공권이 누군가에겐 더 비싸게 뜨는 식이다.
여기서 핵심 질문으로 돌아가자. 이 효율은 누구의 권력을 키우는가. 사용자는 편의를 얻지만 데이터의 통제권은 갖지 못한다. 내 취향으로 만들어진 모델이 정작 나를 다시 가두고, 그 모델의 잔여가치, 즉 더 정교해진 예측력과 광고 단가는 플랫폼이 회수한다. 임대료를 내는 쪽과 임대 수익을 챙기는 쪽이 갈라져 있다. 이게 구독 모델의 본질이다.
거부가 아니라 설계를 다시 쓰는 문제
오해는 막자. 추천을 끄고 동네 음반가게로 돌아가자는 낭만이 아니다. 추천 시스템은 정보 과잉 시대에 실질적 가치를 만든다. 멈추자는 게 아니라, 누구의 규칙으로 돌아갈지를 다시 정하자는 것이다.
방향은 셋이다. 하나는 데이터 이동권이다. 유럽연합은 디지털시장법으로 핵심 플랫폼이 사용자 데이터를 옮길 수 있게 강제하는 길을 열었다. 한국도 마이데이터를 금융에 한정하지 말고 콘텐츠와 선호 데이터로 넓혀, 9년치 취향 기록을 다른 서비스로 들고 나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임차한 취향을 임차인이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둘은 추천 로직의 투명성이다. 왜 이게 떴는지 설명을 요구할 권리, 그리고 추천을 끄거나 시간순 같은 비개인화 보기로 되돌릴 권리. 인스타그램이 시간순 피드를 선택지로 되살린 것처럼, 선택권 자체가 규제 대상이 돼야 한다. 셋은 우연을 위한 여백이다. 추천 100퍼센트가 아니라, 내 좌표 바깥을 일정 비율 강제로 섞는 설계. 시장이 알아서 할 일이 아니니 규칙으로 못 박아야 한다.
부산의 한 독립서점이 큐레이션으로 단골을 만드는 방식을 떠올려 본다. 거기엔 주인의 편향과 우연이 있고, 손님은 그 편향을 알고 찾는다. 알고리즘 추천에 빠진 게 정확히 그 점이다. 누가 어떤 의도로 이 후보를 골랐는지가 보이지 않는다. 편향이 없어서가 아니라, 편향이 숨어 있어서 위험하다.
기술을 멈추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추천 엔진은 남는다. 다만 그 엔진이 내 취향의 임대인 행세를 할지, 아니면 내가 통제권을 쥔 도구로 남을지는 기술이 아니라 규칙이 정한다. 취향이 사라진 자리에 알고리즘이 들어왔다면, 다음 질문은 하나다. 그 자리의 임대료는 누가 정하고, 그 잔여가치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이건 설정 메뉴에서 끄고 켜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쓰는 규칙으로 정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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