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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ups Culture 칼럼

멘탈도 사장이 부담하라

번아웃을 개인의 회복탄력성 문제로 번역하는 순간, 구조의 실패는 창업가 한 사람의 약함으로 회계처리된다. 이 장부는 누가 설계했나.

명암 명암 · · 5분 읽기
멘탈도 사장이 부담하라

그림 조각 ·종이 콜라주 컷아웃

새벽 다섯 시 기상, 콜드 샤워, 미라클 모닝 인증샷. 창업 커뮤니티 피드를 넘기다 보면 같은 장면이 계속 돌아온다. 잠을 줄이고 자기를 갈아 넣는 일이 게으름의 반대가 아니라 직업윤리의 증거로 전시된다. 사람들은 이걸 보고 '독하다'고 부른다. 나는 다른 단어가 떠오른다. 외주.

회복탄력성은 원래 좋은 말이다. 무너졌다 다시 서는 힘. 문제는 이 단어가 창업판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투자 시장이 얼어붙어 후속 라운드가 막히고, 인건비는 오르는데 매출은 계획표를 배신하고, 정부 지원사업은 1년 단위로 끊긴다. 셋 다 시장과 제도의 변수다. 그런데 창업가가 무너지면 진단명은 '멘탈 관리 실패'가 된다. 구조적 압력이 개인의 심리 결함으로 환산되는 순간, 비용 청구서가 슬그머니 한 사람 앞으로 넘어간다.

효율은 누구의 비용을 줄였나

갓생 서사를 효율의 언어로 다시 읽어보자. 누군가의 비용이 줄어든 건 분명하다. 창업가가 24시간 가용 상태로 자기를 관리하면 그를 둘러싼 모든 주체의 위험이 낮아진다. 투자자는 번아웃을 실사 항목에 넣지 않아도 된다. 액셀러레이터는 멘토링 대신 '마인드셋 특강'으로 책임을 갈음한다. 플랫폼과 미디어는 자기착취를 영웅담으로 콘텐츠화해 조회수를 거둔다. 효율은 분명 발생했다. 다만 그 효율은 창업가의 수면, 관계, 건강이라는 계정에서 인출된 것이다.

여기서 '회복탄력성을 키우라'는 조언은 기술적으로 정교한 비용 전가 장치다. 명상 앱을 깔고, 번아웃 워크숍에 등록하고, 셀프 코칭 콘텐츠를 구독한다. 회복마저 개인이 사야 할 서비스가 되는 동안, 정작 무너뜨린 구조는 한 번도 호명되지 않는다. 멘탈이 자산이라는 표현이 위험한 건 그래서다. 자산이라면 손실도 자기 책임이고, 관리도 자기 몫이며, 고갈되면 시장에서 퇴출되어 마땅한 것이 된다.

데이터가 된 자기관리

이 도덕화는 이제 측정 가능한 형태로 진화한다. 창업가의 일과는 갈수록 데이터로 남는다. 깃허브 커밋 시각, 슬랙 응답 속도, 협업 툴의 마지막 접속 기록. 액셀러레이터와 일부 투자자는 이런 디지털 흔적에서 '몰입도'를 읽는다고 말한다. 새벽 두 시의 커밋이 헌신의 증거로 해석되는 환경에서, 쉬는 것은 시그널 관리의 실패가 된다.

문제 정의를 바꿔야 한다. 핵심 질문은 '창업가가 얼마나 단단한가'가 아니라 '누가 이 사람의 한계를 측정하고, 그 측정값으로 무엇을 결정하는가'다. 측정의 권력은 한쪽에 쏠려 있다. 창업가는 자기 데이터가 어떤 기준으로 읽히는지 모른 채 끊임없이 가용성을 증명해야 한다. 노동연구가 오래 지적해온 '경계 없는 노동'의 전형이다. 다만 여기엔 고용계약조차 없어서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규정도, 산업재해 보상도 닿지 않는다. 대표이사는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므로, 그가 갈려 나가도 제도는 침묵한다.

반론, 그리고 더 나은 설계

당연히 반론이 있다. 창업은 본질적으로 위험을 떠안는 선택이고, 그 강도를 견디는 능력 자체가 사업가의 실력이라는 것이다. 절반은 맞다. 불확실성은 창업에서 떼어낼 수 없는 속성이다. 그러나 견딜 수 있는 위험과 떠넘겨진 위험은 다르다. 후속 투자 관행의 불투명성, 지원사업의 단기성, 실패가 신용불량으로 직결되는 연대보증의 잔재. 이것들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누군가 설계한 규칙이다. 설계된 것은 다시 설계할 수 있다. '멘탈이 약해서 졌다'는 서사는 바로 이 재설계의 가능성을 시야에서 지운다.

기술도 제도도 멈추자는 게 아니다. 규칙을 바꾸자는 것이다. 가령 창업가의 활동 데이터를 투자 판단에 쓸 때, 어떤 신호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최소한 본인에게는 고지하는 것. 실패한 창업가의 채무를 무한책임에서 떼어내 재도전의 비용을 사회가 일부 나눠 지는 것. 한국은 이미 부분적인 답을 갖고 있다. 정책금융기관의 재창업 지원과 연대보증 폐지 흐름이 그 단초다. 다만 이것이 '약한 자를 구제한다'는 시혜의 언어가 아니라, '구조가 만든 비용은 구조가 분담한다'는 회계 원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부산의 센텀과 해운대 일대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면 이 문제가 더 선명해진다. 수도권보다 투자 풀이 얕고 회수 경로가 짧은 곳일수록, 창업가 개인의 '버티는 힘'에 모든 부담이 쏠린다. 인프라가 채우지 못한 자리를 개인의 멘탈로 메우라고 요구받는 셈이다. 회복탄력성 강의 한 편이 그 격차를 메울 리 없다.

멘탈은 자산이 아니다. 적어도 창업가 혼자 짊어질 자산은 아니다. 질문은 회복탄력성의 총량이 아니라, 그 회복의 비용을 누구의 장부에 적을 것인가다. 우리는 이미 한 사람의 새벽을 효율로 계산하는 법을 안다. 이제 그 효율이 누구의 규칙으로 작동하는지를 정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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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

명암

기술사회 비평가

새 기술이 만든 효율의 청구서를 펼친다. 누가 편해지고 누가 그 값을 치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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