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윤슬 ·소프트 그라데이션 에어브러시
한 창업자가 무대에 선다. 직원은 없는데 매출은 연 천억을 향한다. 슬라이드 한 장에 회사 전체가 담긴다. 본인 사진 한 장이 전부다. 객석이 박수친다. 효율의 절정처럼 보이는 장면이다. 인건비도 회의도 조직도도 없이 가치가 솟아오른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빠진 건 인건비가 아니라 인구조사다. 회사가 천억을 만든다면 그 천억어치 노동은 어딘가에서 분명히 일어났다. 사라진 건 일이 아니라 일의 이름이다. '1인 유니콘'은 노동을 없앤 모델이 아니라 노동을 회계장부 바깥으로 옮긴 모델이다.
효율이 옮긴 비용의 좌표
효율을 따질 때 우리는 보통 한쪽 장부만 본다. 창업자의 비용이 줄었다. 직원 급여, 4대 보험, 사무실 임대, 관리 부담이 0에 수렴한다. 무대 위 서사는 여기까지다.
다른 쪽 장부를 펴면 같은 노동이 다시 나타난다. 고객 응대는 마닐라나 다바오의 콜센터 외주로, 디자인은 건당 5달러짜리 크라우드 플랫폼으로, 데이터 라벨링은 케냐와 인도의 클릭워커로, 영상 편집은 단가가 후려쳐진 한국 프리랜서로 흩어진다. 그리고 가장 큰 몫은 AI 모델 자체로 간다. 그 모델은 수십만 명의 글과 그림과 코드를 동의 없이 학습한 결과물이다. 노동이 사라진 게 아니라,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형태로 잘게 부서진 것이다.
경제학에는 이런 이동을 부르는 오래된 이름이 있다. 외부화다. 공장이 폐수를 강에 흘려보내 처리비용을 하류 주민에게 떠넘기듯, 1인 유니콘은 고용의 안정성과 협상력을 플랫폼 노동자에게 떠넘긴다. 강물 대신 사람의 시간이 하류로 흐른다.
1인이라는 단어가 가리는 피라미드
여기서 핵심을 하나 짚자. '1인'은 노동의 단위가 아니라 가치 청구권의 단위다. 그 한 명은 일을 다 한 사람이 아니라, 흩어진 노동의 결과를 한곳으로 모을 권리를 쥔 사람이다.
전통 기업의 피라미드는 적어도 눈에 보였다. 조직도가 있고 직급이 있고, 누가 무엇으로 기여했는지 장부에 남았다. 그래서 노조도 단체협상도 근로기준법도 그 피라미드 위에서 작동할 수 있었다. 1인 유니콘은 같은 피라미드를 그대로 두되 도면만 지운다. 기여한 수백 명은 저마다 자기가 독립 사업자라고 적힌 계약서를 들고 흩어져 있다. 서로를 모르고, 같은 결과물에 기여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동료가 없으면 교섭도 없다.
쿠팡 물류와 배달 플랫폼을 둘러싼 지난 몇 년의 분쟁이 보여준 게 바로 이 구조다. 알고리즘이 일을 배분하고 단가를 정하지만, 책임을 물을 사용자는 법적으로 흐릿하다. '1인 유니콘'은 이 흐릿함을 회사 전체 규모로 키운 버전이다. 통제는 한 명에게 모이고 위험은 보이지 않는 다수에게 퍼진다. 통제와 비용이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데이터라는 두 번째 외주
외부화되는 건 노동만이 아니다. 1인 기업의 진짜 직원은 AI 모델이고, 그 모델의 진짜 노동자는 학습 데이터를 만든 사람들이다. 블로그를 쓴 사람, 사진을 올린 사람, 질문에 답해준 사람. 이들은 자기 창작물이 누군가의 천억 매출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통보받지 못한다. 창작은 한번 공개되는 순간 무한히 복제 가능한 원료가 되고, 원료에는 로열티가 붙지 않는다.
여기서 나올 법한 반박이 있다. 효율은 결국 모두를 이롭게 한다, 값싼 도구가 풀리면 누구나 창업할 수 있고 파이가 커진다는 것이다. 일부는 맞다. 진입장벽은 분명히 낮아졌다. 그러나 파이가 커지는 것과 그 파이를 어떻게 자르느냐는 다른 질문이다. 도구가 싸질수록 차별화의 원천은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를 학습시킨 데이터, 그리고 그것을 모으는 플랫폼으로 올라간다. 1인 창업자조차 결국 소수의 모델 제공자에게 매인 세입자다. 효율은 분배의 알리바이가 아니다. 누가 효율의 과실을 청구하느냐는 효율과 별개로 설계되는 정치다.
한국이 정해야 할 규칙
기술을 멈추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AI로 혼자 큰 매출을 내는 일 자체는 막을 이유도 막을 방법도 없다. 정해야 할 건 그 모델이 누구의 규칙 위에서 작동하느냐다.
세 가지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먼저 보이지 않는 노동을 다시 장부에 올리는 일이다. 플랫폼 노동자의 알고리즘 단가 산정 근거를 공개하게 하고, 결과물 한 건에 기여한 외주 사슬을 추적할 수 있게 만드는 것. 한국은 이미 플랫폼 종사자 보호 논의를 시작했지만, '1인 유니콘'이라는 새 외피는 그 논의가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로 빠르게 도망친다. 다음은 학습 데이터에 대한 창작자의 청구권이다. 동의와 보상의 최소 기준 없이 만들어진 모델 위의 매출은, 정산되지 않은 채무를 안고 있는 매출이다. 마지막은 '1인'이라는 신화 자체에 대한 통계적 정직성이다. 매출 뒤에 실제로 몇 명의 노동 시간이 들어갔는지 재는 지표가 없으면, 우리는 사라진 인구를 계속 박수로만 환송하게 된다.
부산에서 1인 콘텐츠 기업을 꾸리는 청년이 마닐라 콜센터, 케냐 라벨러와 한 사슬로 엮여 있다는 사실은 효율의 그림자가 얼마나 멀리까지 드리우는지를 보여준다. 같은 사슬 안에서 누구는 청구권을 쥐고 누구는 단가표만 받는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1인 유니콘은 기술이 만든 기적이 아니라, 기술이 가능하게 한 회계의 선택이다. 노동을 장부 밖으로 밀어낼 것인가, 다시 장부 안으로 불러올 것인가. 기술을 멈추자는 게 아니다. 그 한 명의 이름 뒤에 가려진 수백 명을 누구의 규칙으로 셈할지 정하자는 것이다.
이 글이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이 글이 유용했다면 공유해 주세요
명암 칼럼 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