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즈오브롬바르디아가 잘 팔리는 동안
네오위즈가 퍼블리싱한 라이즈오브롬바르디아 같은 한국발 작품이 스팀 글로벌 차트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데브시스터즈는 쿠키런 이후로도 자체 제작과 외부 발굴을 함께 가져가며 인디 라인업을 늘렸다. 평단 반응도 나쁘지 않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 게임 산업의 좋은 장면이다.
그런데 이 장면을 조금 길게 들여다보면 불안한 구석이 보인다. 잘 만든 게임이 잘 팔린 게 아니라, 잘 만든 게임 가운데 운 좋게 스팀의 알고리즘과 큐레이션에 걸린 게임이 팔렸다는 쪽에 가깝다. 같은 완성도의 게임 수십 개가 출시 첫 주에 디스커버 큐 바깥으로 밀려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우리가 박수 치는 한 개의 성공 뒤에는 발견되지 못한 아흔아홉 개가 있다.
이건 운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어느 마디는 가졌고 어느 마디는 못 가졌느냐의 문제다.
운으로 보면 다음 작품을 설명할 수 없다
한국 인디의 약진을 개별 히트작의 우연으로 읽는 시각이 가장 흔하다. 편하지만 틀린 독법이다. 우연이라면 다음 작품을 준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 글로벌에 통하는 인디가 나오는 건, 1990년대 패키지 시대와 2000년대 온라인게임 시대, 2010년대 모바일 시대를 거치며 기획과 아트, 엔진, 라이브 운영 노하우가 사람의 몸과 스튜디오의 관습에 쌓였기 때문이다. 넥슨과 엔씨를 거친 개발자가 독립해 작은 팀을 차리고, 그 팀이 만든 결과물이 세계 시장의 평균 완성도를 넘어선다. 제작 역량의 축적은 이미 일어났다. 이 대목에서 한국은 추격을 끝냈다.
문제는 다른 마디다. 만드는 힘은 국산화됐는데, 그 게임을 전 세계 수억 명의 게이머 눈앞에 띄우는 힘은 여전히 남의 것이다. 스팀이라는 단일 관문이 디스커버리의 병목을 쥐고 있고, 한국 스튜디오는 그 관문 앞에 줄을 선 신청자일 뿐이다.
스팀이 유통을 공짜로 풀어준 이유
여기서 구조를 보는 사람은 질문을 바꾼다. 스팀은 왜 누구나 게임을 올릴 수 있게 만들었나. 선의가 아니다.
밸브는 유통이라는 마디를 일부러 모듈화하고 상품화했다. 누구나 100달러만 내면 게임을 올린다. 유통은 공짜에 가까운 인프라가 됐고, 그 결과 해마다 수만 개의 게임이 쏟아진다. 유통을 풀어버리자 진짜 희소 자원이 한 단계 위로 옮겨갔다. 바로 발견이다. 게임이 넘쳐날수록 눈에 띄는 자리의 가치가 폭등한다. 밸브는 유통에서 통행세를 버리는 대신, 디스커버리 알고리즘과 추천 슬롯이라는 더 위쪽 마디에서 30퍼센트의 수수료와 사실상의 생사여탈권을 쥐었다.
이게 가치사슬 재편의 핵심이다. 한 마디가 상품화되면 권력과 이익은 그 위나 아래의 아직 희소한 마디로 옮겨간다. 한국 스튜디오가 이제 누구나 글로벌 출시가 가능하다고 기뻐하는 순간, 진짜 병목은 이미 발견의 영역으로 올라가 있었다. 출시는 쉬워졌고 발견은 더 어려워졌다. 우리가 국산화한 건 가장 쉬워진 마디였다.
선진국은 발견을 산업으로 축적했다
추격의 시대에 한국은 잘 만들면 팔린다는 명제로 이겼다. 반도체도 자동차도, 더 좋은 물건을 더 싸게 만들면 시장이 알아서 사줬다. 만드는 역량이 곧 경쟁력이었다.
프런티어의 시대에는 이 명제가 깨진다. 잘 만드는 건 입장권일 뿐이고, 발견되는 건 별개의 역량이다. 게다가 발견은 한 번의 마케팅 캠페인으로 사는 게 아니라 길게 쌓는 시스템이다. 어떤 텍스트로 위시리스트가 늘고, 어떤 트레일러 첫 3초가 환불률을 낮추고, 어느 시점의 디스카운트가 알고리즘 노출을 끌어올리는지에 대한 데이터와 현장 감각. 이건 시행착오로만 쌓인다.
미국과 유럽의 인디 퍼블리셔가 가진 게 정확히 이 축적이다. 그들은 수백 개의 게임을 실패시키며 발견의 패턴을 데이터로 쥐었다. 한국은 만드는 쪽의 시행착오는 30년 쌓았지만, 글로벌 발견의 시행착오는 거의 쌓지 못했다. 데브시스터즈나 네오위즈가 퍼블리싱에 나선 건 그래서 단순한 사업 다각화가 아니라, 비어 있는 마디를 메우려는 본능적 움직임으로 봐야 한다.
여기서 정직한 반론을 마주해야 한다. 발견 같은 건 산업 역량이 아니라 그냥 좋은 게임이면 입소문으로 풀리는 평범한 문제 아니냐는 반박이다. 절반은 맞다. 압도적 명작은 병목을 뚫는다. 그러나 산업은 한 개의 명작이 아니라 백 개의 평작과 수작으로 굴러간다. 한 번의 천운으로 뚫는 능력과, 백 개를 안정적으로 발견시키는 능력은 전혀 다른 자원이다. 산업 정책이 책임져야 할 건 후자다.
한국이 축적해야 할 것
그래서 한국이 쌓아야 할 건 다음 히트작이 아니라 발견의 인프라다.
먼저 글로벌 퍼블리싱 데이터를 공동 자산으로 만드는 일이다. 개별 스튜디오가 저마다 스팀 알고리즘과 부딪히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구조는 낭비다. 위시리스트 전환율, 트레일러 리텐션, 지역별 가격 탄력성 같은 데이터가 스튜디오 사이에 쌓이고 공유되는 마디가 필요하다. 다음은 발견을 직업으로 삼는 인력층이다. 만드는 개발자는 충분하다. 부족한 건 글로벌 출시 전략을 데이터로 설계하는 퍼블리싱 전문가다. 마지막은 플랫폼 종속을 줄이는 다변화다. 스팀이라는 단일 거부권 앞에 전부를 거는 한, 통행세는 영원히 밖으로 나간다.
부산을 보자. 지스타가 매년 열리지만 그건 전시의 장이지 발견의 인프라가 아니다. 전시는 나흘이면 끝나고 데이터는 남지 않는다. 부산이 인디 스튜디오의 글로벌 퍼블리싱 데이터를 연중 모으고 공유하는 거점이 된다면, 그래서 한 스튜디오의 실패가 다음 스튜디오의 자산으로 넘어가는 구조를 만든다면, 전시 도시에서 발견 역량을 축적하는 도시로 좌표가 바뀐다.
내일 게임 비트를 쓰는 기자라면 다음 질문을 새겨두면 된다. 이 한국 게임은 잘 만들어서 팔렸나, 발견의 어느 마디를 누가 쥐고 통행세를 걷었나. 그 통행세는 어디로 흘러나갔나.
추격의 시대에는 정답을 빨리 찾는 나라가 이겼다. 잘 만들면 됐다. 프런티어의 시대에는 질문을 먼저 만든 나라가 이긴다. 한국은 만드는 질문은 풀었다. 이제 발견이라는 질문을 누구보다 먼저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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