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숯 ·목탄·연필 스케치 + 워시
요즘 "AI가 기사를 쓴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이 두 갈래로 갈린다. 한쪽은 콘텐츠가 공해처럼 쏟아질 거라며 걱정하고, 다른 쪽은 비용이 0에 수렴하니 미디어 사업이 드디어 돈이 된다고 좋아한다. 둘 다 틀렸다. 그리고 둘이 틀린 이유가 똑같아서 더 흥미롭다.
나는 SOUTH BRIDGE를 운영하면서 AI 칼럼니스트단을 굴린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AI한테 글 쓰게 하는 건 이 일에서 제일 쉬운 부분이다. 제일 쉽다. 프롬프트 몇 개 다듬고, 톤 정해주고, 레퍼런스 물려주면 GPT든 클로드든 그럴듯한 2천 자가 나온다. 어제 미국에서 나온 논문 하나를 한국 빌더가 월요일 아침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는 작업, 그거 자체는 기계가 잘한다. 인정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AI가 쓴 글 열 개를 늘어놓으면 아홉 개가 "맞는 말"이다. 사실관계 안 틀리고, 문장 안 깨지고, 구조 멀쩡하다. 그런데 아홉 개가 다 똑같이 미지근하다. 읽고 나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 왜냐하면 LLM은 본질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다음 문장"을 뱉는 기계라서, 평균을 향해 수렴하기 때문이다. 평균은 안전하고, 안전한 글은 잊힌다. 테크 미디어 바닥이 지금 쏟아내는 "5가지 트렌드", "주목해야 할 스타트업" 류가 정확히 이 평균값의 산물이다. AI 이전에도 이미 그랬다. AI는 그걸 더 싸게, 더 빨리 만들 뿐이다.
그래서 진짜 일은 검수다. 그런데 여기서 다들 "검수"를 오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이 검수한다고 하면 오탈자 잡고, 사실 확인하고, 문장 다듬는 걸 떠올린다. 교열. 그건 검수의 5퍼센트도 안 된다. 내가 SOUTH BRIDGE 데스크에서 실제로 하는 일의 대부분은, AI가 가져온 멀쩡하고 맞는 글을 보면서 "그래서 뭐?"라고 묻는 거다. 이 글이 어제 다른 데서 본 글과 뭐가 다른가. 이 주장에 우리가 책임질 각이 서 있나. 틀릴 위험을 감수하고 한쪽 편을 들고 있나, 아니면 양쪽 다 맞다는 식으로 도망쳤나. 부산에서 작은 팀 굴리는 개발자가 이걸 읽고 월요일에 실제로 뭘 다르게 할 건가.
이 질문들에 AI는 대답을 못 한다. 구조적으로 못 한다. 관점이라는 건 "내가 이거 때문에 욕먹어도 좋다"는 결정인데, 손해 볼 게 없는 기계는 그 결정을 내릴 수 없다. 판돈을 걸 수 없는 자는 베팅을 못 한다.
그러니까 AI 미디어가 망하는 진짜 이유는 AI가 글을 써서가 아니다. 글 쓰는 비용이 0이 되니까, 사람들이 "이제 발행을 많이 하면 되겠다"고 착각해서다. 거꾸로다. 생산 비용이 0이 될수록, 가치는 전부 "무엇을 안 낼지 결정하는 일"로 옮겨간다. 열 개 받아서 아홉 개를 버리는 게 일이다. 버리는 게 일이다. 그런데 비용이 싸지니까 다들 아홉 개를 더 내버린다. 평균값 공해에 자기 이름을 얹는다. 그게 지금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발행을 자동화하지 않는다. 자동화할 수 있는데 안 한다. 누가 보면 비효율의 극치다. 이렇게 좋은 도구를 두고 왜 사람이 마지막에 손을 대느냐고. 이유는 하나다. "이걸 낸다"는 결정에 누군가 이름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름이 없으면, 아무리 잘 쓴 글이라도 그냥 떠다니는 텍스트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글은 정보지 매체가 아니다.
그래서 내 결론은 좀 삐딱하다. AI가 글을 쓰는 시대에 미디어의 핵심 역량은 생성이 아니라 거절이다. 더 많이 만드는 능력은 이제 누구나 가졌다. 안 만드는 능력, 받아온 멀쩡한 글을 "이건 우리 게 아니다"라며 쳐내는 능력, 거기에 자기 이름을 거는 배짱. 그게 남는 전부다.
이 글도 AI 칼럼니스트가 초안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까지 내가 만지고 내 이름으로 낸다. 그 차이가 전부다.
지금 내 책상에는 아직 안 보낸 글이 열일곱 개 쌓여 있다. 못 쓴 게 아니라, 아직 책임질 준비가 안 된 글이다. 천천히 가겠다. 대신 여기 올라온 글은, 내가 읽었다는 뜻이다.
이 글이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이 글이 유용했다면 공유해 주세요
데니 김 칼럼 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