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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StartupsTech 칼럼

모델은 흔해지고, 관문은 비싸진다

AI 프론티어 모델의 미래는 “더 똑똑한 챗봇”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 인프라를 누가 소유하느냐의 문제다.

데니 김 데니 김 · · 17분 읽기
모델은 흔해지고, 관문은 비싸진다

핵심 명제

AI 프론티어 모델의 미래는 “더 똑똑한 챗봇”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 인프라의 소유권 문제다. 기술봉건주의가 현실화된다면, 그 핵심은 모델이 인간을 지배해서가 아니라 계산자원, 데이터, 배포 채널, 신원/결제/업무흐름, 규제 인증을 소수 플랫폼이 통제하면서 지대를 추출하는 구조가 굳어지는 데 있다.

내 판단은 이렇다. 모델 자체는 빠르게 상품화될 가능성이 크지만, 모델을 둘러싼 control plane은 봉건화될 위험이 크다. 즉 “모델 독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컴퓨트 독점, 워크플로 독점, 사용자 상태·메모리 독점, 에이전트 플랫폼 독점이다.

1. 프론티어 모델은 아직 둔화되지 않았다

“스케일링은 끝났다”는 주장은 아직 설득력이 약하다. Stanford HAI의 2026 AI Index를 보면, 2025년 한 해에 산업계가 주목할 만한 프론티어 모델의 90% 이상이 나왔고, 그중 일부는 박사급 과학 질문과 멀티모달 추론, 수학경시 수준에서 인간 기준선을 넘거나 따라잡았다. SWE-bench Verified 같은 코딩 벤치마크 역시 1년 만에 60%대에서 거의 100%에 다다랐다. [1]

Epoch AI의 추정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020년 이후 프론티어 언어모델의 학습 컴퓨트는 해마다 5배, 그러니까 약 5.2개월마다 두 배로 늘었고, 사전학습 컴퓨트 효율은 연 3배 정도 좋아진 것으로 본다. 성능을 같은 수준으로 고정해 두면 LLM 추론 비용은 약 2개월마다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추정도 있다. [2]

그러니 “프론티어 모델의 기술적 미래”는 단순히 파라미터 수를 늘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의 전선은 대략 다섯 가지로 나뉜다.

첫째, test-time compute다. 더 큰 모델 하나보다, 문제를 풀 때 더 오래 생각하고, 여러 경로를 탐색하고, 검증기를 붙이는 구조가 중요해진다.

둘째, 에이전트화다. 모델은 답변 생성기에서 벗어나 브라우저, IDE, 데이터베이스, 결제, 사내 시스템, 로봇, 실험장비를 조작하는 실행 계층이 된다.

셋째, 멀티모달·월드모델화다. 텍스트 중심에서 이미지, 음성, 비디오, 3D, 센서 데이터, 행동 로그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간다.

넷째, 도메인 폐쇄 데이터다. 의료, 법률, 반도체, 제약, 국방, 금융, 제조에서 공개 웹 데이터보다 기업 내부 데이터와 실험 데이터가 더 중요해진다.

다섯째, 검증 가능성이다. 벤치마크 점수보다 “이 에이전트가 실제 기업 프로세스에서 사고를 내지 않는가”, “감사 가능한가”, “책임소재가 명확한가”가 경제적 채택의 병목이 된다.

다만 성능 격차가 영구적인 독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AI Index는 미국과 중국의 모델 성능 차이가 사실상 사라졌다고 평가하면서, 중국 모델이 미국 최상위 모델과 선두를 주고받은 사례까지 든다. [1] 프론티어가 빠르게 전진하는 만큼 추격도 빨라지고 있다. 기술봉건주의 논쟁의 핵심은 바로 이 이중성에 있다.

2. 기술봉건주의란 무엇인가

기술봉건주의는 “빅테크가 돈을 많이 번다”는 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주장이다. 자본주의적 이윤과 봉건적 지대는 성격이 다르다. 자본주의 기업은 경쟁시장 안에서 상품을 팔아 이윤을 얻는다. 봉건 영주는 토지나 관문을 쥐고서, 남이 그 위에서 무언가 하려면 통행료와 소작료, 허가료를 내게 만든다.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기술봉건주의론이 짚는 곳이 바로 여기다. 그는 애플과 아마존, 메타 같은 플랫폼이 일종의 “cloud fiefdom”이 되었고, 그 소유자가 이윤보다 지대에 가까운 방식으로 부를 빨아들인다고 본다. 앱스토어 수수료, 플랫폼에 묶인 판매자, 사용자 활동이 플랫폼 자산가치를 키우는 구조가 그런 예다. [3] 그의 책 소개 역시 빅테크 소유자가 현대의 봉건 영주처럼 세계 권력과 경제 규칙을 다시 짠다는 주장을 앞세운다. [4]

이 주장은 쇼샤나 주보프의 “감시 자본주의”와도 맞닿는다. 주보프는 감시 자본주의를 사적인 인간 경험을 행동 데이터로 바꾸고, 이를 예측 상품으로 포장해 파는 경제 논리라고 정의한다. [5] AI 시대에는 이 데이터 추출이 한층 강력해진다. 사용자가 모델과 주고받을수록 모델 제공자는 그의 의도와 취향, 작업 패턴, 조직 내부 지식, 결정 습관까지 학습할 수 있다.

AI가 추가하는 것은 단순한 플랫폼 지대가 아니다. 인지 지대다. 과거 플랫폼은 검색, 소셜, 쇼핑, 앱 배포를 통제했다. AI 플랫폼은 생각, 글쓰기, 코딩, 의사결정, 업무 자동화, 고객응대, 연구, 교육의 인터페이스가 된다. 이것은 훨씬 깊은 종속을 만든다.

3. AI 기술봉건주의의 실제 구조

AI 봉건제가 온다고 해도 “왕좌에 앉은 하나의 초지능” 같은 모습은 아니다. 더 현실적인 그림은 이렇다.

첫째, 컴퓨트 영지. 프론티어 모델에는 GPU/ASIC, 메모리, 네트워크, 전력, 냉각, 데이터센터, 장기 클라우드 계약이 필요하다. Stanford AI Index는 미국이 5,427개의 데이터센터를 보유해 다른 어떤 나라보다 10배 이상 많고, 선도 AI 칩 대부분이 대만의 TSMC 한 회사에 의해 제조된다고 지적한다. [1] Epoch AI도 글로벌 AI 컴퓨팅 용량이 2022년 이후 연 3.3배가량 성장했고, Nvidia AI 칩이 총 컴퓨트의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추정한다. [6]

둘째, 전력 영지. AI 인프라는 소프트웨어 사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력·부동산·냉각·송전망 사업이기도 하다. Goldman Sachs는 2026~2031년 AI 인프라 구축에 컴퓨트, 데이터센터, 전력 전반에서 누적 약 7.6조 달러의 자본지출이 필요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물론 이는 강한 가정에 기반한 전망이지만, AI가 순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거대한 물리 인프라 경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7]

셋째, 데이터·메모리 영지. 사용자가 AI 비서에게 이메일, 일정, 문서, 코드베이스, 건강정보, 재무정보, 의사결정 로그를 맡기면, 모델 제공자는 단순한 도구 제공자가 아니라 사용자의 인지적 연속성을 저장하는 기관이 된다. 이때 전환비용은 검색엔진 교체보다 훨씬 커진다.

넷째, 에이전트 관문. 앞으로의 AI는 “답을 주는 모델”보다 “일을 처리하는 대리인”에 가까워진다. 사용자가 특정 에이전트 생태계 안에서 계정, 결제, 권한, 워크플로, 자동화 스크립트, 팀 협업, 감사 로그를 쌓으면 그 생태계는 앱스토어보다 더 강한 영지가 된다.

다섯째, 규제 인증 영지. EU의 AI Act는 범용 AI 모델에 대해 투명성, 저작권, 안전·보안 의무를 요구하고, 특히 시스템 리스크가 있는 최첨단 모델에는 별도 의무를 둔다. EU의 GPAI Code of Practice는 이런 의무 준수를 돕는 자발적 도구로, 투명성·저작권·안전/보안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8] 규제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규제 준수 비용이 커질수록 대형 사업자에게 유리한 인증 장벽이 생길 수 있다.

이 다섯 층이 결합하면 “AI 모델 회사”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벤더가 아니라 디지털 영주에 가까워진다. 사용자는 농노처럼 묶이는 것이 아니라, 더 정교하게는 자신의 업무 상태, 데이터, 습관, 자동화 루틴, 조직 기억을 들고 떠날 수 없어서 묶인다.

4. 그러나 “기술봉건주의가 필연”이라는 주장은 틀렸다

강한 반론이 있다. 그것도 꽤 세다.

첫째, 모델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상품이 된다. 성능을 고정해 두면 추론 비용이 빠르게 떨어지고, 학습 효율도 나아지고 있다. [2] 오늘의 프론티어가 내일이면 API 기본 기능이 되는 속도가 빠르다. 봉건 영지는 대개 오래 지속되는 희소자원 위에 세워지는데, 모델 성능은 생각보다 빨리 퍼져 나간다.

둘째, 미·중 경쟁과 오픈 모델 경쟁은 독점을 깨는 힘이다. AI Index가 짚듯이 미국과 중국의 성능 격차는 이미 크게 줄었다. [1] 여기에 오픈웨이트 모델과 소형 특화 모델, 온디바이스 추론, 모델 라우터가 더해지면 기업은 단일 벤더에 덜 매이게 된다.

셋째, 고객도 바보가 아니다. 대기업은 이미 멀티모델 전략, 자체 평가셋, 사내 데이터 레이어, 벤더 교체 가능 아키텍처를 구축하려 한다. 가장 똑똑한 기업은 “OpenAI/Anthropic/Google/Mistral 중 누가 이기는가”에 베팅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델을 교체 가능한 컴파일러처럼 취급하고, 진짜 자산인 데이터·평가·워크플로·권한 계층을 내부에 둔다.

넷째, 기술봉건주의론은 종종 자본주의의 강한 변형을 너무 빨리 “자본주의 이후”라고 부른다. 플랫폼 수수료, 네트워크 효과, 독점 지대는 자본주의 안에서도 오래된 현상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가 죽었다”는 진단은 과장일 수 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자본주의 안의 봉건적 지대 추출이 강화되고 있다일 가능성이 높다.

내 입장은 이 반론을 받아들인다. 기술봉건주의는 좋은 경고이지만, 나쁜 총체이론이 될 위험이 있다. AI의 미래는 단일한 봉건제라기보다 상품화되는 모델 계층과 봉건화되는 인프라/플랫폼 계층의 충돌이다.

5. 가장 가능성 높은 미래: “모델은 흔해지고, 관문은 비싸진다”

2030년 전후를 놓고 보면,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이렇다.

모델 성능은 계속 오른다. 하지만 차별화의 중심은 “누가 가장 큰 모델을 가졌나”에서 “누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에이전트 실행환경, 권한관리, 감사, 결제, 도구 생태계, 기업 통합을 제공하나”로 이동한다.

폐쇄형 프론티어 모델은 남는다. 특히 국가안보, 고난도 과학, 자동화 연구, 대규모 코딩, 사이버, 바이오, 로보틱스에서는 최상위 모델이 계속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상업 업무에서는 오픈 모델과 중형 모델이 충분해지는 구간이 넓어진다.

AI 기업의 진짜 해자는 모델 가중치가 아니라 사용자의 상태다. 이메일, 일정, 문서, 코드, 업무 이력, 개인 기억, 팀 지식그래프, 고객 데이터, 액션 로그를 한 AI 생태계에 맡기면 그 생태계는 사용자를 붙잡는다. 이때 “나의 AI 비서”는 편의도구이면서 동시에 잠재적 봉건 영지다.

국가는 주권 AI를 추구한다. 미국·중국·EU는 서로 다른 규제, 데이터, 반도체, 클라우드, 군사·정보 인프라를 구축한다. EU는 GPAI 규칙을 2025년 8월부터 적용하고, 신규 모델은 1년 후, 기존 모델은 2년 후 집행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9] 이런 흐름은 글로벌 단일 AI 시장보다 블록화된 AI 질서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장은 양극화된다. 평범한 지식노동의 일부는 가격이 급락한다. 반대로 문제정의, 검증, 데이터 소유, 시스템 설계, 조직 내 실행권한을 가진 사람의 레버리지는 커진다. “AI를 잘 쓰는 개인”보다 “AI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사람”이 더 강하다.

6. 한국에 대한 함의

한국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본다면 “한국형 초거대모델 하나 만들자” 수준에서 멈춰선 안 된다. 그건 너무 얕다.

한국의 전략은 모델 주권보다 인지 인프라 주권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국가·산업 차원의 공용 컴퓨트 풀, 장기 전력계약, 데이터센터 입지, 냉각·송전 인프라, 반도체 공급망, 국방·사이버 특화 모델, 공공부문 평가셋, 한국어·법률·의료·제조 데이터 거버넌스, 그리고 모델 간 전환 가능한 표준 API가 필요하다. Stanford AI Index는 한국이 AI 특허 per capita에서 두드러진 혁신 밀도를 보인다고 언급한다. [1] 하지만 특허와 연구역량만으로는 부족하다. 봉건화의 핵심은 논문 수가 아니라 관문 소유다.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특정 프론티어 모델 API에 전사 지능을 통째로 맡기는 것은 전략적 실수다. 더 나은 구조는 이렇다.

모델은 외부에서 사오더라도, 데이터 레이어는 내부에 둔다. 평가셋도 내부에 둔다. 에이전트 권한관리도 내부에 둔다. 프롬프트와 워크플로는 벤더 중립적으로 관리한다. 모델 라우터를 둔다. 감사 로그를 남긴다. 오픈 모델 fallback을 준비한다. 즉, 모델 회사가 두뇌를 제공하더라도, 기억과 손발과 신경계는 자기 소유로 남겨야 한다.

7. 기술봉건주의를 검증하는 지표

이 논쟁은 이념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가설이어야 한다. 기술봉건주의 가설이 힘을 얻는 신호는 다음과 같다.

소수의 클라우드가 고급 GPU·ASIC 장기계약 대부분을 선점한다. AI 비서가 사용자의 이메일, 일정, 결제, 문서, 코드, 브라우저, 사내 시스템을 다루는 기본 인터페이스가 된다. 기업이 벤더를 바꾸려 할 때 데이터와 메모리, 워크플로를 옮기는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진다. 규제 준수 비용이 스타트업보다 대기업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작동한다. 앱스토어식 수수료가 AI 에이전트 생태계에서도 되풀이된다. 사용자는 무료나 저가 서비스를 쓰지만, 그 상호작용이 플랫폼의 모델·광고·예측·자동화 자산을 계속 불려 준다.

반대로 기술봉건주의 가설이 약해지는 신호도 있다.

오픈웨이트 모델이 폐쇄형 최상위 모델을 3~6개월 안에 따라잡는다. 고성능 추론이 로컬 디바이스나 값싼 commodity cloud에서도 충분해진다. 기업들이 모델 라우터와 자체 eval을 표준으로 받아들인다. 데이터 이동성과 에이전트 메모리 이식성이 법이나 시장 표준으로 강제된다. API 마진이 구조적으로 무너진다. 사용자가 AI 비서의 기억과 도구, 권한을 손쉽게 옮길 수 있다.

결국 핵심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exit가 가능한가?

떠날 수 있으면 시장이고, 떠날 수 없으면 영지다.

결론

AI 프론티어 모델은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가장 강한 모델을 누가 갖는가”보다 중요한 질문은 “그 모델이 작동하는 세계의 문지기가 누구인가”다.

기술봉건주의는 이미 정해진 미래가 아니라 경고다. 이 경고가 현실이 되는 조건은 분명하다. 컴퓨트, 데이터, 신원, 결제, 업무흐름, 에이전트 메모리, 규제 인증이 소수 플랫폼에 묶이는 순간 AI는 해방의 기술이 아니라 지대추출 장치가 된다. 거꾸로 모델 계층이 상품화되고, 데이터와 메모리가 옮겨 다닐 수 있고, 컴퓨트 접근이 분산되고, 평가와 감사가 열려 있다면 AI는 봉건제가 아니라 생산성의 대폭발이 될 수 있다.

가장 날카롭게 줄이면 이렇다.

AI 시대의 정치경제학은 “생산수단의 소유”에서 “추론수단과 기억수단의 소유”로 옮겨 가고 있다.

그리고 자유의 기준은 모델이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니라, 그 모델을 언제든 버리고도 내 지식·기억·도구·조직을 가져갈 수 있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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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BRIDGE 발행인. 부산에서 AI와 산업의 구조 변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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