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5일 오후 4시, 강남대로 한복판 해시드 신사옥 20층에 불이 들어왔다. 통유리 너머로 강남 스카이라인이 펼쳐지고, 천장에는 격자로 짠 조명 띠가 흘렀다. 입구를 밝힌 #HASHED 사인 아래로 사람들이 음료를 든 채 하나둘 모여들었다. 세계 머신러닝 연구자들이 몰리는 ICML 2026이 서울에서 열리는 그 주, 해시드가 학회 참가자들을 위해 연 개막 리셉션이었다. 초대 인원은 100명 남짓. 삼성역 코엑스 본행사장에서 지하철로 세 정거장, 강남역에서 걸어서 1분 거리다.

ICML이 창설 43년 만에 처음 아시아로
이 리셉션의 배경을 알려면 한 정거장 떨어진 코엑스부터 봐야 한다. 올해 ICML은 43번째 학회이자, 창설 이래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열리는 회차다. 7월 6일부터 11일까지 코엑스에서 튜토리얼로 문을 열어 본회의와 워크숍으로 이어진다.
규모부터 역대급이다. 올해 투고 논문은 23,918편으로 지난해의 두 배를 넘겼고, 그중 6,352편이 채택됐다. 채택률은 26.6퍼센트. 코엑스에는 학계와 산업을 통틀어 1만 명이 넘는 연구자가 몰릴 것으로 추산되고, 현장 등록은 이미 매진됐다. 올해 학회를 관통하는 최대 화두는 스스로 판단하고 일하는 AI, 곧 에이전트다.
CITEICML 2026 Opens in Seoul: Agentic AI Tops Record Year (TechTimes)
23,918편 투고로 전년의 두 배, 채택률 26.6%. 창설 이래 첫 아시아 개최, 에이전트 AI가 최대 화두.
왜 해시드가 AI 학회를 맞이했나
행사를 주최한 곳은 해시드다. 블록체인 투자로 이름을 알렸지만, 최근 몇 년 사이 AI와 딥테크로 투자 영역을 빠르게 넓혀 온 회사다. 후원에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굿워터 캐피탈이 이름을 올렸다. 크립토에서 출발한 투자사가 AI 학회의 개막 자리를 차린 장면은, 지금 서울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압축해 보여준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ICML 서울 위크와 한국 AI 생태계를 짧게 안내하는 세션이 잡혔다. 학회를 처음 찾은 해외 연구자에게 서울이라는 무대를 소개하는 자리이자, 국내 투자사가 그들에게 눈도장을 찍는 자리이기도 했다.
앤트로픽부터 딥마인드까지, 한 층에
라운지를 채운 이들의 소속은 50곳이 넘는다. 앤트로픽, 딥마인드, 오픈AI,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AWS 같은 기업 연구소부터 MIT, 스탠퍼드, 카네기멜런, 하버드, UC 버클리 같은 대학 연구실까지. 최전선 논문을 쓰는 사람들과 그 연구를 제품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같은 층에 섞였다. 무대 옆에는 국내 AI 스타트업 팩토마인드의 부스가 자리를 잡았고, 가죽 소파와 스탠딩 테이블 사이는 이내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해시드가 그리는 그림: AI 에이전트와 온체인
해시드가 AI 연구자들을 부른 건 즉흥적인 손짓이 아니다. 불과 2주 전, 같은 해시드 라운지에서 리서치 조직 해시드 오픈리서치는 AI 에이전트 시대에 한국이 디지털 자산 허브가 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온체인 자산이 AI와 콘텐츠, 소비 시장에서 만들어진 가치를 국경 너머로 24시간 옮긴다는 것이 요지였다. AI 에이전트가 사람을 대신해 값을 주고받는 경제에서, 블록체인이 그 정산 레일이 된다는 그림이다.
보고서는 한국의 강점으로 높은 디지털 친화도와 제조 경쟁력, 그리고 캐릭터 기반 경제에 익숙한 게임 산업의 경험을 꼽았다. AI 에이전트가 돌아가는 경제와 게임 속 경제가 닮았다는 것이다. 크립토에서 출발한 해시드가 최전선 AI 연구자들을 자기 라운지로 부른 이유가 여기에 겹친다.
CITE해시드 오픈리서치: AI 에이전트 시대의 디지털 자산 허브 코리아
온체인 자산이 AI·콘텐츠·소비 시장의 가치를 국경 넘어 24시간 옮긴다. 에스더 김, 해시드 라운지, 2026.06.23.
글로벌 AI 인재가 한 주 동안 서울에 머문다. 그 시간을 누가 차지하느냐의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
아시아가 지도의 한 점이 되는 순간
AI 인재와 자본의 지도는 오래도록 샌프란시스코와 런던을 축으로 그려졌다. 그 지도가 흔들리고 있다. ICML은 내년 남미, 내후년 미국 동부로 무대를 옮긴다. 올해 서울은 그 순환의 한 정거장이지만, 아시아가 처음으로 이 학회의 중심에 선 해로 기록된다.
배경에는 국가 차원의 베팅도 깔려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반도체와 AI 인프라에 10년간 1조 달러가 넘는 민관 투자 계획을 내놨다. 세계 연구 인력이 한 주 동안 서울에 머무는 이 시간을, 투자사도 정부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 한다. 부산에서 아시아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강남 20층의 하룻저녁은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다. 지도에 새 좌표가 찍히는 소리였다.
CITESouth Korea announces more than $1 trillion AI, chip investment drive (Al Jazeera)
반도체와 AI 인프라에 10년간 1조 달러 이상 규모의 민관 투자 계획. 2026.06.29.


ICML 2026 Seoul: Opening Reception (Luma)
Hashed 주최, Goodwater Capital 후원. 강남 해시드 신사옥 20층, 2026년 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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