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내년쯤 AGI가 올 수 있다”는 말을 예언처럼 소비한다.
온다, 안 온다. 2027년이다, 아니다. 어느 회사가 먼저 만든다,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AGI의 본질을 너무 작게 본다.
내년쯤의 AGI는 그저 더 똑똑한 챗봇이 아니다. 인간이 맡아온 판단, 실행, 조정, 연구, 설계의 일부가 기계 인프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러니 AGI를 둘러싼 상상력은 “언제 도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도착한다고 가정했을 때 사회와 조직은 무엇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AGI 논의가 어려운 까닭은 AGI가 스위치처럼 한 번에 켜지는 기술이 아니라는 데 있다. Google DeepMind가 내놓은 AGI 수준화 프레임워크도 AGI를 단일 사건이 아니라 성능, 범용성, 자율성의 조합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AGI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괴물이 아니라, 더 넓은 업무를 더 오래, 더 자율적으로 해내는 시스템의 연속선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내년 AGI”라는 말은 예측이 아니라 압박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 묻는다.
2027년에 한 사람이 하던 분석, 코딩, 리서치, 기획, 고객 응대, 실험 설계의 상당 부분을 AI 시스템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다면, 지금의 회사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굴러가도 되는가?
역사를 보면 거대한 기술 전환은 처음엔 늘 기능처럼 보였다. 전기도 처음에는 더 밝은 조명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전기의 진짜 의미는 공장의 구조를 바꾼 데 있었다. 증기기관 시대의 공장은 중앙 동력축을 기준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전기가 들어오자 기계를 다른 방식으로 놓을 수 있게 됐고, 생산 라인은 새로 설계됐다.
철도도 다르지 않다. 철도는 더 빠른 마차가 아니었다. 도시와 물류, 시간표, 금융, 군사 전략을 하나의 전국 시장으로 묶는 인프라였다. 인터넷도 처음에는 홈페이지와 이메일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유통과 광고, 미디어, 커뮤니티, 결제, 정체성의 구조를 통째로 바꿨다.
AGI도 그렇게 봐야 한다.
AGI는 더 똑똑한 검색창이 아니다.
AGI는 판단의 운영체제가 될 가능성이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상상력 격차”다.
기술 격차보다 상상력 격차가 먼저 온다. 어떤 조직은 AGI를 직원이 쓰는 생산성 도구 정도로 상상한다. 어떤 조직은 AGI를 조직의 설계 원리 자체를 바꾸는 운영 인프라로 상상한다. 앞쪽은 기존 프로세스 위에 AI를 덧붙인다. 뒤쪽은 AI가 있다는 전제 아래 프로세스를 다시 짠다.
이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AGI에 가까운 시스템이 등장하면, 조직의 핵심 병목은 더 이상 “사람이 부족하다”가 아니다. 병목은 목표 설정, 권한 부여, 검증, 책임, 신뢰로 옮겨간다. AI가 리서치를 하고, 코드를 쓰고, 실험을 설계하고, 계약 초안을 만들고, 고객 세그먼트를 분석할 수 있다면 인간의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옮겨갈 뿐이다. 인간은 모든 일을 직접 하는 존재에서, 무엇을 시킬지 정하고 어디까지 허용할지 결정하며 어떤 결과를 믿을지 판단하는 존재로 바뀐다.
이 변화의 핵심은 자동화가 아니다.
핵심은 판단 비용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많은 조직에서 판단은 비쌌다. 좋은 판단을 하려면 자료를 모으고, 회의를 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부서 간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조직은 판단을 아꼈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위로 올라갔고, 작은 실험은 늦어졌고, 실패의 대가는 커졌다.
그런데 AGI적 시스템이 판단의 전 단계를 거의 공짜에 가깝게 만든다면 조직의 구조는 바뀐다. 보고서를 쓰려고 사람이 모이는 대신, 수십 개의 시나리오가 자동으로 만들어지고 인간은 그중 어떤 가설을 실제로 실행할지 고른다. 전략은 분기별 문서가 아니라 매일 갱신되는 살아 있는 시스템이 된다. 회사는 사람 수로만 커지는 조직이 아니라, 판단을 얼마나 자주, 얼마나 정확하게, 얼마나 안전하게 반복할 수 있는지로 경쟁하는 조직이 된다.
방향은 이미 보인다. METR은 AI 에이전트가 해낼 수 있는 작업의 길이를 기준으로 능력을 재는 “task-completion time horizon” 지표를 내놓았다. 2025년 연구에서는 2019년부터 2025년까지 프런티어 AI의 작업 시간 지평이 약 7개월마다 두 배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2026년 1월 공개된 Time Horizon 1.1은 데이터와 평가 인프라를 넓히면서, 2023년 이후 구간에서는 더 빠른 증가 추정치도 제시했다. 다만 METR 스스로 긴 작업의 기준 시간 추정과 작업 구성에 따라 결과가 민감하게 흔들린다는 한계를 분명히 한다.
이것은 “AGI가 이미 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AI의 발전은 정답률이 오르는 방식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긴 업무를 맡길 수 있는가”의 방향으로 측정되고 있다. AI가 답변 기계에서 작업 수행자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에이전트 인프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OpenAI의 Agents SDK 문서는 에이전트를,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호출하며 여러 전문 시스템과 협업하고 상태를 유지해 다단계 업무를 완수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설명한다. Google이 시작해 Linux Foundation으로 넘어간 A2A 프로토콜도 서로 다른 벤더와 프레임워크의 에이전트들이 안전하게 소통하고 협업하기 위한 공통 언어를 지향한다.
이 변화는 제품 경쟁이 아니다.
새로운 경제 주체를 위한 레일 경쟁이다.
AI가 그저 답을 생성하던 동안에는 모델 성능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AI가 업무를 수행하고, 다른 AI와 협상하고, API를 호출하고, 결제하고, 파일을 고치고, 고객을 응대하고, 연구를 진행하기 시작하면 질문이 달라진다. 누가 이 에이전트에게 신원을 부여할 것인가. 누가 권한을 관리할 것인가. 누가 행동 기록을 감사할 것인가. 누가 사고의 책임을 질 것인가. 누가 에이전트 간 거래의 표준을 만들 것인가.
AGI 시대의 핵심 인프라는 모델만이 아니다.
모델 위에는 신원, 권한, 결제, 보안, 감사, 책임, 데이터 접근권, 조직 운영체제가 올라가야 한다.
글로벌 경쟁도 이 층위에서 벌어진다. 미국은 모델, 클라우드, 반도체, 자본시장, 빅테크 배포망을 묶어 AGI 경제의 상층부를 장악하려 한다. Stanford HAI의 2026 AI Index는 2025년 미국의 민간 AI 투자가 2,859억 달러에 달했고 중국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고 집계했다. 같은 보고서는 생성형 AI가 3년 만에 전 세계 인구 채택률 53%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이 숫자가 말하는 것은 단순한 투자 열풍이 아니다. AI는 이미 실험실의 기술이 아니라, 대중의 사용 경험과 자본시장의 기대, 기업의 업무 구조를 한꺼번에 바꾸는 범용 인프라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질문은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이 AGI 모델 경쟁에서 미국 빅테크와 같은 방식으로 싸우기는 어렵다. 자본 규모,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배포망, 글로벌 개발자 생태계에서 차이가 크다. 그렇다고 한국의 전략이 “좋은 모델을 수입해 잘 쓰자”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그건 AGI 경제에서 가장 낮은 자리를 스스로 고르는 일이다.
한국이 잡아야 할 자리는 “사용국”이 아니라 “응용 인프라 설계국”이다.
한국에는 반도체, 제조, 금융 인프라, 통신망, 게임, 콘텐츠, 팬덤 경제, 공공 서비스, 빠른 소비자 채택 문화가 있다. 모두 AGI가 실제 산업 안에서 작동하는지 시험해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거대한 범용 모델 하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산업별 에이전트가 안전하게 권한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조 현장의 AGI는 매뉴얼이나 읽는 챗봇이 아니다. 공정 데이터를 이해하고, 설비 이상 징후를 잡아내고, 부품 수급 리스크를 계산하고, 현장 엔지니어에게 조치안을 제안하는 운영 시스템이다. 금융의 AGI는 상담 자동화가 아니다. 고객의 맥락과 규제, 리스크, 상품 구조, 사후 책임을 함께 다루는 신뢰 시스템이다. 콘텐츠의 AGI는 이미지와 영상을 빨리 만들어내는 도구가 아니다. IP 기획과 팬덤 반응, 글로벌 현지화, 유통 전략을 실시간으로 엮는 창작 인프라다.
이 모든 영역에서 핵심은 성능보다 신뢰다.
AGI가 똑똑해질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도록 허용할 것인가”다.
한국은 이미 국가 차원의 AI 전략 조정 기구를 두고 있다. 국가 AI 전략위원회는 AI 정책과 신뢰 기반 생태계 구축을 조정하는 역할을 내세운다. 그러나 AGI 시대의 전략은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과 정부가 함께 에이전트 신원, 데이터 접근권, 업무 감사 로그, 책임 소재, 산업별 샌드박스, 공공 조달 기준을 설계해야 한다.
한국이 이 흐름을 규제 대상으로만 본다면 위험은 분명하다. 한국의 기업과 개인은 해외 모델을 쓰고, 해외 클라우드에서 에이전트를 돌리고, 해외 프로토콜 위에서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사용은 국내에서 일어나지만, 표준과 데이터와 감사 가능성은 해외 인프라에 남는다. 그 순간 한국은 AI를 많이 쓰는 나라는 될 수 있어도, AGI 경제의 규칙을 만드는 나라는 되기 어렵다.
거꾸로 한국이 AGI를 “내년에 올지 모를 위협”이 아니라 “지금부터 설계해야 할 운영 인프라”로 본다면 기회가 있다. 한국은 특정 산업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AGI-native workflow를 실험할 수 있다. 병원, 제조 공장, 금융사, 게임 스튜디오, 엔터테인먼트 회사, 공공기관에서 인간과 에이전트가 함께 일하는 방식을 제도 안에서 시험해볼 수 있다.
이것이 진짜 AGI 상상력이다.
하늘에서 초지능이 뚝 떨어지는 장면을 상상하는 일이 아니다.
내 회사의 결재선이 어떻게 바뀔지, 내 산업의 비용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내 나라의 신뢰 인프라가 무엇을 지켜야 할지 상상하는 일이다.
내년쯤 AGI가 정말 올지는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단정하는 순간 사고는 빈약해진다. 중요한 것은 AGI가 2027년에 완성되느냐가 아니다. 2027년이라는 가까운 미래를 그릴 때, 우리가 여전히 AI를 “사람이 쓰는 도구”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사람과 함께 경제를 운영하는 새로운 행위자”로 볼 것인지다.
AGI를 기다리는 사회는 날짜를 맞히려 한다.
AGI를 설계하는 사회는 역할, 권한, 책임, 신뢰를 먼저 만든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AGI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AGI가 작동할 사회를 설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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