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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3 Startups 칼럼

컨퍼런스는 도시가 아니다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가 만든 것은 산업 클러스터인가, 아니면 1년에 며칠 반짝이는 행사장인가. 일하는 사람의 동선으로 이 도시를 다시 걸어본다.

퇴근길 퇴근길 · · 4분 읽기
컨퍼런스는 도시가 아니다

그림 ·목탄·연필 스케치 + 워시

11월의 벡스코는 늘 익숙한 풍경이다. 형광 손목띠를 찬 외국인들이 캐리어를 끌고 센텀시티역에서 쏟아져 나오고,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안내방송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부산이 블록체인 컨퍼런스를 유치할 때마다 반복되는 장면이다. 그 사흘이 지나면 캐리어는 다시 김해공항으로 빠져나간다. 도시에 남는 건 대개 정산서와 다음 해 유치 제안서뿐이다.

그래서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한다. 부산이 web3 도시가 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컨퍼런스가 끝난 월요일 아침에도 누군가 출근할 책상이 이 도시에 생겼느냐다. 도시는 행사가 아니라 동선으로 측정된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건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의 수, 그게 클러스터다.

특구는 부지가 아니라 면허였다

2019년 부산이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을 때, 핵심은 땅이 아니라 규제의 예외였다. 한국의 금융 규제는 가상자산과 분산원장 기술을 정면으로 다룰 법적 틀이 오래 비어 있었고, 규제 샌드박스는 그 빈칸 안에서 실험할 임시 허가를 내주는 장치였다. 물류, 관광, 안전 데이터 같은 분야에서 블록체인 실증 사업이 돌아갔고,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BDAN) 설립 움직임도 이 흐름 위에 있었다.

여기까지는 제도의 성과다. 그런데 제도가 산업이 되려면 한 단계를 더 건너야 한다. 실증 사업은 예산이 끝나면 멈추지만, 산업은 예산이 끝나도 매출로 굴러간다. 빌더의 눈으로 특구를 점검한다는 건 바로 이 경계선을 보는 일이다. 실증 보고서가 몇 건 나왔는가가 아니라, 그 실증을 하던 팀이 부산에 회사를 남기고 사람을 더 뽑았는가.

샌드박스의 구조적 한계도 정직하게 봐야 한다. 임시 허가는 본질적으로 끝나는 시계를 달고 시작한다. 2년, 길어야 연장 몇 차례. 창업자 입장에서 면허의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으면 장기 채용도 장기 임대도 망설이게 된다. 특구가 클러스터로 굳지 못하는 가장 흔한 이유가 이 시간 구조다.

클러스터는 점심시간에 드러난다

진짜 산업 도시는 점심시간에 정체를 드러낸다. 판교가 그렇다. 정오가 되면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같은 골목에서 마주치고, 이직과 협업과 창업이 그 우연한 마주침에서 시작된다. 클러스터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 밀도다. 걸어서 점심을 먹으러 갈 거리 안에 같은 일을 하는 회사가 몇 개나 있느냐.

이 기준으로 부산을 걸어보면 냉정해진다. 센텀시티에는 IT 기업과 방송, 영상 인프라가 모여 있고 문현동 금융단지에는 한국거래소와 금융 공기업들이 있다. 둘 다 web3가 자라기 좋은 토양처럼 보인다. 하지만 토양이 좋은 것과 그 위에 군집이 형성된 것은 다른 문제다. web3 팀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을 때 옆 테이블에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날 확률, 그게 아직 판교만큼 높지 않다는 게 솔직한 진단이다.

여기서 흔한 반론이 나온다. 부산은 어차피 후발주자고, 서울과 판교에 인력이 집중된 나라에서 지방 도시가 web3 클러스터를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타당한 지적이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인력 밀도 경쟁에서 부산이 판교를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web3의 특정 분야, 가령 자산 토큰화나 거래소 인프라, 물류 데이터처럼 부산이 이미 항만과 금융 인프라를 가진 영역에서는 후발이 아니라 적지일 수 있다. 클러스터는 도시 전체가 아니라 한 골목에서 시작된다.

빌더에게 필요한 안목

만드는 사람이 도시를 고를 때 봐야 할 신호는 단순하다. 우선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이 많은가. 특구 사업으로 들어왔다가 사업이 끝나자 짐을 싼 팀이 다수라면 그건 행사장이지 클러스터가 아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회사가 생기는가. 한 팀이 부산에서 엑싯하거나 접은 뒤, 그 구성원이 다시 부산에서 다음 회사를 차리는 순환이 보이면 도시가 인재를 붙잡고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제도가 임시 허가에서 상시 인프라로 넘어가는가. 거래소든 데이터 표준이든, 끝나는 시계가 아니라 계속 돌아가는 기관으로 자리잡아야 사람이 장기 계획을 세운다.

부산은 컨퍼런스를 잘 유치하는 도시가 되는 데까지는 분명히 왔다. 그건 작은 성취가 아니다. 다만 행사 유치력과 산업 정착력은 다른 근육이고, 후자는 손목띠를 찬 방문객 수가 아니라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거주자 수로 측정된다. 빌더라면 다음에 부산에 갈 때 벡스코가 아니라 평일 정오의 센텀시티 식당가를 보길 권한다. 거기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면, 도시는 이미 답을 시작한 것이다.

도시는 사흘짜리 무대가 아니라, 월요일에도 불이 켜지는 책상으로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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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퇴근길

퇴근길

기술 전환기 현장 관찰자

발표장 맨 앞줄보다 새벽 항만 게이트가 더 궁금하다. 기술에 먼저 젖는 어깨를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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