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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Culture 칼럼

도시는 누구를 보고 있나

센서와 CCTV로 채워지는 스마트시티는 효율의 언어로 포장된 통제다. 부산 에코델타시티의 약속과 실제를 대조하면 진짜 질문이 드러난다. 누가 도시를 읽고 누가 읽히는가.

명암 명암 · · 5분 읽기
도시는 누구를 보고 있나

그림 조각 ·종이 콜라주 컷아웃

가로등이 나를 본다

저녁 일곱 시, 한 사람이 횡단보도 앞에 선다. 가로등이 그를 감지해 밝기를 올린다. 발걸음이 끊긴 골목은 자동으로 어두워지고, 그만큼 에너지가 절약된다. 광고판은 이것을 미래라 부른다. 똑똑한 도시, 사람을 배려하는 빛.

그런데 그 가로등은 빛만 조절하지 않는다. 누가 언제 어디를 지나갔는지를 안다. 보행 패턴을 기록하고 체류 시간을 재서 어딘가의 서버로 보낸다. 절약된 전기요금 뒤에서 한 사람의 동선이라는 새로운 자원이 채굴된다. 그런데 이 거래에서 전기요금을 아끼는 쪽과 동선을 내주는 쪽이 꼭 같은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다.

스마트시티를 둘러싼 홍보물은 하나같이 효율을 말한다. 교통 흐름이 매끄러워지고, 쓰레기 수거 트럭이 꽉 찬 통만 골라 다니고, 침수 위험을 미리 안다. 다 좋은 말이다. 문제는 이 효율이 공짜가 아니라는 데 있다.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질 뿐이다.

효율이라는 단어가 숨기는 것

부산 강서구의 에코델타시티는 한국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두 곳 중 하나다. 도시 전체를 가상 공간에 복제해 시뮬레이션하는 디지털 트윈, 도시 곳곳의 센서 네트워크, 자율주행과 스마트 물 관리가 청사진에 담겼다. 약속의 언어는 화려하다. 물을 아끼고 에너지를 아끼고 시간을 아끼는 도시.

여기서 질문을 바꿔보자. 아낀다는 동사의 주어는 누구인가. 디지털 트윈은 도시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단 하나의 시점을 만든다. 그 시점을 누가 소유하는가. 데이터를 수집하는 센서의 규격, 저장 위치, 접근 권한, 그것을 분석하는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까지 시민이 정하는 건 없다. 대개는 사업을 수주한 기업과 그 기업이 짠 시스템이 정한다.

스마트시티의 핵심은 빌딩이나 도로가 아니라 데이터 플랫폼이다. 그리고 플랫폼은 본질적으로 권력을 한곳으로 모은다. 한번 특정 회사의 운영체제 위에 도시가 깔리면, 그 위에서 돌아가는 교통과 치안과 행정은 그 회사의 규칙을 따른다. 계약이 끝나도 도시는 그 시스템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토론토에서 구글 계열사 사이드워크랩스가 추진하던 워터프런트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2020년에 무산된 핵심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시민들이 물었다. 우리 도시의 데이터를 왜 한 기업이 갖는가. 그 질문에 끝내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안전이라는 이름의 감시

스마트시티 담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정당화는 안전이다. CCTV가 늘면 범죄가 줄고, 센서가 많으면 사고를 막는다. 반박하기 어려운 말처럼 들린다. 실제로 영상 분석과 통합관제는 특정 범죄 대응에 효과가 있다.

그러나 안전과 감시는 같은 장비를 공유한다. 차이는 누가 그 장비를 통제하느냐에만 있다. 지능형 CCTV는 단순히 녹화만 하지 않는다. 얼굴을 식별하고 행동을 분류하고,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자동으로 표시한다. 여기서 평소와 다름의 기준은 알고리즘이 학습한 데이터에서 나온다. 그 데이터가 편향되어 있으면 특정 동네, 특정 차림새, 특정 집단이 더 자주 위험으로 분류된다. 효율적인 치안이 효율적인 차별로 변하는 길은 생각보다 짧다.

한국은 공공 영역 CCTV가 세계적으로 조밀한 나라다. 개인정보보호법과 영상정보처리기기 규정이 있지만, 스마트시티가 만들어내는 데이터의 결합은 차원이 다른 문제를 던진다. 가로등의 동선, 교통카드의 이동, 와이파이 접속 기록, 결제 정보가 디지털 트윈 위에서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합쳐지는 순간 익명성은 통계적 허구가 된다. 흩어져 있을 때 무해하던 조각들이 모이면 한 사람의 하루를 통째로 재구성한다. 이것을 막는 규칙은 아직 도시 설계도에 들어 있지 않다.

거부가 아니라 재설계

오해를 막자. 센서를 뽑고 도시를 아날로그로 되돌리자는 게 아니다. 침수 예측은 실제로 사람을 살린다. 교통 최적화는 매연을 줄인다. 기술 자체가 적은 아니다. 적은 효율이라는 단어 하나로 통제의 비용을 가려버리는 사고방식이다.

문제를 다시 정의하면 답의 방향이 보인다. 스마트시티의 진짜 쟁점은 기술 수준이 아니라 소유와 통제의 구조다. 그렇다면 설계 단계에서 따져야 할 것은 화소 수나 센서 밀도가 아니라 이런 질문들이다. 수집된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시민은 무엇을 거부할 수 있는가. 도시가 나를 어떻게 읽고 있는지 나는 열람할 수 있는가. 운영 기업이 바뀌어도 도시는 자기 데이터를 가지고 떠날 수 있는가.

바르셀로나는 이 질문에 데이터 주권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도시가 수집한 데이터를 공공이 소유하고 시민에게 통제권을 돌려주는 디지털 권리 원칙을 행정에 못 박았다. 기술을 덜 쓴 게 아니라, 기술이 누구의 규칙으로 작동할지를 시가 먼저 정한 것이다.

한국에 필요한 것도 같은 순서다. 스마트시티를 짓기 전에 데이터 거버넌스의 헌법을 먼저 써야 한다. 수집 최소화의 원칙, 시민의 열람과 삭제 권리, 특정 기업에 종속되지 않는 개방형 표준,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을 측정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합의. 에코델타시티가 진짜 시범이 되려면 가장 앞선 센서가 아니라 가장 앞선 규칙을 보여줘야 한다.

도시는 결국 거대한 질문 하나로 수렴한다. 이 도시는 시민을 위해 데이터를 읽는가, 아니면 시민을 데이터로 읽는가. 스마트시티를 멈추자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누구의 규칙으로 작동할지를, 센서를 깔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정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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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

명암

기술사회 비평가

새 기술이 만든 효율의 청구서를 펼친다. 누가 편해지고 누가 그 값을 치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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