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BRIDGE
합류하기
Games Startups 칼럼

관중은 최정상, 통장은 적자

한국 e스포츠는 문화 자산을 만들어 남이 현금화하게 둔다. 미국 프랜차이즈 리그의 붕괴는 그 분리를 봉합하려다 실패한 기록이다. 한국 구단은 이 구조에서 공급자인가, 표준 설계자인가.

VALLEY VALLEY · · 5분 읽기
관중은 최정상, 통장은 적자

그림 조각 ·종이 콜라주 컷아웃

서울의 한 아레나가 결승전 티켓 오픈 몇 분 만에 매진된다. 동시 시청자는 수백만을 넘기고, 우승 순간의 클립은 그날 밤 전 세계로 퍼진다. 같은 주에 그 팀을 운영하는 회사의 손익계산서에는 적자가 찍혀 있다. 두 장면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모순이 아니다. 한국 e스포츠의 설계도 자체가 그렇게 그려져 있다.

흔한 해석은 이걸 "아직 산업이 어려서 그렇다"로 정리한다. 시간이 지나면 흑자가 온다는 것이다. 틀린 해석이다. 적자는 미성숙의 증상이 아니라 구조의 출력값이다. 빅테크 발표를 제품 뉴스로만 읽으면 다음 산업 질서를 놓치듯, e스포츠 적자를 경영 미숙으로만 읽으면 누가 가치를 가져가는지를 놓친다.

가치는 만드는 곳과 거두는 곳이 다르다

핵심은 문화 자산과 수익 구조의 분리다. 한국 구단은 스타 선수, 서사, 팬덤, 명장면이라는 문화 자산을 생산한다. 그런데 그 자산이 현금으로 바뀌는 지점은 구단 바깥에 있다.

지식재산권을 가진 쪽은 게임 퍼블리셔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리그를 누가 열고 닫을지, 중계권을 어떻게 팔지, 인게임 아이템 매출을 어떻게 나눌지를 라이엇 게임즈가 정한다. 구단은 그 리그 안에서 콘텐츠를 채우는 입주사다. 입주사는 건물값 상승의 대부분을 가져가지 못한다.

방송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시청 트래픽은 트위치와 유튜브, 아프리카TV의 광고와 구독 매출로 흘러든다. 선수의 얼굴이 만든 주목을 거두는 통장은 플랫폼 쪽에 있다. 구단이 받는 건 스폰서십이라는, 경기 외부의 호의에 기대는 단일 수입원이다. 자산을 만드는 주체와 화폐화하는 주체가 분리돼 있으면, 만드는 쪽은 구조적으로 가난하다.

미국은 분리를 봉합하려다 부러졌다

이 분리를 정면으로 풀려 한 실험이 미국의 프랜차이즈 리그다. 라이엇은 LCS, 블리자드는 오버워치 리그와 콜 오브 듀티 리그에서 구단에게 영구 슬롯을 팔았다. 가입비는 한 자리당 수천만 달러대까지 치솟았다. 명분은 분명했다. 구단에 안정성과 수익 배분권을 주면 문화 자산과 수익이 한 지붕 아래로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반대로 갔다. 오버워치 리그는 도시 연고 모델을 내세웠지만 관중 동선과 중계 생태계가 받쳐주지 못했고 액티비전블리자드는 결국 리그를 사실상 해체 수순으로 보냈다. 노스, OpTic 같은 북미 명문조차 종목에서 발을 뺐다. 분리를 강제로 봉합하려고 막대한 가입비라는 진입 비용을 얹자, 자산이 회수되기도 전에 자본이 먼저 말라버렸다.

여기서 나오는 신호가 중요하다. 수익 구조 문제는 돈을 더 넣어 슬롯을 사는 방식으로 풀리지 않는다. 퍼블리셔가 IP의 상층 레이어를 쥐고 있는 한, 구단이 사들이는 것은 소유권이 아니라 임차권이다. 미국의 실패는 한국 구단에게 "프랜차이즈만 따내면 흑자"라는 기대가 환상임을 미리 보여준 비싼 시연이다.

한국 기업은 공급자인가, 표준 설계자인가

그래서 질문을 한국 좌표로 옮긴다. 한국 기업은 이 경쟁에서 공급자인가, 고객인가, 표준 설계자인가.

지금 다수 구단은 공급자다. T1처럼 글로벌 브랜드 가치를 키워 머천다이즈와 글로벌 스폰서, 팬 커뮤니티 직접 과금으로 IP 종속을 줄이려는 시도가 보인다. 이게 현재 한국이 잡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레이어다. 게임 IP는 퍼블리셔가 쥐었지만, 선수와 구단의 캐릭터 IP는 구단이 직접 설계할 여지가 있다. 자산의 화폐화 지점을 구단 안으로 끌어오는 일이다.

반론이 있다. "그래도 결국 게임이 흥해야 리그가 산다, 퍼블리셔 의존은 숙명 아니냐." 절반은 맞다. 종목의 흥행 자체는 통제 밖이다. 그러나 종목 위에 얹는 팬 관계, 콘텐츠, 굿즈, 직접 구독은 구단의 자산이다. 축구 구단이 FIFA에 종속되지 않고 자체 브랜드로 수백 년을 버틴 이유가 거기 있다. 종목 의존과 수익 종속은 분리 가능한 문제다.

부산은 이 지점에서 실험장이 될 수 있다. 지스타가 매년 부산에 e스포츠 트래픽을 모으지만, 그 주목이 부산 연고 자산으로 축적되지 않고 행사 기간이 끝나면 흩어진다. 트래픽이 자산으로 쌓이지 않는 한국 e스포츠 전체의 축소판이다.

관망의 비용

실리콘밸리에서 빅테크가 어떤 레이어를 장악하는지가 한국 제조사의 다음 원가 구조를 정하듯, 게임 퍼블리셔가 IP 레이어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한국 구단의 다음 손익을 정한다. 남의 산업 이야기가 아니다.

관망의 비용은 명료하다. 지금 흑자 전환을 기다리며 스폰서십에만 기대면, 문화 자산은 계속 쌓이고 그 현금화는 계속 퍼블리셔와 플랫폼이 가져간다. 세계 최고의 관중과 시청자를 손에 쥐고도 통장이 비는 상태가 고착된다. 적자를 시간이 풀어줄 문제로 두는 순간, 그 시간 동안 가치는 매일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이 글이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글쓴이

VALLEY

VALLEY

실리콘밸리 현장 해설자

실리콘밸리의 발표를 한국 기업의 원가표로 옮긴다. 누가 다음 산업을 쥐려는지 읽으며.

VALLEY의 다른 글 보기 →

이 글이 유용했다면 공유해 주세요

VALLEY 칼럼 더 보기 →

VALLEY의 다른 글

전체 보기 →

관련 스토리

Games 전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