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번짐 ·수묵 담채 + 미니멀 선
던전이 끝나지 않는다는 문제
AI가 던전을 무한히 만들어준다는 신작을 한 시간 돌려봤다. 방을 나가면 새 방이 생기고, 적의 이름과 외형이 매번 달랐고, 보물 설명문은 한 번도 겹치지 않았다. 따져보면 이 게임은 어떤 수제 던전보다 콘텐츠가 많다. 그런데 마흔 번째 방쯤에서 손이 멈췄다. 다음 방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감각. 새 방이 보장돼 있다는 사실이 새 방을 시시하게 만들었다.
AI 게임 비평이 자꾸 비껴가는 지점이 여기다. 리뷰들은 생성 다양성을 칭찬하거나, 그래픽이 어색하다고 깎거나, 화제성을 점수로 환산한다. 셋 다 게임을 바깥에서 본다. 안에서 보면 질문은 하나다. 이 방을 여는 행위에 무게가 실리는가.
로그라이크 명작 던전들이 손맵이라서 좋은 게 아니다. 'Hades'의 방은 유한하고 패턴을 익힐 수 있다. 그래서 플레이어가 방 배치를 외우고, 어떤 무기 조합이 어느 구간에서 무너지는지 알아간다. 유한함이 학습을 만들고, 학습이 숙련을 만든다. 무한 생성은 이 사슬의 첫 고리를 끊는다. 외울 것이 없으면 숙련도 없고, 숙련이 없으면 다음 방은 그냥 다음 방일 뿐이다.
마찰이 사라진 자리
재미는 마찰에서 나온다. 정확히는 플레이어가 넘어야 할 저항이 또렷하게 설계돼 있을 때 나온다. AI 생성은 이 저항을 고르게 깎아 평탄하게 만든다.
직접 만져본 AI 내러티브 게임 'AI Dungeon'이 교과서적 사례다. 무엇이든 입력하면 이야기가 이어진다. 용을 죽이겠다고 쓰면 죽고, 신이 되겠다고 쓰면 된다. 모든 게 가능해지는 순간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거부당하지 않는 욕망은 욕망이 아니다. 게임이 'No'라고 말할 능력을 잃으면 플레이어의 'Yes'도 가치를 잃는다. 좋은 게임은 끊임없이 거절한다. 이 벽은 못 넘는다, 이 자원으로는 안 된다, 지금은 죽는다. 그 거절이 쌓여 돌파의 쾌감을 만든다.
밸브의 디자이너들이 한 말이 있다. 플레이어에게 무한한 선택지를 주면 플레이어는 선택을 멈춘다는 것이다. 제약은 창의성의 적이 아니라 연료다. 테트리스가 블록 7개만 쓰는 이유, 바둑이 19줄에 갇혀 수천 년을 버틴 이유가 여기 있다. 경우의 수를 늘리는 것과 의미 있는 결정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AI 게임 대부분은 전자를 후자로 착각한다.
여기서 강한 반론이 나온다. 무한 생성이 본디 지루한 게 아니라 아직 큐레이션이 약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AI가 생성한 방에 난이도 곡선과 보상 리듬을 입히면 수제만큼 좋아진다는 것이다. 절반은 맞다. 그런데 그 큐레이션이 강해질수록 '무한'은 줄어든다. 좋은 곡선은 유한한 선택과 의도된 반복을 요구하니까. 결국 작동하는 AI 게임은 AI를 앞세우길 포기한 게임이다. 생성은 보이지 않는 도구로 뒤로 빠지고, 사람이 깎은 마찰이 앞에 선다. 무한 생성을 전면에 내건 순간, 그 게임은 자기 재미의 엔진을 광고판으로 가려버린다.
의도된 거부라는 설계
가장 좋은 설계는 무언가를 못 하게 막는 설계다. 'Dark Souls'의 느린 회피, 'Inside'의 단 한 줄 조작, 'Outer Wilds'의 22분 시간 루프. 전부 플레이어를 가두는 제약이고, 그 제약이 곧 게임의 정체성이다. 거부는 결핍이 아니라 형식이다.
AI는 본성적으로 거부를 못 한다.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더 빠르게 내놓도록 학습된 기계다. 그래서 AI를 게임의 심장에 놓으면 그 게임은 거부할 줄 모르는 게임이 된다. 모든 길이 열려 있고 모든 요청이 받아들여지는 세계. 그건 게임이 아니라 분수대다. 물은 끝없이 나오지만 거기서 헤엄치며 자라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부산을 한 번 짚자. 인디 씬에서 종종 들리는 말이 있다. 자원이 없으니 AI로 콘텐츠를 무한히 찍어 분량을 채우자는 발상이다. 방향이 뒤집혔다. 적은 인력의 진짜 무기는 분량이 아니라 단 하나의 날카로운 제약이다. 'Vampire Survivors'는 한 명이 만들었고 조작이 사실상 이동 하나뿐이다. 그 극단적인 거부가 게임을 정의했다. 한국 인디가 베껴야 할 건 AI의 생성 능력이 아니라 그 결단의 잔인함이다.
그래서 누가 재미를 만드나
AI 게임의 재미는 AI가 만들지 않는다. AI가 쏟아낸 더미 위에서 무엇을 막고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는 사람이 만든다. 생성이 점토라면 재미는 조각이다. 점토가 무한히 솟는다고 조각이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점토가 많을수록 깎아내는 손의 결단이 더 중요해진다.
한국 인디와 캐주얼 씬에 던지고 싶은 말은 이거다. AI를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의 도구로 쓰면 무한 지루함에 도착한다. AI를 '무엇을 안 보여줄지' 고민할 시간을 벌어주는 도구로 쓰면 다르다. 생성은 뒤로 숨기고, 마찰을 앞에 세우고, 플레이어에게 단호하게 'No'를 말할 것. 다음 방이 보장되지 않을 때 비로소 방문을 여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재미는 거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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