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숯 ·목탄·연필 스케치 + 워시
2021년 어느 트위터 프로필에는 픽셀로 그린 원숭이가 박혀 있었다. 수억 원짜리였다. 지금 그 자리에는 원숭이 대신 작은 자물쇠 아이콘이 들어선다. 같은 기술에 이름만 달라졌다. 한때 "이건 내 디지털 자산이다"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이제는 "이건 입장권이다"라고 말한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방향만 튼 후퇴다. NFT는 죽지 않았다. 다만 소유의 증서이기를 그만두고 출입증이 됐다.
업계는 이 전환을 성숙이라고 부른다. 투기 거품이 빠지고 진짜 효용만 남았다는 이야기다. 일리는 있다. 콘서트 입장권, 멤버십 등급, 한정판 굿즈 우선구매권. 거래소 가격표보다야 이쪽이 분명히 덜 허망하다. 그런데 효율이니 실용이니 하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같은 질문을 꺼낸다. 이 편리함은 누구의 비용을 줄였고, 줄어든 그 비용은 어디로 옮겨갔는가.
'소유에서 권리로'라는 말의 진짜 무게
소유와 접근권은 법적으로 전혀 다른 물건이다. 소유한 것은 처분할 수 있다. 팔고, 빌려주고, 망가뜨리고, 물려줄 수 있다. 접근권은 발급자가 정한 조건 안에서만 작동한다. 게이트를 쥔 쪽이 규칙을 바꾸면 내 권리도 따라 바뀐다.
NFT 초기 담론의 급진성은 바로 이 처분권에 있었다. 중개자 없이 디지털 사물을 진짜로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허황됐지만 방향만큼은 도전적이었다. 멤버십 NFT로의 피벗은 이 도전을 조용히 접는다. 블록체인 위에 토큰은 그대로 있지만, 그것이 약속하는 내용물은 발급한 브랜드의 서버와 약관 안에 있다. 토큰은 탈중앙이고 효용은 중앙집권이다. 우리가 사는 건 분산원장에 적힌 일련번호일 뿐, 그 번호가 실제로 무엇을 열어주는지는 회사가 정한다. 회사가 사업을 접으면 열쇠는 아무 문도 열지 못하는 쇳조각이 된다.
사소한 의미 이동이 아니다. 디지털 소유권이라는 10년짜리 논쟁이 "그래서 소유는 어차피 무리였고, 잘 관리되는 접근권이면 충분하지 않나"라는 실용주의로 후퇴하는 장면이다. 후퇴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후퇴를 진보라고 부르면서 누가 규칙을 쥐는지는 묻지 않는 게 문제다.
게이트키퍼는 사라지지 않고 코드로 옮겨갔다
기존 멤버십에는 적어도 책임 주체가 명확했다. 항공사 마일리지가 일방적으로 깎이면 약관과 소비자 보호 제도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접근권을 NFT로 감싸는 순간, 권리는 '내가 자유시장에서 산 자산'의 외형을 입는다. 사용자는 소비자가 아니라 투자자처럼 느낀다. 책임은 흐려지고 위험은 개인에게 넘어간다.
문제가 터졌을 때를 떠올려보면 분명해진다. 발급사가 혜택을 줄이거나 커뮤니티가 와해됐을 때, 손에 남은 토큰을 들고 어디에 항의할 것인가. 2차 시장 가격은 발급사의 약속이 살아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유지된다. 그 약속을 깰 권한은 전적으로 발급사에 있다. 권리는 시장의 언어로 포장되지만, 실제 통제권은 코드를 배포한 쪽이 독점한다. 게이트키퍼가 없어진 게 아니라, 환불도 규제도 닿기 어려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여기에 데이터 문제가 겹친다. 지갑 주소는 익명처럼 보이지만, 한 사람의 보유 이력과 거래 패턴, 참여 동선을 하나로 꿰는 영구 식별자다. 멤버십 NFT를 발급한 브랜드는 고객의 온체인 행적을 통째로 들여다볼 수 있다. 탈중앙이라는 간판 아래, 기존 멤버십보다 훨씬 촘촘한 감시가 가능해진다. 끊을 수도 잊혀질 수도 없는 충성도 장부다. 편리함의 비용이 여기로 옮겨간다.
한국이 정해야 할 규칙
부산의 한 인디 게임 스튜디오가 후원자에게 멤버십 NFT를 주고, 그 토큰으로 베타 빌드와 비공개 디스코드에 접근하게 한다고 하자. 좋은 쓰임이다. 그런데 스튜디오가 문을 닫으면 후원자가 산 '평생 접근권'은 어떻게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약관이 없다면, 그건 권리가 아니라 분위기일 뿐이다.
반론도 가능하다. 어차피 모든 멤버십이 발급자에게 의존하니, NFT만 따로 규제하는 건 과잉이라는 것이다. 절반은 맞다. 그러나 NFT는 '자산'의 외형으로 2차 거래를 부추기고, 가격을 통해 가치가 영속할 것처럼 암시하며, 소비자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점에서 일반 포인트와 다르다. 자산처럼 거래된다면 자산처럼 보호받아야 한다.
그래서 한국이 정할 규칙은 토큰의 기술 사양이 아니라 발급자의 의무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접근권이 약속한 효용의 존속 기간과 종료 조건을 발급 시점에 명시할 것. 발급사 폐업이나 혜택 폐지 시의 처리 방식을 미리 알릴 것. 온체인 데이터를 마케팅에 결합할 때 동의 범위를 따로 분리할 것. 2차 거래를 유도하는 표현에는 소비자에게 적용되는 책임을 똑같이 물을 것.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제도가 이미 첫걸음을 뗀 만큼, 투자 상품이 아닌 접근권 NFT를 위한 별도의 소비자 트랙을 그릴 시점이다.
NFT를 멈추자는 얘기가 아니다. 출입증으로서의 NFT는 충분히 쓸모 있다. 다만 그 문을 누가 쥐고, 잠글 권한과 책임을 누구에게 묶을지를 우리가 정하자는 것이다. 소유에서 권리로의 이동을 진보라 부르려면, 그 권리가 발급자의 변심 한 번에 증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먼저다. 기술은 이미 우리 손에 열쇠를 쥐여줬다. 남은 질문은 그 열쇠로 열리는 문이 정말 우리 것인지, 아니면 잠시 들여보내 주는 남의 집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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