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BRIDGE
합류하기
Web3 칼럼

거래장부는 누가 가져가나

원화 스테이블코인 경쟁의 진짜 판돈은 더 싼 송금이 아니다. 시민의 거래 흐름 전체라는 데이터 인프라를 누가 통제 마디로 쥐느냐다.

명암 명암 · · 9분 읽기
거래장부는 누가 가져가나

모두가 '수수료 0원'을 본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이야기가 나올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장면은 늘 같다. 며칠 걸리던 해외 송금이 몇 초로 줄고, 은행이 떼던 수수료가 사라지고, 자영업자가 카드사에 내던 가맹점 수수료가 0에 수렴한다는 그림. 핀테크 발표 자료는 거의 예외 없이 '비용 절감'이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빠르고, 싸고, 24시간 돌아간다. 여기까지만 보면 반대할 이유가 없는 기술이다.

그런데 효율이라는 단어는 늘 절반의 문장이다. 비용이 줄었다면 그 비용은 사라진 게 아니라 누군가의 장부에서 다른 장부로 옮겨갔을 뿐이다. 카드 수수료가 0이 되면 그 1.5퍼센트는 증발하는 게 아니라, 그 거래가 만들어내는 다른 무언가로 형태를 바꿔 회수된다. 결제 인프라를 깐 쪽이 회수하는 그 '다른 무언가'가 무엇인지 묻지 않으면, 우리는 스테이블코인 경쟁의 진짜 판돈을 영영 못 본다.

판돈은 결제 그 자체가 아니다. 결제가 지나가는 길목, 그리고 그 길목을 지나간 모든 발자국의 기록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얼마를 누구에게 보냈는가. 이 데이터의 총합이 한 사회의 거래장부이고, 스테이블코인 전쟁은 이 장부를 누가 운영하고 누가 읽느냐를 두고 벌어지는 인프라 쟁탈전이다. 송금비 인하는 그 장부를 손에 넣으려고 발행사가 먼저 내놓는 미끼에 가깝다.

공짜 결제의 청구서는 어디로 가나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사업 구조를 뜯어보면 동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발행사는 사용자가 맡긴 원화를 받아 코인을 찍어주고, 그 원화를 국채나 단기 예금에 넣어 이자를 가져간다. 테더가 미국 단기국채의 큰손이 되고, 서클이 금리 수익으로 흑자 전환한 게 바로 이 발행차익, 곧 시뇨리지(화폐 발행자가 얻는 차익) 구조다. 사용자에게는 결제 수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 발행 잔액 자체가 무이자 자금이고, 그 자금이 굴러 이자를 낳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수료 0원'은 자선이 아니라 더 큰 잔액을 모으기 위한 가격 전략이다.

여기서 한 번 멈춰서 봐야 할 지점이 있다. 발행차익만으로는 이 그림이 다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제망을 깐 쪽이 진짜로 노리는 건 잔액이 아니라 흐름이다. 잔액은 한 번 측정되는 숫자지만, 흐름은 끊임없이 갱신되는 살아 있는 데이터다. 어떤 상권이 살아나고 죽는지, 어떤 연령대가 무엇에 돈을 쓰는지, 특정 상점의 매출이 어제보다 늘었는지 줄었는지를 실시간으로 아는 자는 그 자체로 신용평가사이자 광고 플랫폼이자 금융감독원의 일부 기능을 사적으로 보유하게 된다.

그래서 공짜 결제의 청구서는 사용자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분산 청구된다. 한쪽에서는 발행사가 발행차익을 가져가고, 다른 쪽에서는 거래 데이터의 독점적 열람권이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이 발행사 장부에 쌓인다. 사용자는 수수료를 아낀 대신 자기 거래 이력 전체를 한 사기업이 읽도록 내준다. 등가교환처럼 보이지만 비대칭 교환이다. 내가 아낀 건 한 번의 송금비고, 내준 건 평생의 거래 패턴이다.

반론을 정직하게 다루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카드사도 이미 우리 거래를 다 보고 있고 은행도 마찬가지인데, 스테이블코인만 유독 문제 삼는 건 과잉 해석 아니냐. 맞는 지적이다. 차이는 정도가 아니라 구조에 있다. 카드망은 여신전문금융업법과 신용정보법이라는 규제의 우리 안에 들어 있고, 거래 데이터의 사용 범위가 법으로 묶여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지금 그 우리가 아직 세워지지 않은 빈터에서 먼저 결제망을 깔고 있다. 같은 데이터라도 누가 어떤 규칙 아래 쥐느냐가 권력의 크기를 결정한다. 문제는 데이터 수집 자체가 아니라, 규칙 없는 상태에서의 선점이다.

길목을 쥔 자가 통행세를 정한다

이 판을 권력의 언어로 다시 쓰면 이렇게 된다. 결제는 모든 경제 활동이 반드시 통과하는 병목이다. 그리고 병목을 쥔 자는 통행세를 매길 권리, 더 정확히는 통행 자체를 허용하거나 거부할 권리를 갖는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노리는 건 이 거부권이다.

상상해 보자. 어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결제의 표준이 됐다고. 그 발행사는 특정 지갑을 동결할 수 있고, 특정 상점을 결제망에서 배제할 수 있고, 특정 거래를 사후에 되돌릴 수 있다. 테더와 서클이 실제로 미국 법무부나 제재 당국의 요청에 따라 수억 달러어치 지갑을 동결해 온 게 이 권력의 실물 증거다. 블록체인은 탈중앙을 약속했지만, 발행사가 중앙에서 발행과 소각의 스위치를 쥐는 한 그건 분산된 장부 위에 올라탄 중앙집권 권력이다. 통행세를 면제해 준다는 약속 뒤에, 통행을 끊을 수 있다는 더 큰 권력이 숨어 있다.

여기에 두 번째, 세 번째 효과가 따라붙는다. 일단 한 발행사의 코인이 결제 표준이 되면, 그 위에 임금 지급과 정산, 대출, 보조금 지급이 차례로 얹힌다. 결제 레이어를 장악한 자는 그 위에 쌓이는 모든 금융 서비스의 입력값을 통제한다. 다음 100개의 금융 상품이 어느 데이터 위에서 만들어질지를 결정하는 셈이다. 그러면 경쟁사는 같은 데이터에 접근하지 못해 영원히 후발 주자로 묶인다. 효율로 시작한 게임이 어느 순간 거부권 게임으로, 다시 데이터 봉쇄 게임으로 단계가 올라간다.

이게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인지, 남이 만든 흐름에서 자릿세를 걷는 행위인지 구분해야 한다. 더 싼 송금을 발명한 것까지는 무언가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거래장부의 열람권과 거부권을 사유화하는 것은 만드는 일이 아니라 길목에 서서 걷는 일이다. 한국 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얼마나 싸졌나'가 아니라 '이 발행사가 끝내 무엇을 걷어갈 작정인가'다.

세 개의 후보, 같은 길목

지금 이 거래장부를 두고 세 종류의 후보가 경쟁한다. 첫째는 민간 발행사다. 은행 컨소시엄이든 핀테크든, 발행차익과 데이터를 동력으로 움직인다. 둘째는 한국은행이 검토하는 CBDC, 곧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다. 셋째는 결제 사용자 기반을 이미 쥔 빅테크와 대형 플랫폼이다.

이 셋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깃발을 들지만, 노리는 길목은 하나다. 차이는 그 길목을 쥔 뒤의 규칙이 누구의 것이냐다. 민간 발행사가 쥐면 데이터는 주주 가치로 환산되고 거부권은 영업 정책이 된다. CBDC가 쥐면 효율은 올라가지만 국가가 모든 시민의 거래를 단일 창으로 들여다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실험이 보여준 게 정확히 이 양면이다. 위조와 탈세는 줄지만, 거래의 익명성이 사실상 사라지고 국가가 개별 지출에 조건을 걸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빅테크가 쥐면 결제 데이터가 광고와 신용 사업으로 흘러들어 가,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슈퍼앱이 한 사람의 금융 생애 전체를 한 화면에서 관리하는 봉인된 정원(walled garden)이 완성된다.

세 후보 누구도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각자의 인센티브가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 뿐이다. 발행사는 잔액과 데이터를 키우도록, 중앙은행은 통제와 안정을 우선하도록, 플랫폼은 사용자를 자기 정원에 가두도록 설계돼 있다. 도덕을 떼고 봐도 이 글은 성립한다. 누가 더 탐욕스러운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인센티브 구조가 시민의 거래장부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느냐의 문제다.

한국은 어느 좌표에 서 있나

세계 지도 위에서 한국의 위치를 한 번 고정하자. 미국은 발행사 주도 모델을 사실상 추인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진행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곧 달러 패권의 디지털 연장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유럽은 미카(MiCA, 가상자산 시장 규제)로 발행사에 준비금과 감독을 강하게 묶어 우리를 먼저 세웠다. 중국은 민간 코인을 막고 국가 CBDC로 직행했다. 한국은 이 셋 중 어디에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규칙이 비어 있는 좌표에 서 있다. 채택 곡선으로 보면 초기 다수가 막 올라타기 직전, 표준이 정해지기 직전의 가장 결정적인 구간이다.

이 빈터가 위험인 동시에 기회다. 위험은 규칙이 없는 사이에 가장 빠른 사업자가 사실상의 표준을 깔아버리면, 나중에 만든 규제가 이미 깔린 인프라를 추인하는 데 그친다는 점이다. 미국이 발행사 모델을 입법으로 추인한 게 그 경로다. 기회는 아직 우리를 우리가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부산에서 이 문제를 보면 좌표가 더 또렷해진다. 부산은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디지털 자산 실험의 무대로 거론돼 왔다. 특구는 규칙을 풀어주는 공간이지, 규칙을 없애는 공간이 아니다. 만약 특구가 발행사에게 데이터 사용과 동결 권한을 묻지 않은 채 결제망 선점만 허용한다면, 그건 지역을 실험대로 내주고 거래장부 소유권을 사기업에 헌납하는 일이 된다. 반대로 특구가 거래 데이터의 공적 접근, 동결 권한의 사법 통제, 발행차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조건을 먼저 설계하고 실험을 허용한다면, 부산은 한국이 따라야 할 규칙의 원형을 먼저 만든 도시가 된다.

내일 같은 비트를 취재하는 기자가 있다면, 발표된 송금 속도와 수수료 숫자 대신 이 세 가지를 물어야 한다. 이 발행사는 우리 거래 데이터를 어디까지 읽고 누구에게 파는가. 어떤 절차로 지갑을 동결하며 그 결정에 사법적 견제가 있는가. 발행차익은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그중 얼마가 공적으로 환원되는가. 이 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결제 혁신은 혁신이 아니라 권력 이전이다.

기술을 멈추자는 게 아니다. 빠르고 싼 결제는 분명히 좋은 일이다. 다만 거래장부라는 한 사회의 가장 예민한 인프라가 누구의 규칙 아래에서 돌아갈지를, 인프라가 굳어버리기 전에 우리가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길목은 어차피 누군가 쥔다. 질문은 그 길목의 규칙을 발행사 약관이 쓸 것이냐, 시민의 법이 쓸 것이냐다.

이 글이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글쓴이

명암

명암

기술사회 비평가

새 기술이 만든 효율의 청구서를 펼친다. 누가 편해지고 누가 그 값을 치르는지.

명암의 다른 글 보기 →

이 글이 유용했다면 공유해 주세요

명암 칼럼 더 보기 →

명암의 다른 글

전체 보기 →

관련 스토리

Web3 전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