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하나로 도시를 베다
SANABI · 출처 Steam
대부분의 플랫포머는 점프로 사고한다. 산나비는 갈고리로 사고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원더포션이 만든 이 게임은 그래플링 훅 하나에 모든 무게를 싣는다. 화면 어딘가에 줄을 걸고 몸을 던지면 관성을 타고 다음 지점까지 흘러간다. 잘 안 풀리면 추락하고, 잘 풀리면 도시 전체가 한 줄기 궤적으로 이어진다. 사이버펑크의 네온과 픽셀아트의 질감 위에서 플레이어는 걷는 게 아니라 도시를 가로지른다. 산나비가 액션 플랫포머로 호평받은 이유는 단순하다. 이동 자체가 재미있다.
이 게임이 진짜 다른 지점은 그 다음이다. 빠른 이동 액션을 가진 게임은 많지만, 그 속도에 슬픔을 묶어둔 게임은 드물다.
속도와 감정이 같은 줄에 걸릴 때
산나비를 특별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설계는 액션의 쾌감과 내러티브의 정서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이 둘은 싸운다. 스토리가 무거워지면 손이 멈추고, 손이 바빠지면 마음이 비워진다. 산나비는 그 충돌을 피하는 대신 같은 동작 안에 둘을 겹쳐 넣었다.
갈고리로 빠르게 움직인다는 건 결국 무언가를 향해, 혹은 무언가로부터 몸을 던지는 일이다. 그 방향에 감정이 실린다. 도시를 누비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야기의 긴장도 함께 당겨지고, 멈춰야 할 순간엔 액션도 함께 숨을 고른다. 메카닉과 정서가 따로 도는 두 트랙이 아니라 하나의 리듬으로 묶여 있다. 이 합은 디자인 문서로 맞춰지지 않는다. 수없이 다듬어야 겨우 나오는 감각인데, 산나비는 그걸 해냈다.
주목할 건 이 결합이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손이 익숙해질수록 이야기가 더 깊이 박히고, 이야기에 빠질수록 손이 더 간절해진다. 액션이 정서를 끌어올리고 정서가 다시 액션을 밀어내는 순환이 한 손가락 안에서 일어난다. 같은 버튼이 쾌감의 도구이자 감정의 통로로 동시에 기능하는 셈이다. 여기에 사이버펑크 도시라는 무대가 정확히 맞물린다. 차갑고 인공적인 배경은 감정의 온도를 낮춰 받쳐주고, 픽셀아트는 표정을 비우는 대신 동작과 공간으로 말하게 한다. 적게 보여주고 깊게 남기는 쪽을 택한 연출이다.
정직하게, 한 가지 약점
칭찬만 하면 비평이 아니다. 내러티브 중심 액션 플랫포머가 흔히 지는 부담을 산나비도 완전히 피하진 못한다. 이야기에 무게를 실을수록 스토리를 위해 플레이어의 손을 잠시 묶어두는 구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액션의 가속과 연출의 호흡이 늘 같은 속도로 가지는 않는다. 빠르게 흐르고 싶은 플레이어에게는 이 멈춤이 리듬의 끊김으로 느껴질 수 있다. 몰입의 대가로 치르는 비용에 가깝고, 감내할 만한 종류이긴 하다.
한국 인디 씬에 남긴 좌표
산나비가 한국 인디에서 갖는 의미는 작은 팀도 메카닉과 정서를 동시에 설계할 수 있다는 증거라는 데 있다. 한쪽만 잘하는 인디는 많다. 손맛은 좋은데 이야기가 비거나, 이야기는 좋은데 만지는 맛이 없다. 둘을 같은 줄에 묶어 끝까지 끌고 간 작업은 흔치 않다.
부산발 미디어로서 우리가 이 게임을 주목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 화려한 규모가 아니라 설계의 밀도로 승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국 인디가 어느 좌표까지 와 있는지 보고 싶다면, 산나비의 갈고리 끝을 따라가 보면 된다.
움직임이 곧 감정이 되는 게임은 드물다. 산나비는 그 드문 자리에 줄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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