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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s Culture 칼럼

부산은 무대가 아니다

실제 도시를 게임으로 옮길 때 무엇이 플레이가 되고 무엇이 벽지로 남는가. 부산을 배경으로 한 게임 한 편을 직접 돌려보며 장소의 진짜와 가짜를 레벨디자인의 눈으로 갈라봤다.

1UP 1UP · · 4분 읽기
부산은 무대가 아니다

그림 ·목탄·연필 스케치 + 워시

부산을 배경으로 깔았다는 게임을 켤 때마다 같은 의심부터 든다. 이게 부산인가, 부산 사진인가.

광안대교가 보이고 감천문화마을의 계단식 색면이 깔리면 사람들은 쉽게 "부산 게임"이라 부른다. 나는 그 호명을 의심하는 쪽이다. 배경은 장소가 아니다. 장소는 플레이어가 그 안에서 뭔가를 하다가 막히고, 돌아가고, 길을 외울 때 비로소 생긴다. 사진은 보여지는 것이고 장소는 통과되는 것이다. 이 차이를 레벨디자인은 안다.

스카이라인은 거짓말을 잘한다

부산을 옮긴 게임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고 가장 빨리 죽는 요소가 스카이라인이다. 광안대교는 강력한 실루엣이다. 멀리서 한 번 보여주면 "아 부산이구나" 하고 플레이어의 뇌가 도장을 찍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다리는 건너야 다리다. 보이기만 하는 다리는 벽에 붙은 포스터와 기능이 같다. 실제로 많은 도시 배경 게임이 랜드마크를 스카이박스에 박아두고 끝낸다. 거기엔 충돌 판정도 동선도 막힘도 없다. 플레이어는 그 다리 위에서 길을 잃어본 적이 없으니 그 다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진짜가 되는 건 오히려 이름 없는 것들이다. 부산의 진짜 텍스처는 경사다. 산복도로의 계단, 감천 골목이 꺾이는 각도, 평지가 거의 없어서 모든 이동에 위아래가 섞이는 감각. 어떤 게임이 부산을 평평하게 깔고 그 위에 광안대교 그림만 세웠다면, 그건 부산을 찍은 것이지 부산을 만든 게 아니다. 반대로 경사를 이동 비용으로, 계단을 마찰로, 골목의 시야 차단을 긴장으로 번역했다면 랜드마크가 한 번도 안 나와도 그건 부산이다.

내가 직접 돌려본 인디 산책형 빌드 하나는 이 지점에서 절반만 성공했다. 감천의 색면을 아트로는 충실히 옮겼는데, 바닥은 그냥 미끄러운 평면이었다. 눈은 부산을 봤지만 다리는 아무 데도 안 갔다. 색은 진짜였고 지형은 가짜였다.

닌텐도가 교토를 다루는 방식

비교 좌표를 하나 두자. '젤다의 전설' 시리즈를 만든 닌텐도는 교토 회사다. 그들이 만든 오픈월드 산은 교토의 특정 산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산을 오르는 감각, 정상에서 다음 목표가 보이고 시야가 동선을 끌어당기는 설계는 실제 등산의 신체 기억에서 나왔다. 장소를 복사한 게 아니라 장소에서 몸이 배운 규칙을 옮긴 것이다. 'Marvel's Spider-Man'의 맨해튼도 마찬가지다. 그 게임이 칭찬받은 건 건물이 닮아서가 아니라, 빌딩 사이를 스윙하는 리듬이 도시의 밀도와 수직성을 플레이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거리 이름은 거들 뿐이다.

이게 부산 게임이 배워야 할 분리다. 옮길 것은 외관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만 작동하는 규칙이다. 부산이라면 그 규칙은 분명하다. 산이 바다로 곧장 떨어진다. 그래서 시야가 자주 트이고 자주 막힌다. 골목 끝에서 갑자기 바다가 나오는 그 전환, 그게 부산의 레벨 문법이다. 이걸 카메라 워크와 동선 설계로 옮기면 광안대교 없이도 부산이 선다. 옮기지 않으면 광안대교를 백 개 박아도 그냥 다리 전시장이다.

무대장치는 왜 무대장치가 되는가

여기서 흔한 반론이 나온다. "그래도 관광 랜드마크가 있어야 사람들이 부산인 줄 알고, 그게 지역 게임의 홍보 가치 아니냐." 부산시나 지역 진흥 사업의 논리가 대체로 이렇다. 일리는 있다. 인지도는 자산이다. 다만 인지도와 플레이어블은 다른 층위다. 랜드마크는 인지의 입구로 쓰되, 그 입구가 곧 게임의 살이 되어선 곤란하다. 입구에서 멈춘 게임은 관광 안내도에 조이스틱을 붙인 물건이 된다. 처음 10초는 후킹되지만 다음 10분이 없다.

무대장치가 무대장치로 죽는 이유는 단순하다. 플레이어가 그것과 상호작용하며 실패하거나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는 생성량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산의 풍경을 더 많이, 더 화려하게 렌더한다고 장소가 깊어지지는 않는다. 깊이는 마찰에서 온다. 이 계단을 오를까 돌아갈까, 이 골목은 막혔나 뚫렸나, 저 언덕 위가 보이는데 어떻게 가지. 의도된 거부와 제약이 플레이어에게 그 공간을 외우게 만든다. 외운 공간만이 장소가 된다.

부산 인디 씬에 이 말을 남기고 싶다. 우리의 무기는 광안대교 렌더링 경쟁이 아니다. 대형 스튜디오의 포토리얼을 따라가는 길에 승산은 없다. 우리가 매일 오르내리는 그 경사, 골목에서 바다로 꺾이는 그 순간의 신체 감각, 그걸 규칙으로 번역하는 일이야말로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부산을 찍지 말고 부산을 통과하게 만들 것. 장소를 배경에서 끌어내려 플레이어의 다리 밑에 깔 것. 그때 비로소 이 도시는 무대장치이기를 그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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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터랙션 비평가

손가락이 화면에서 멈추는 0.2초를 들여다본다. 재미가 태어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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