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조각 ·종이 콜라주 컷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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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한 시드 단계 회사가 채용 공고 대신 "우리는 사람을 더 뽑지 않습니다"를 자랑처럼 내건다. 직원은 셋인데 산출물은 서른 명짜리다. 처음엔 허세로 들린다. 다시 보면 회사 형태가 통째로 바뀌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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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발표를 제품 뉴스로만 읽는 습관이 여기서 가장 크게 빗나간다. Anthropic의 Claude, OpenAI의 에이전트 빌더, Microsoft의 코파일럿 군집은 "더 똑똑한 챗봇" 경쟁이 아니다. 이들이 진짜로 파는 건 노동을 호출 가능한 단위로 쪼개는 인프라다. 사람 한 명이 하던 일을 함수 호출 수백 개로 분해해서, 누가 그 호출의 표준을 쥐느냐를 두고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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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인원수로 세는 습관은 산업혁명의 유물이다. 공장은 손이 많을수록 많이 찍어냈다. 그래서 매출을 직원 수로 나눈 1인당 생산성이 지표가 됐다. 그 분모가 지금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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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조직도는 명단이 아니라 그래프다. 노드는 사람이 아니라 작업이고, 엣지는 보고 라인이 아니라 데이터 흐름이다. 팀장은 사람을 관리하는 대신 에이전트의 호출 순서를 설계한다. WhatsApp이 직원 55명으로 190억 달러에 팔렸을 때 모두가 예외로 불렀다. 이제 그 비율이 평균이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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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자본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봐야 한다. Nvidia의 시가총액, OpenAI와 Anthropic으로 들어간 수백억 달러, 데이터센터 전력 확보 경쟁. 돈은 사람을 고용하는 쪽이 아니라 추론을 싸게 만드는 쪽으로 흐른다. a16z나 Sequoia 같은 VC가 시드 라운드에서 "팀 규모"보다 "에이전트로 대체 못 하는 핵심이 뭐냐"를 먼저 묻기 시작한 게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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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악하려는 레이어가 어디인지가 핵심이다. 칩은 Nvidia, 모델은 OpenAI·Anthropic·Google, 그 위에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레이어가 새로 열린다. 이 오케스트레이션 레이어를 쥐는 회사가 다음 10년의 운영체제를 쥔다. 윈도우가 PC를, iOS가 모바일을 쥐었던 그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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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강한 반론이 하나 나온다. "사람을 줄여 만든 회사는 깊이가 없다, 결국 진짜 제품은 큰 조직이 만든다." 절반은 맞다. 규제 산업, 하드웨어, 신뢰가 자산인 영역은 인원이 곧 해자다. 그러나 모든 회사가 작아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같은 인원으로 산출이 10배가 되면, 경쟁자는 같은 산출을 10분의 1 인원으로 낸다는 뜻이다. 깊이의 문제가 아니라 단위 원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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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진짜 질문은 한국 기업으로 넘어온다. 이 경쟁에서 우리는 공급자인가, 고객인가, 표준 설계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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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스타트업 대부분의 채용표는 여전히 "시리즈 A에 개발자 10명, B에 20명"이라는 인원수 곡선 위에 있다. 투자사도 그 곡선으로 회사를 읽는다. 인원수가 곧 진척도라는 합의. 이 합의가 가장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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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SaaS 팀이 같은 매출 목표를 인원 3분의 1로 설계한다고 상상해보자. 채용 계획서가 아니라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설계도를 들고 투자를 받으러 간다. 한국 VC는 아직 그 설계도를 읽을 언어가 없다. 그게 기회다. 먼저 그 언어를 쓰는 쪽이 다음 라운드의 기준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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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은 고객으로 끝난다. OpenAI API에 월 사용료를 내고, 미국 오케스트레이션 레이어 위에 앱을 얹는다. 나쁘지 않다. 다만 그 위치에선 원가가 남의 가격 정책에 묶인다. 모델 호출 단가가 오르면 우리 손익이 따라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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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자 자리도 있다. 데이터, 한국어, 동아시아 도메인 특화 평가셋, 특정 산업의 워크플로우 지식. 미국 모델이 갖지 못한 자산이다. 다만 공급자는 가격 협상력이 약하다. 표준을 쥐지 못하면 그 자산도 헐값에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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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설계자 자리는 비좁고 어렵다. 그러나 한국이 한 번도 안 가본 자리는 아니다. 반도체에서 우리는 공급자로 시작해 일부 공정의 표준을 쥐었다. 같은 길을 에이전트 레이어에서 다시 시도할 창이 지금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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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설계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사람을 뽑고 일을 나누는 순서가 아니라, 일을 그래프로 그린 뒤 사람이 꼭 필요한 노드만 남기는 순서다. 채용은 그다음이다. 이 역전을 받아들이는 한국 팀과 거부하는 한국 팀의 단위 원가가 2년 안에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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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이 장면은 남의 회사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기업의 다음 손익계산서에 들어올 원가 한 줄을 미리 보여주는 신호다. 관망의 비용은 조용하다. 경쟁자가 같은 매출을 3분의 1 인원으로 낼 때, 우리는 그 차이를 채용 공고가 아니라 폐업 공고에서 처음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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