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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발행권을 누가 갖느냐로 온 나라가 싸우는 동안, 비자는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자기 망에 그냥 태워버렸다. 발행은 한 줄도 안 했다. 그런데 돈은 비자가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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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제품 뉴스로 읽으면 핵심을 통째로 놓친다. "비자가 USDC 정산을 지원한다", "서클이 결제 네트워크를 깐다." 이건 기능 추가가 아니다. 돈이 어느 마디에서 떨어지는가, 그 좌표가 바뀐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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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국이 지금 무엇을 두고 싸우는지 보자. 발행 라이선스다. 은행이 발행하느냐 비은행이 발행하느냐, 최소 자본금을 얼마로 하느냐, 한국은행 권한이 어디까지냐. 전부 '발행' 주변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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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발행이 가치사슬에서 가장 돈이 안 되는 마디라는 데 있다. 발행자가 버는 건 준비금 이자뿐이라, 금리가 떨어지면 같이 떨어진다. 게다가 규제 부채를 통째로 짊어진다. 준비금 감사, 상환 의무, 자금세탁 책임, 뱅크런 리스크. 발행자는 통제실이 아니라 책임실에 들어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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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통행세는 다른 데서 걷힌다. 원화 토큰이 그냥 원화 토큰으로만 머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돈은 그 토큰이 환승할 때 떨어진다. 원화에서 달러로 바꿀 때, 한 체인에서 다른 체인으로 넘어갈 때, 국내 토큰이 해외 가맹점에서 긁힐 때. 그 환승역마다 건당 수수료를 걷는 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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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승역을 누가 쥐고 있나. 발행자가 아니다. 정산 레일을 깐 자다. 비자는 카드망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스테이블코인을 얹었다. 가맹점은 USDC를 받지만 정산은 비자 망을 통과한다. 통행료는 비자가 챙긴다. 서클은 한 발 더 나가 발행과 정산을 한 몸에 붙인, 자기 코인이 흐를 고속도로 자체를 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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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보면 왜 다들 이 자리를 탐내는지 분명해진다. 기존 국경 간 카드 결제에서 비자와 마스터가 가져가는 망 수수료는 거래액의 1퍼센트대다. 한국이 한 해 해외에서 긁고 송금하는 규모가 수천억 달러다. 그 1퍼센트가 매년 외국 레일로 빠져나가고 있고, 스테이블코인 레일은 바로 이 자리를 더 싸게 가져가겠다고 들어온 물건이다. 단가가 0.5퍼센트로 내려가도 거래량이 두 배가 되면 통행세 총액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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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동기를 거꾸로 짚어보자. 비자는 왜 발행을 안 하나. 못 해서가 아니다. 발행은 규제 부채가 크고 마진이 얇다. 정산 레일은 부채가 적고 통행세가 두껍다. 비자는 가장 비싼 마디만 골라 잡고, 가장 시끄러운 마디는 남에게 떠넘긴 것이다. 발행 라이선스를 놓고 싸우는 모두가 사실은 비자가 피한 자리를 서로 가지려 다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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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멈춰 세우는 지점이다. 우리는 지금 '누가 원화를 발행하나'라는 질문에 매달려 있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원화 토큰이 달러로, 해외로 나갈 때 그 레일이 누구 것이냐'다. 발행권은 국경 안에서 정해지지만, 정산 레일은 국경을 넘는 순간 이미 외국 인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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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쪽과 걷는 쪽을 나눠 보면 선명해진다. 발행자는 만든다. 준비금을 쌓고 토큰을 찍고 상환을 보증한다. 레일 사업자는 걷는다. 남이 만든 가치가 흐르는 길목에 서서 통행세만 받는다. 한국의 입법 논쟁은 '만드는 쪽'의 자격만 정하고 있고, '걷는 쪽'은 입법 레이더 바깥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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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은 정당하다. 정산 레일을 외국 인프라가 쥔다는 게 무슨 새로운 일이냐. 지금도 국경 간 카드 결제는 비자와 마스터가 다 먹고 있고, 우리는 그 위에서 잘 살고 있지 않나. 스테이블코인도 그저 같은 구조의 반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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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기존 카드망은 비싸고 느려서 토종 간편결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었다. 스테이블코인 레일은 그 틈을 메우려고 나온 물건이다. 더 싸고 더 빠르게 통행세를 걷으면, 토종이 들어갈 자리 자체가 사라진다. 같은 구조의 반복이 아니라,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막은 업그레이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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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미국 VC가 스테이블코인에 붓는 돈을 보면 발행 스타트업이 아니라 결제 인프라, 온오프램프, 정산 미들웨어로 몰린다. 발행이 상품화될 마디라는 걸 시장이 알고, 통행세가 걷히는 마디에 줄을 선 것이다. 돈의 흐름이 이미 '걷는 쪽'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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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산 좌표를 찍어보자. 한국은 글로벌 채택 곡선에서 후발 주자가 아니다. 카드와 간편결제 침투율로 보면 오히려 앞선 시장이다. 그런데 앞선 시장일수록 레일을 외국에 내주면 더 크게 잃는다. 거래량이 많을수록 통행세 총액이 크기 때문이다. 부산항을 통과하는 무역 결제, 동남아로 나가는 송금, 국경 간 정산이 전부 그 레일을 탄다. 부산항은 환적 물동량 기준 세계 2위급이다. 그 물동량에 붙는 결제와 정산이 어느 레일을 타느냐는, 항만 운영권만큼 중요한 인프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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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같은 비트를 쓰는 한국 기자에게 줄 질문은 이거다. 새 스테이블코인 발표가 나오면 '누가 발행하나'를 두 번째로 미루고 먼저 물어라. 이 토큰이 달러로, 다른 체인으로, 해외 가맹점으로 갈 때 그 환승역 수수료는 누구 지갑에 떨어지나. 발행자 이름이 아니라 정산 사업자 이름을 찾아내는 게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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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리스크는 위치가 명확하다. 현금은 한국 사용자와 가맹점에서 들어오고, 통행세는 국경을 넘는 환승역에서 외국 레일로 빠져나간다. 발행 라이선스를 한국 기업이 따도, 그 토큰이 흐르는 고속도로가 비자와 서클 것이면 우리는 톨게이트 운영권을 영원히 빌려 쓰는 처지가 된다. 입법은 차고지를 누가 갖느냐만 정하고, 도로는 이미 남이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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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이번 발표는 남의 결제 뉴스가 아니다. 한국 기업이 해외로 돈을 보낼 때마다 건당 얼마를 외국 레일에 바칠지, 그 단가표를 미리 짜는 신호다. 발행권 전쟁에서 이겨도 통행세를 남이 걷으면 진 거다. 관망의 비용은 매 거래마다 건당으로 청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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