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와 경남이 'AI 허브'를 외친다. 데이터센터를 유치해 동남권을 한국의 AI 심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보도자료는 일자리와 투자 금액을 센다. 그런데 그 숫자가 묻지 않는 게 하나 있다. 들어온 데이터센터가 실제로 빨아먹는 건 부지가 아니라 전력이다.
부지는 흔하고, 변전소 옆자리는 귀하다
GPU 랙은 땅을 거의 안 쓴다. 전기를 통째로 마실 뿐이다. 그래서 입지의 진짜 변수는 평당가가 아니다. 한국전력 변전소까지의 거리, 수전 용량, 계통 연결 대기열이다. 수도권은 이 줄이 이미 막혔다. 신규 연결이 몇 년씩 밀린다. 부산·경남이 들고 나온 카드는 사실 그 우회로다.
여기서 멈출 지점이 있다. 우리가 파는 게 '땅'이 아니라 '전력망의 빈 슬롯'이라면, 이건 부산이 쥔 병목 자산을 임대 놓는 사업이다. 통행세를 걷는 쪽은 부지를 내준 지자체가 아니다. 그 위에 연산을 얹는 SK·네이버 같은 사업자, 그리고 송전 계통을 통제하는 한국전력이다. 부산은 길을 깔아준다. 요금은 다른 데서 걷힌다.
만드는가, 빨아가는가
핵심 질문은 이거다. 만드는 쪽인가, 빨아가는 쪽인가. 데이터센터가 동남권에 가치를 '만들려면', 그 전력·냉각 인프라 위에 지역의 무언가가 끼워져야 한다. 항만 물류 AI, 조선·기계의 시뮬레이션 수요, 부산대·해양 클러스터의 연구 컴퓨트 같은 것들이다. 그래야 데이터센터는 끝점이 아니라 다음 100개 지역 기업이 끼워 쓰는 공용 입력값이 된다.
반대 시나리오는 이렇다. 지역 전력과 그린벨트 완화, 세제 감면을 받아 서버를 돌리되, 그 연산은 전량 서울·글로벌 클라우드 수요로 빠져나간다. 청정 전력은 입주사가 선점하고, 계통 혼잡 비용과 냉각수 부담은 지역이 떠안는다. 이익은 밖으로, 비용은 동남권으로. 대칭이 깨지는 지점이다.
여기서 동기를 한 칸 뒤집어 보면 분기가 더 선명해진다. 지자체는 왜 굳이 슬롯을 한 번에 넘기려 드는가. 임기 안에 찍을 유치 실적, 테이프 커팅용 투자액 발표문이 정치 인센티브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빠른 발표는 보상받고, 느린 산업 점화는 보상받지 않는다.
반론은 정당하다. "데이터센터는 그냥 평범한 부동산 개발이고, 세수와 건설 일자리만으로도 남는 장사 아니냐." 일부는 맞다. 다만 그건 일회성이다. 전력 슬롯이라는 희소 자산을 한 번 넘기면, 그 위에 지역 산업이 올라타지 못한 채 슬롯만 소진된다. 다음 AI 기업이 왔을 때 내줄 변전소 옆자리가 안 남는다. 그게 진짜 비용이다.
미·중 판의 좌표, 그리고 내일의 질문
미국은 CHIPS 이후 AI 인프라 자체를 안보 자산으로 묶었다. 전력·반도체·데이터센터를 한 묶음으로 본다. 한국은 그 사슬의 하청이 아니라, 전력망이라는 물리 병목을 쥔 자리에 있다. 동남권이 그걸 임대업으로 쓸지, 산업 점화의 점화플러그로 쓸지가 갈림길이다.
부산 기자라면 내일 이걸 물어라. 발표문의 투자액 말고, 한국전력 수전 계약 용량과 계통 연결 시점을. 가설 검증은 신호 하나로 충분하다. 입주 계약서상 역내 수요 비중, 한전 수전계약 대비 지역 PPA 비율이 의미 있는 숫자로 잡히는가. 아니면 전력만 빠져나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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