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숯 ·목탄·연필 스케치 + 워시
모태펀드를 보조금으로 오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창업 동네 바깥의 사람들은 정부 매칭펀드를 대체로 보조금의 일종으로 읽는다. 나라가 스타트업한테 돈을 준다, 정도로. 절반만 맞다. 모태펀드는 한국벤처투자가 운용하는 재간접 펀드다. 정부가 스타트업에 직접 꽂는 게 아니라, 민간 벤처캐피털이 만든 자펀드에 한국벤처투자가 출자자(LP)로 들어간다. VC가 펀드를 결성하면 그 절반 안팎을 모태펀드와 지방자치단체 매칭출자가 채워주는 구조다. 부산만 해도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와 지역 모펀드가 같은 방식으로 지역 자펀드에 출자한다.
핵심은 국가가 돈을 주는 주체가 아니라 돈을 함께 대는 투자자라는 점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보조금과 LP 출자는 작동 원리가 정반대다. 보조금은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받고 끝이다. LP 출자는 다르다. 어디에 얼마가 들어가는지가 곧 시장에 '여기가 유망하다'는 메시지가 된다.
같은 돈이 신호를 읽고, 동시에 신호를 쓴다
쉬운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 모태펀드는 도서관의 구매 예산 같은 것이다. 사서가 잘 팔리는 책을 사면 그 책은 더 잘 보이고, 그래서 더 많이 읽힌다. 구매가 인기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인기를 만든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구분이 안 된다.
VC 시장도 똑같다. 원래 LP 자본은 시장 신호를 읽는 도구다. 좋은 GP, 좋은 섹터에 돈이 몰린다. 그런데 국가가 가장 큰 단일 LP가 되면 읽기와 쓰기가 한 손에서 일어난다. 모태펀드가 특정 분야 출자 비중을 늘리면 VC는 그 분야 펀드를 결성하고, 그 분야 스타트업이 갑자기 '투자 가능한' 대상이 된다. 시스템, 바이오, 딥테크처럼 정책 키워드가 붙은 영역에 자금이 쏠리는 게 시장의 발견인지 정책의 지시인지, 사후엔 누구도 깔끔하게 가르지 못한다.
이게 인센티브 비대칭의 핵심이다. 민간 LP는 손실을 자기가 떠안기 때문에 회수에 사활을 건다. 반면 국가 LP의 운용역은 펀드가 깨져도 개인이 파산하지 않는다. 대신 출자 실적과 정책 부합도로 평가받는다. 그러면 자금은 가장 큰 수익이 날 곳이 아니라, 가장 설명하기 좋은 곳으로 흐른다. Goodhart의 함정이다. 출자 비중이 정책 목표가 되는 순간, 비중을 채우는 일 자체가 목적이 되고 진짜 옥석 가리기는 뒷전이 된다.
개인 투자자처럼 굴면 안 된다
여기서 흔한 반론이 나온다. 그래도 모태펀드 없으면 한국 VC 시장 자체가 안 굴러간다고. 맞는 말이다. 2000년대 초 한국 벤처 생태계는 마중물 없이는 민간 자본이 들어오지 않는 시장이었고, 모태펀드가 그 공백을 메웠다. 지방은 지금도 이 마중물이 끊기면 자펀드 결성 자체가 안 된다. 부산, 울산, 경남 권역의 청년 창업팀이 서울로 가지 않고 버티는 데는 지역 매칭출자가 깔아둔 바닥이 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국가가 자기를 개인 투자자처럼 이해한다는 데 있다. 좋은 딜을 골라 수익을 내는 한 명의 큰손. 그 프레임이면 평가도 회수율로 하고, 성공도 엑시트로 센다. 그런데 국가 자본의 진짜 산출물은 수익이 아니라 시장 구조다. 어떤 섹터에 자본 경로를 깔았는가, 어떤 지역에 회수 가능한 자본 순환을 만들었는가, 어떤 분야의 가격 신호를 살려뒀는가. 개인 투자자는 시장을 읽지만, 국가 LP는 시장을 설계한다. 자기가 설계자라는 자각이 없는 설계자가 가장 위험하다.
한국이 아직 정의하지 못한 빈칸
여기서 제도의 빈칸이 드러난다. 우리는 국가 LP 자본이 시장 신호를 얼마나 왜곡하는지 측정할 공공의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 모태펀드 출자 데이터는 분야별, 연도별 금액까지는 공개되지만, 그 출자가 민간 자본을 끌어왔는지(crowding-in) 아니면 민간이 갈 자리를 밀어냈는지(crowding-out)를 가르는 지표는 제도화돼 있지 않다. 미국 SBIC나 이스라엘 요즈마가 민간 유입 배수를 핵심 성과로 따지는 것과 대비된다.
더 깊은 빈칸은 책임성의 언어다. 국가 LP가 특정 분야 출자를 늘려 거품이 끼고 그 거품이 꺼졌을 때, 그건 시장의 실패인가 정책의 실패인가. 지금 한국엔 이 질문에 답할 회계 틀이 없다. 출자는 정책 성과로 잡히고, 손실은 시장 변동으로 처리된다. 이익은 정책이 가져가고 손실은 시장에 떠넘기는 비대칭이 회계 구조에 박혀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데이터는 공공재다. 누가 어디에 출자해 무엇이 자랐는지는 한 나라의 산업 지형을 그리는 1차 자료다. 그런데 이 데이터를 시민이 읽을 수 있는 형태로 해석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은 없다. 창업 생태계를 가장 크게 움직이는 자본의 흐름이, 정작 그 자본의 주인인 시민에게는 해독 불가능한 표로만 존재한다.
잘 굴리는 나라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나라
그래서 진짜 과제는 모태펀드를 더 키우느냐 줄이느냐가 아니다. 국가가 LP가 될 때 자기가 신호의 독자이자 저자라는 이중 역할을 제도의 언어로 인정하느냐다. 출자 비중이라는 정책 목표가 그 비중을 채우는 행위로 자기 목적을 바꿔치기하는 순간을 감시할 회계 틀이 있느냐다.
AI를 개인 생산성 도구로만 보는 시선이 위험한 것과 같은 이유로, 모태펀드를 큰손 투자 도구로만 보는 시선도 위험하다. 둘 다 사회 구조를 설계하는 공공 시스템인데 개인 도구의 언어로 다루고 있다. 국가가 자본 시장에서 가장 큰 신호를 쏘면서 그 신호의 효과를 측정하지 않는다면, 그건 운용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뭘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매칭펀드를 잘 굴리는 나라는 많다. 더 필요한 건 그 돈이 시장에 무슨 신호를 쓰고 있는지 읽어내는 나라다. 자본을 잘 배분하는 능력보다, 그 배분이 시장을 어떻게 다시 그리는지 이해하는 능력. 잘 쓰는 것보다 제대로 아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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