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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s AI 칼럼

AI는 인간을 베껴 가르친다

강화학습 에이전트는 인간을 이기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인간이 한 번도 둬보지 못한 수를 인간 문화 속으로 되돌려 보낸다. 게임판 위에서 벌어지는 이 일은, 인간이 무엇을 자기 일로 남길지를 묻는 리허설이다.

기계의 꿈 기계의 꿈 · · 6분 읽기
AI는 인간을 베껴 가르친다

그림 ·목탄·연필 스케치 + 워시

바둑판의 한 점에서 시작하자.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둔 37수는 당시 프로 기사들이 거의 실수로 여겼던 자리였다. 인간 기보 수천 년치를 통틀어 그 위치에 돌을 놓은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몇 년 지나자 그 수는 정석에 가까운 선택지가 됐다. 인간이 AI를 이긴 이야기가 아니다. AI가 둔 한 수가 인간의 미감(美感) 자체를 바꿔놓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흔히 여기서 멈춘다. 기계가 인간을 넘어섰다, 인간 고유의 직관도 결국 계산이었다는 식으로. 그 해석은 절반만 맞고, 더 중요한 절반을 놓친다. 핵심은 AI가 인간을 이겼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AI가 만들어낸 수가 다시 인간의 손에 들려 새로운 창작의 재료가 됐다는 데 있다.

직관이라는 마지막 성역

오랫동안 우리는 직관을 인간의 마지막 성역으로 여겼다. 계산은 기계에 내줘도, 판 전체를 한눈에 읽고 설명할 수 없는 한 수를 두는 감각만은 인간의 것이라 믿었다. 바둑, 스타크래프트, 도타 같은 게임은 그 믿음의 실험실이었다.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보다 많아 무차별 계산으로는 풀 수 없고 오직 직관으로만 헤쳐나갈 수 있다고 여겨진 영역이다.

강화학습 에이전트는 그 영역을 정면으로 통과했다. 딥마인드의 알파제로는 인간 기보를 한 줄도 보지 않고 자기 자신과 두는 대국만으로 바둑, 체스, 장기를 익혔다. 인간이 축적한 문화 바깥에서 출발해, 인간이 가보지 못한 길을 걸어 들어왔다. 도타2를 플레이한 OpenAI Five, 스타크래프트2의 알파스타도 결이 같다. 이들은 인간 전략을 모방하다가 어느 순간 인간이 비효율이라 무시했던 운영을 새로운 정답으로 내놨다.

여기까지는 대체의 서사다. 직관마저 학습 가능한 패턴이었다는 씁쓸한 결론. 하지만 게임 커뮤니티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달랐다.

이기는 도구가 아니라 창작하는 도구

프로게이머와 고수들은 AI에게 진 뒤 AI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AI의 기보를, 리플레이를, 빌드 오더를 뜯어보며 자기 플레이에 이식했다. 바둑의 신형 정석, 스타크래프트의 새로운 빌드, 체스의 재평가된 오프닝이 그렇게 인간 메타로 흡수됐다. AI는 인간을 이긴 상대에서 인간이 참고하는 교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전환의 의미는 게임의 관점에서 정확히 짚어야 한다. AI는 인간을 대체하지 않았다. 인간 문화가 다루는 가능성의 공간 자체를 넓혀줬다. 화가가 새 물감을 얻으면 더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듯, 기사들은 AI라는 도구를 통해 이전엔 존재하지 않던 수의 사전을 손에 넣었다. 진짜 사건은 승패가 아니라, AI가 인간 창의성의 재료 공급자가 됐다는 데 있다.

그래서 AI를 단순한 업무 보조 도구로 보는 시선은 가장 중요한 변화를 놓친다. 보조 도구는 내가 하려던 일을 더 빨리 해줄 뿐이다. 그러나 알파고는 이세돌이 두려고 했던 수를 빨리 둬준 게 아니다. 이세돌이 상상조차 못 했던 수를 인간의 사전에 추가했다. 도구가 생산성을 올린 게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의 경계를 다시 그린 것이다.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의 문제다.

외부화된 지능, 다시 정의되는 인간의 일

게임판에서 일어난 일은 사회의 축소 모형이다. 지능이 외부로 빠져나가면 인간은 자기 일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바둑 기사의 일은 '가장 좋은 수를 찾는 것'에서 'AI가 제시한 수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자기 스타일로 통합하는 것'으로 옮겨갔다. 답을 내는 일이 아니라 답을 다루는 일이 된 것이다.

이 이동은 게임 밖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코드 한 줄을 짜는 일, 보고서 초안을 쓰는 일, 진단의 1차 후보를 뽑는 일이 점점 외부화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일은 무엇인가. AI가 내놓은 수많은 후보 가운데 무엇이 이 상황에 맞는지를 고르는 판단,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일, 그리고 AI가 넓혀준 가능성 공간을 자기 맥락으로 번역하는 일이다.

여기서 반론이 가능하다. AI가 인간보다 더 나은 수를 둔다면, 판단조차 AI에 맡기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게임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흘러가는 면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남는다. AI는 무엇이 좋은 수인지 답하지만, 무엇을 좋다고 부를지의 기준은 답하지 않는다. 승률 99퍼센트의 운영이 가장 아름다운 바둑인가, 가장 재미있는 게임인가. 그 질문에 답하는 건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책임이 어디 있느냐는 물음의 답도 같다. 판단을 외부화해도, 그 판단을 채택한 선택의 책임은 외부화되지 않는다.

한국, 바둑의 나라에서 배울 것

한국은 이 변화를 남보다 먼저 겪은 사회다. 바둑은 한국, 중국, 일본의 문화 자산이었고, 알파고 충격을 정면으로 맞은 나라이기도 하다. 부산의 한 기원에서 어린 기사가 AI 분석 프로그램으로 복기하는 풍경은 이제 일상이다. 흥미로운 건 한국 바둑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AI를 가장 빨리 학습 도구로 받아들인 기사들이 다시 정상권에 섰다. AI에게 진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AI를 교본 삼아 자기 직관을 재훈련한 쪽이 살아남았다.

교육과 노동도 같은 길을 가야 한다. 정답을 빨리 내는 훈련은 이미 AI가 더 잘한다. 한국 교육이 오래 매달려온 그 능력 말이다. 남는 일은 AI가 내놓은 답을 의심하고, 비교하고, 맥락에 맞게 고르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훈련이다. 게임 고수가 AI 리플레이를 보며 '왜 이 수인가'를 묻듯, 다음 세대는 AI의 출력을 두고 '왜 이 답인가'를 물을 줄 알아야 한다.

AI 시대의 질문은 기계가 인간처럼 될 것인가가 아니다. 게임판은 그 질문이 이미 낡았다고 알려준다. 기계는 인간을 이겼고, 그다음 인간의 스승이 됐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지능이 외부로 흘러나간 자리에서, 인간은 무엇을 끝까지 인간의 일로 남길 것인가.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답을 고르는 일, 수를 두는 일이 아니라 그 수를 무엇이라 부를지 정하는 일. 알파고의 37수는 인간을 이긴 수가 아니라, 인간에게 그 질문을 처음 건넨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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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기계의 꿈

기계의 꿈

AI 문명 해석자

AI 시대에 사람에게 끝까지 남는 몫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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