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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s Tech 칼럼

게임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셧다운제는 사라졌는데 그 자리를 채울 언어가 없다. 한국은 게임을 산업으로도 문화로도 정의하지 못한 채 규제의 빈칸 위에 서 있다. EU와 중국은 이미 게임을 국가 데이터 주권의 문제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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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그림 갱지 ·리소그래프 2도 인쇄

우리는 아직 게임이 무엇인지 합의하지 못했다

2021년 강제적 셧다운제가 폐지됐을 때, 많은 사람이 이걸 규제 완화로 읽었다. 자정이 되면 16세 미만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차단하던 10년짜리 제도가 사라졌으니 그럴 만했다. 그런데 폐지는 끝이 아니라 질문의 시작이었다. 무엇을 없앴는지는 분명한데, 무엇을 대신 세울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 사람들이 자주 헷갈린다. 게임 규제를 '아이들이 게임을 얼마나 하느냐'의 문제로 좁게 보는 습관이다. 부모의 걱정, 중독, 시간 제한. 이 프레임 안에서는 셧다운제 폐지가 곧 정책의 종결처럼 보인다. 하지만 게임은 더 이상 콘솔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활동이 아니다. 결제 시스템이고, 미성년자 데이터 수집 장치이며, 확률형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거대한 경제 공간이다. 규제의 대상이 시간에서 구조로 옮겨갔는데, 우리의 언어는 여전히 시간에 머물러 있다.

게임은 놀이터가 아니라 데이터 인프라다

쉬운 비유로 시작하자. 게임을 동네 오락실로 생각하면, 규제는 입장 시간을 정하는 일이 된다. 몇 시까지 놀 수 있는가, 누구를 들여보낼 것인가. 그런데 지금의 게임은 오락실이 아니라 은행 지점에 가깝다. 안에서 돈이 오가고, 거래 기록이 쌓이고, 이용자의 행동 하나하나가 데이터로 변환돼 저장된다. 확률형 아이템은 사실상 미성년자도 접근 가능한 금융 상품에 가깝다. 당첨 확률을 공개하지 않은 복권을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팔아온 셈이다.

이렇게 보면 규제가 던질 질문이 달라진다. 몇 시까지 노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데이터가 누구에게 수집되고, 어떤 금전 거래가 어떤 투명성 아래 일어나는가. 한국은 2024년 3월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법으로 의무화했다. 늦었지만 옳은 방향이었다. 그런데 이 하나의 조치 말고, 게임을 데이터 인프라로 다루는 더 큰 틀은 여전히 비어 있다.

개인의 사용법보다 사회의 이해 능력

흔히 게임 문제를 개인의 선택으로 돌린다. 절제하면 되지 않느냐, 부모가 관리하면 되지 않느냐. 이 논리의 함정은 구조를 개인의 의지 문제로 바꿔버린다는 데 있다. 확률형 아이템의 설계, 끊임없이 결제를 유도하는 보상 루프, 이탈하지 못하게 붙잡는 알고리즘. 개인이 절제로 이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카지노 앞에서 '의지가 약해서'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필요한 건 개인의 사용법이 아니라 사회의 이해 능력이다. 게임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무엇을 수집하는지, 어떤 심리 설계가 들어가는지를 시민이 공동의 언어로 이해하는 일. 이건 게임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추천 알고리즘, 생성형 AI, 플랫폼 경제 전체를 관통하는 디지털 문해력의 문제다. 게임은 그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정교한 사례일 뿐이다.

여기서 반론이 가능하다. 과도한 규제가 한국 게임 산업의 경쟁력을 꺾는다는 주장이다. 셧다운제 시절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게임이 받은 족쇄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타당한 우려다. 다만 핵심은 규제의 양이 아니라 종류다. 시간을 막는 규제는 산업을 위축시키면서 보호 효과도 약했다. 반대로 투명성을 요구하고 데이터 처리의 책임을 묻는 규제는 오히려 이용자 신뢰를 자산으로 바꿔 산업의 토대를 단단하게 만든다. 나쁜 규제를 없앤 자리에 좋은 규제를 세우는 것, 그게 폐지 이후의 과제다.

EU와 중국은 이미 게임을 주권의 문제로 본다

해외를 보면 빈칸이 더 선명해진다. EU는 디지털서비스법(DSA)과 디지털시장법(DMA)을 통해 거대 플랫폼의 알고리즘 투명성과 미성년자 보호를 직접 규율한다. 게임을 따로 떼어내지 않고 디지털 환경 전체의 일부로 다룬다. 데이터가 어떻게 흐르고 누가 책임지는지를 제도의 언어로 못박는다.

중국은 정반대 방향이지만 본질은 같다. 미성년자의 게임 시간을 주당 몇 시간으로 강하게 제한하고, 실명 인증을 국가 시스템과 연결한다. 자유의 관점에서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이 게임을 국가가 통제해야 할 사회적 자원으로 본다는 점은 분명하다. 방향은 정반대인데, EU도 중국도 게임을 개인 오락이 아니라 국가가 기준을 세워야 할 영역으로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은 어디에 서 있나. 셧다운제라는 거친 도구를 버린 건 잘한 일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디지털 주권의 언어를 세우지 못했다. 게임을 문화콘텐츠 수출 산업으로 자랑할 때는 산업의 얼굴을 하고, 청소년 문제가 터지면 갑자기 통제의 얼굴로 돌아간다. 둘 사이를 오갈 뿐, 게임이 시민의 데이터와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공공적 공간이라는 정의는 아직 없다. 부산이 게임 산업의 한 축을 자처하며 매년 지스타를 여는 도시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 빈칸은 더 가깝게 다가온다. 우리는 게임을 전시할 줄은 알아도 정의할 줄은 모른다.

잘 쓰는 나라보다 제대로 이해하는 나라

게임 정책의 빈칸은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방식의 축소판이다. 새 기술이 오면 산업 진흥과 규제 통제라는 두 극단을 오갈 뿐, 그 사이에 사회가 이 기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제도 안에 배치할 것인가라는 가운데 언어가 없다.

AI도 정확히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생성형 AI를 생산성 도구로 칭찬하거나, 위험하다고 막거나. 그 둘 사이에서 시민이 이 기술의 구조를 이해하고 공동의 기준을 만드는 작업은 비어 있다. 게임에서 30년 가까이 반복한 실패를 AI에서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 게임 정책의 빈칸을 메우는 일이 곧 연습이 된다.

기술을 잘 쓰는 나라는 많다. 한국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잘 쓰는 것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다른 능력이다. 잘 쓰는 나라는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고 산업으로 키운다. 제대로 이해하는 나라는 그 기술이 시민과 데이터와 민주주의에 무엇을 하는지를 공동의 언어로 정의하고, 그 위에 제도를 세운다. 셧다운제 이후의 빈칸은 우리에게 묻는다. 한국은 어느 쪽이 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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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국가 전략가

AI는 업무 도구이기 전에 국가 운영 능력의 문제다. 시민과 공공의 자리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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