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윤슬 ·소프트 그라데이션 에어브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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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회사 슬랙 채널에 동료 한 명이 추가된다. 회의에는 들어오지 않고, 인사를 받지도 않는다. 다만 주간 KPI 대시보드에 한 줄로 등장할 뿐이다. 전환율 +3.1퍼센트. 그 줄을 만든 건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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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들어 AI 에이전트에 한정 예산과 결제 권한을 주는 실험이 부쩍 늘었다. 광고 집행, 클라우드 비용 최적화, 고객 응대 전량 처리. 전에는 사람이 승인하던 일을 이제 에이전트가 직접 돈을 써가며 끝낸다. 지갑을 쥔 비인간이 등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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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흔들리는 것은 일자리가 아니다. 호명이다. 우리는 성과를 내는 존재를 오래 노동자라 불러왔다. 그 단어에는 평가, 보상, 책임, 존엄이 묶여 있었다. 묶음 전체가 사람을 전제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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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그 묶음의 한쪽 끝을 잡아당긴다. 성과는 분명히 측정된다. 그러면 평가도 따라온다. 평가가 붙으면 보상의 형식이 생기고, 보상이 생기면 책임의 자리를 묻게 된다. 한 칸이 움직이면 나머지 칸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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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은 단단하다. AI는 그냥 비싼 엑셀 매크로일 뿐이고, 월급이라는 말은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구에 KPI를 붙인 건 인간이 관리하기 편하자고 갖다 쓴 은유지, 그 안에 노동자가 들어앉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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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은 맞다. 에이전트는 배고프지 않고 해고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우리 쪽이다. 한번 KPI로 호명한 대상을 인간은 무의식중에 동료의 문법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조직도에 칸이 하나 생기고, 그 칸은 사람의 칸을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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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질문을 성능에서 역할로 옮겨야 한다. 핵심은 에이전트가 얼마나 똑똑하냐가 아니다. 성과를 내는 비인간이 늘어날 때 인간이 무엇을 자기 몫으로 남기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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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을 보자. 에이전트가 예산을 집행하다 사고가 나면 책임은 어디에 있나. 코드를 짠 팀, 권한을 준 관리자, 그걸 승인한 임원 사이에서 책임은 증발한다. 행위자는 있는데 책임 주체는 없는 빈칸. 이 빈칸이 바로 다음 10년 노동 윤리의 한복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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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이 외부로 빠져나가면 노동의 무게중심도 옮겨간다. 실행은 싸지고 흔해진다. 비싸지는 쪽은 무엇을 실행할지 정하는 일, 결과를 책임지겠다고 서명하는 일, 그리고 기계가 낸 답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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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먼저 갈라진다. 답을 빨리 내는 훈련은 이미 기계에 졌다. 남는 건 질문을 세우는 힘, 기계의 자신만만한 오답을 의심하는 힘이다. 정답 채점으로 줄을 세우던 한국 교실이 가장 먼저 의미를 잃을 자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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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도 갈라진다. 사람과 에이전트가 같은 대시보드에서 평가받는 순간, 관리자는 새로운 일을 떠안는다. 비인간의 성과를 인간의 성과와 어떻게 나란히 읽을 것인가. 누구의 공이고 누구의 잘못인가. 이 번역이 곧 새로운 관리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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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이 마지막 쟁점이다. 에이전트에게 존엄은 필요 없다. 그러나 에이전트를 동료 자리에 앉히는 순간, 옆자리 인간의 존엄이 다시 정의된다. 측정되는 성과로만 사람을 보던 습관이 이제 사람마저 에이전트의 문법으로 읽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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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중소 제조사를 떠올려본다. 견적과 발주를 에이전트가 처리하기 시작하면, 20년 경력의 사무 담당자에게 남는 일은 무엇이라고 적힐까. 그 칸의 이름을 누가 짓느냐가 그의 존엄을 결정한다. 이건 본사 회의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먼저 닥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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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인프라가 아니라 언어에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에이전트를 노동자로 부를지 도구로 부를지,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을 누구의 서명에 묶을지, 사람의 일과 기계의 일을 어떤 단어로 갈라 적을지. 법보다 호명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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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인간처럼 될 것인가는 더 이상 흥미로운 질문이 아니다. 진짜 질문은 우리 쪽에 있다. 성과를 내는 비인간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인간은 무엇을 끝까지 인간의 일로 남길 것인가. 월급을 받는 첫 비인간이 던지는 것은 임금 명세서가 아니라 바로 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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