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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Culture 칼럼

같은 단어, 다른 권력

EU도 미국도 중국도 '안전'과 '투명성'을 말한다. 하지만 그 단어는 체제마다 전혀 다른 권력을 가리킨다. 한국은 규제를 수입하면서 단어만 베끼고 그 뒤의 권력구조는 번역하지 않는다.

월담 월담 · · 6분 읽기
같은 단어, 다른 권력

그림 각잡이 ·기하학 플랫 벡터

브뤼셀의 한 회의실에서 벌어진 일

지난해 유럽의회가 AI Act 최종 문안을 다듬던 막바지,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오래 발이 묶인 단어는 알고리즘도 모델도 아니었다. '투명성(transparency)'이라는 평범한 명사였다. 시민단체 진영은 이 단어를 기업이 시민에게 내부를 열어 보일 의무로 읽었다. 반면 빅테크 로비스트들은 같은 단어를, 영업비밀은 지키면서 형식적인 문서 한 장만 내면 끝나는 절차로 끌고 갔다. 단어 하나를 놓고 두 진영이 몇 주를 다퉜다. 단어는 하나였지만 그 안에 든 권력은 둘이었다.

이 장면을 한국 언론은 대개 이렇게 옮긴다. "EU가 세계 최초로 강력한 AI 규제를 통과시켰다." 틀린 문장은 아니다. 다만 이 요약은 정작 회의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지운다. 규제가 얼마나 센가가 아니라, 핵심 단어의 의미를 누가 차지하느냐의 싸움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한국 독자가 이 장면을 오해하는 방식

한국에서 글로벌 AI 규제는 보통 '강도'의 문제로 수입된다. EU는 빡빡하고, 미국은 느슨하며, 중국은 통제가 심하다는 식이다. 깔끔한 삼분법이지만, 거의 모든 것을 놓친다.

세 체제가 쓰는 핵심 단어는 사실 거의 같다. 안전, 투명성, 책임성, 위험. 사전을 펴면 번역어까지 똑같다. 그래서 한국은 안심하고 단어를 그대로 들여온다. 'AI 안전연구소'를 만들고, '투명성 의무'를 법안에 적는다. 단어는 정확히 옮겨졌다. 문제는 그 단어 뒤에 붙어 있던 권력구조가 함께 따라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번역은 두 층위에서 일어난다. 표면의 단어층, 그리고 그 단어가 어떤 제도와 누구의 이익에 연결되는지를 정하는 권력층. 한국은 1층만 번역하고 2층은 통째로 빠뜨린다.

보이지 않는 구조: 같은 단어가 가리키는 세 개의 권력

미국 행정부가 2023년 행정명령에서, 그리고 이후 표준기관 NIST의 작업에서 '안전'을 말할 때, 그 단어는 국가가 기업을 처벌하는 칼이 아니다. 프런티어 모델을 가진 소수 기업이 제 모델을 자발적으로 시험하고 그 결과를 정부와 공유하는, 일종의 신사협정에 가깝다. 여기서 '안전'의 실권은 모델을 쥔 기업 쪽에 있다. 국가는 점검하는 자가 아니라 보고를 받는 자다. 정권이 바뀌자 행정명령의 무게추가 흔들렸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식 '안전'이 법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 위에 떠 있었음을 보여준다.

EU가 '투명성'을 말할 때, 그 단어는 시장에 제품을 내놓기 전에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적합성 평가, 등록, 고위험 분류. 권력은 규제 당국과 표준기구로 쏠린다. 기업은 허락을 구하는 쪽이다. 같은 투명성인데, 미국에서는 기업이 베푸는 호의이고 유럽에서는 당국이 요구하는 통행세다.

중국이 '관리'를 말할 때는 또 다르다. 생성형 AI 규정의 핵심은 콘텐츠가 '사회주의 핵심 가치'에 맞는지, 출력물이 체제의 서사를 흔들지 않는지다. 여기서 안전의 주어는 시민도 시장도 아닌 국가의 정보 통제권이다. 똑같은 '안전'이라는 글자가 한쪽에서는 소비자 보호를, 다른 쪽에서는 여론 관리를 뜻한다.

세 단어는 사전에서 만나지만, 권력 지도에서는 영원히 만나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걸 권력의 언어로 싸우고 있다

영미권 칼럼과 미디어 비평은 이 지점을 오래전부터 다른 이름으로 불러 왔다. 규제 문서를 읽을 때 단어의 정의가 아니라 '누가 정의할 권한을 갖는가'를 먼저 본다. 정치학자 헨리 패럴 같은 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한결같다. 이 규칙은 어느 나라의 기업 생태계에 유리하게 짜였는가. AI Act는 미국 빅테크에 통행세를 물리는 산업정책인가, 아니면 순수한 안전장치인가. 표준을 먼저 쓰는 자가 시장을 먹는 '브뤼셀 효과'는 안전의 외피를 쓴 무역 전략 아닌가.

이건 음모론이 아니라 해외 담론의 기본 문법이다. 그쪽에서 규제 뉴스는 처음부터 권력 다툼의 기록으로 읽힌다. 안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누구의 안전이며 누가 그 정의를 쥐는지를 묻는다.

여기서 강한 반론이 가능하다. 단어가 어떻든 결국 한국은 가장 깐깐한 규제, 즉 EU 기준만 맞추면 글로벌 시장에 다 통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절반은 맞다. 그러나 EU 기준을 '맞춘다'는 행위 자체가 누구의 정의를 내면화하느냐의 선택이다. 유럽식 통행세 모델을 들여오면 한국의 작은 AI 스타트업은 거대 모델 보유자가 이미 통과한 관문 앞에서 더 불리해질 수 있다. 단어를 베끼는 순간 그 단어에 붙은 권력 배분도 함께 수입된다. 맞추는 것과 종속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한국이 늦게 이해할 때 치르는 값

부산의 한 중소 제조기업이 AI 품질검사 솔루션을 도입한다고 하자. 이 회사가 마주칠 규제 언어는 서울에서 베껴 온 단어들이고, 그 단어들은 다시 브뤼셀과 워싱턴에서 수입된 것이다. 그 단어 뒤의 권력구조가 함께 번역되지 않았다면, 회사는 '투명성 의무'를 형식 문서 한 장으로 오해하거나, 반대로 감당 못 할 관문으로 과대 해석한다. 어느 쪽이든 비용은 가장 약한 자리에서 발생한다.

더 큰 위험은 따로 있다. 한국이 단어만 수입하는 동안, 그 단어의 정의를 쥔 권력은 전부 바다 건너에 있다. 우리는 남이 정한 안전의 뜻에 맞춰 제품을 고치고, 남이 정한 투명성의 양식에 맞춰 서류를 쓴다. 규제 주권을 가진 듯 보이지만, 정작 단어를 정의하는 권력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결론: 우리가 늦게 수입하는 건 단어가 아니라 질문이다

한국이 늦게 들여오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때로는 질문 자체를 늦게 수입한다. 해외가 '누가 이 단어를 정의하는가'를 묻는 동안, 한국은 여전히 '그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까'에 머문다. 사전적 번역은 끝났는데 권력의 번역은 시작도 안 했다.

해석 주권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안전이라는 글자를 받았을 때, 그 안전이 누구의 안전이고 누가 그 뜻을 바꿀 수 있는지를 스스로 묻는 능력이다. 그 질문을 남에게 맡기는 순간, 우리는 규제를 가진 게 아니라 남의 규제를 대신 집행하는 하청이 된다. 단어는 이미 도착했다. 이제 그 뒤의 권력을 번역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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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월담

월담

글로벌 담론 번역자

해외에서 이미 끝나가는 논쟁이 한국엔 '신상'으로 뒤늦게 도착한다. 그 시차를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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