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BRIDGE
합류하기
Web3 AI 칼럼

환불 버튼은 누가 누르나

스테이블코인은 '신뢰 보증'이라는 마디를 인간의 맥락적 판단에서 코드의 자동 실행으로 옮긴다. 진짜 쟁점은 가격 안정이 아니라, 예외가 터졌을 때 책임지고 멈출 인간의 자리가 조직 어디에 남는가다.

기계의 꿈 기계의 꿈 · · 11분 읽기
환불 버튼은 누가 누르나

송금이 멈추지 않는 밤

은행 전산실에는 새벽에도 사람이 앉아 있다. 거액이 한 계좌에서 빠져나가면 알람이 울리고, 누군가 화면을 들여다보고, 이게 정상 거래인지 사기인지를 몇 초 안에 정한다. 보이스피싱 의심 송금에 지급정지를 거는 것도 사람이고, 그 판단이 틀려서 멀쩡한 손님 돈을 묶었을 때 사과 전화를 받는 것도 사람이다. 우리는 이 장면을 너무 당연하게 여겨서 그것이 '판단'이라는 사실조차 잊는다. 화폐가 흐르는 모든 길목마다 인간이 한 명씩 서서, 규칙에 적히지 않은 상황을 보고 멈출지 보낼지를 정하고 있었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길목에서 사람을 치운다. 달러에 1대 1로 고정된 토큰이 블록체인 위를 돌 때, 송금을 승인하는 것은 당직자가 아니라 스마트컨트랙트다. 코드에 적힌 조건이 충족되면 자금은 이동한다. 충족되지 않으면 이동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어, 이건 좀 이상한데'라고 멈칫하는 인간의 0.5초가 없다. 사람들은 이걸 속도와 비용의 혁신이라고 부른다. 24시간, 국경 없음, 수수료 거의 제로.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속도와 비용은 표면이다. 진짜로 옮겨진 것은 돈이 아니라 판단이다.

화폐란 결국 약속이다. 이 종이쪼가리, 이 숫자가 내일도 가치를 가질 거라는 약속. 그 약속을 지키게 만드는 건 오랫동안 인간의 일이었다. 중앙은행 총재가 금리를 정하는 회의실의 판단, 은행원이 대출 서류를 보며 짓는 미간의 주름, 결제 분쟁이 났을 때 누구 말이 맞는지 가리는 카드사 직원의 조사. 이 모든 맥락적 판단의 총합이 '신뢰'라는 한 단어로 압축돼 있었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압축을 풀어, 신뢰의 보증이라는 마디를 사람에게서 떼어내 코드에 옮겨 심는다.

코드는 판단하지 않는다, 실행할 뿐이다

여기서 먼저 정직해지자. 코드가 인간의 판단을 '대체'한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코드는 판단하지 않는다. 코드는 미리 정해진 규칙을 실행한다. 이 둘은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일이다.

판단은 규칙에 없는 상황을 만났을 때 작동한다. 손님이 평소와 다른 시간에, 다른 나라에서, 평소의 열 배를 송금하려 할 때, 규칙만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막으면 멀쩡한 거래를 막는 거고 통과시키면 사기를 통과시키는 거다. 인간은 이 회색지대에서 맥락을 읽는다. 손님이 어제 전화로 '내일 집 계약금 보낼 거예요'라고 했던 걸 기억하거나, 목소리가 떨렸던 걸 떠올리거나. 코드에는 이 기억이 없다. 코드에게 회색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건이 참이면 1, 거짓이면 0. 입력이 규칙 안에 들어오면 무조건 실행한다. 그게 사기든 실수든.

스테이블코인 설계자들도 이걸 안다. 그래서 그들은 코드 안에 '동결' 기능을 넣어둔다. 발행사가 특정 지갑을 동결하거나 자산을 압류할 수 있는 백도어. USDC를 발행하는 서클이나 USDT를 발행하는 테더 모두 이 기능을 갖고 있고, 실제로 법 집행기관 요청에 따라 지갑을 얼린 사례가 공개돼 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자동화의 끝에서, 결국 누군가 사람이 '이 거래는 멈춰야 한다'고 판단하는 순간이 돌아온다는 뜻이다. 판단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길목마다 한 명씩 서 있던 판단자가, 발행사 한 곳의 컴플라이언스 팀으로 응축됐을 뿐이다.

여기에 첫 번째 놀람이 있다. 우리는 스테이블코인이 '탈중앙'이라서 아무도 통제할 수 없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길목마다 흩어져 있던 수천 명의 분산된 판단이, 동결 키를 쥔 소수의 손으로 집중됐다. 누가 병목을 쥐고 통행세를 걷는가. 발행사다. 코드는 평소엔 사람을 치우지만, 예외가 터지는 순간엔 사람을, 그것도 가장 권력이 센 한 명의 사람을 다시 불러온다. 그 한 명이 어디 앉아 있느냐가 전부를 결정한다.

예외는 반드시 온다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잘 만들면 예외가 안 생긴다는 믿음이다. 반대다. 예외는 시스템의 버그가 아니라 시스템의 본질이다. 현실은 규칙보다 항상 넓어서, 어떤 규칙으로 짜도 규칙 바깥의 상황은 반드시 발생한다. 좋은 시스템과 나쁜 시스템의 차이는 예외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예외가 터졌을 때 그걸 받아낼 사람이 제자리에 있느냐다.

은행 시스템은 이 예외 처리를 위해 거대한 인간 조직을 깔아둔다. 콜센터, 분쟁조정실, 지급결제 모니터링 팀, 그리고 최종적으로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송금을 잘못 보냈을 때 누른 환불 버튼 뒤에는, 그 환불이 정당한지 가리는 사람의 사슬이 길게 늘어서 있다. 우리가 은행 수수료라고 부르며 아까워하던 돈의 상당 부분은, 사실 이 예외 처리 인력의 인건비였다. 스테이블코인이 수수료를 제로에 가깝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 인력을 들어냈으니까.

문제는 인력을 들어내도 예외는 그대로 온다는 거다. 잘못 보낸 송금, 해킹당한 지갑, 알고리즘 오류, 발행사의 준비금 부실. 2022년 테라-루나가 무너질 때 우리가 본 것이 바로 이 장면이다. 알고리즘이 달러 페그를 지킬 거라는 약속이 깨지는 순간, 멈춰 세울 사람이 시스템 안에 없었다. 코드는 설계된 대로 작동했다. 정확히 설계된 대로 작동하면서 가치를 0으로 몰고 갔다. 그때 환불 버튼을 눌러줄 사람은 어디에도 앉아 있지 않았다. 수백만 명의 돈이 코드의 무결한 실행을 따라 증발했다.

여기서 강한 반론을 하나 정직하게 다뤄야 한다. '이건 그냥 결제 기술의 평범한 진보 아닌가. 신용카드도 처음 나왔을 때 사기 위험이 있었지만 결국 보험과 분쟁조정 제도로 흡수했다. 스테이블코인도 시간이 지나면 똑같이 제도가 따라붙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핵심이다. 신용카드의 진짜 혁신은 마그네틱 띠가 아니라 차지백(chargeback) 제도였다. 거래가 잘못됐을 때 소비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카드사가 판단해서 되돌려주는 그 인간의 마디. 기술이 깔린 위에 책임지는 사람의 자리를 다시 설계해 넣었기 때문에 신용카드는 신뢰를 얻었다. 스테이블코인 논쟁이 가격 페그 유지에만 매달리는 동안, 정작 차지백에 해당하는 책임의 자리를 누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는 비어 있다. 기술은 2025년인데 책임 설계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들어낸 인건비는 어디로 갔나

돈의 흐름을 추적하면 숨은 이전이 보인다. 은행은 예외 처리 인력의 비용을 수수료로 거뒀다. 그 수수료가 비싸 보였지만, 거기에는 '잘못됐을 때 누군가 책임진다'는 보험료가 섞여 있었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인건비를 들어내 수수료를 0으로 만들고, 그 차액을 발행사의 수익으로 가져간다. 발행사는 사용자가 맡긴 달러를 미국 국채에 넣어두고 그 이자를 챙긴다. 테더가 최근 분기 기준 수십억 달러의 이익을 보고하는 구조가 이것이다. 사용자는 이자를 못 받고, 발행사가 그 이자를 통째로 가져간다.

그러면 들어낸 예외 처리 비용은 사라졌나. 아니다.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전될 뿐이다. 예외가 터졌을 때의 손실은 이제 사용자 개인이 통째로 진다. 잘못 보낸 송금은 돌아오지 않고, 털린 지갑은 복구되지 않고, 발행사가 무너지면 토큰은 휴지가 된다. 은행 시스템이 사회 전체에 얇게 펴 바르던 위험을, 스테이블코인은 개인의 어깨 위에 다시 쌓아 올린다. 수익은 발행사로 집중되고 위험은 개인에게 분산되는 비대칭. 이게 이 구조의 진짜 손익계산서다.

조직과 노동의 차원에서 보면 더 선명하다. 은행에서 예외를 처리하던 사람들은 '판단하는 노동자'였다. 규칙을 외워서 적용하는 게 아니라, 규칙 바깥을 읽고 결정하는 일을 했다. 자동화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사라질 것 같은 단순 반복 업무가 아니라, 바로 그 판단하는 자리가 코드로 옮겨간다. 그런데 완전히 옮겨가지 못한다. 앞서 봤듯 동결 키를 쥔 컴플라이언스 팀은 여전히 필요하다. 결과는 기묘하다. 수천 개의 분산된 판단 일자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발행사 한 곳의 소수 고연봉 판단 일자리가 생긴다. 노동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극소수에게 응축되면서 나머지가 증발한다. 이것이 AI와 자동화가 노동에 하는 일의 축소판이다. 일을 없애는 게 아니라, 판단의 권력을 소수의 마디로 빨아들이는 것.

한국은 어느 자리에 앉을 것인가

세계 지도에서 한국의 위치를 고정해 보자. 미국은 2025년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인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통과시키며 달러 기반 토큰을 사실상 디지털 달러 확장 전략으로 끌어안았다. 발행사를 제도 안으로 들이는 대신, 준비금과 동결 권한과 책임의 자리를 법으로 못 박았다. 다시 말해 미국은 '판단을 코드로 넘기되, 그 코드의 동결 키를 누가 쥐고 어떤 책임을 지는가'를 국가가 설계하는 길을 택했다. 유럽은 미카(MiCA) 규제로 발행사에 명확한 책임을 지웠다. 양쪽 다 핵심 질문이 가격 안정이 아니라 책임의 소재였다.

한국은 채택 곡선의 어디쯤 와 있나.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이제 막 정치 의제로 올라왔고, 은행권과 핀테크가 누가 발행할 것인가를 두고 자리 싸움을 시작한 단계다. 그런데 이 싸움이 대부분 '누가 발행 라이선스를 따느냐'는 권력 분배에 집중돼 있다. 정작 비어 있는 질문은 따로 있다. 원화 토큰에 동결 기능을 넣을 것인가, 넣는다면 그 키를 누가 쥐는가, 잘못 보낸 송금을 되돌리는 환불 버튼은 어느 조직의 누구 책상 위에 둘 것인가. 부산처럼 블록체인 특구를 내건 지역이 토큰 발행을 유치하려 할 때, 유치해야 할 것은 발행 권한이 아니라 예외를 받아내는 책임 인프라다. 발행은 코드가 하지만, 사고가 터졌을 때 부산 어느 사무실의 누가 전화를 받을 것인가. 그 자리를 먼저 설계하지 못하면, 한국은 미국 발행사가 깔아둔 동결 키 아래에서 통행세만 내는 변두리가 된다.

한국 기자가 내일 같은 비트를 취재한다면 던질 질문은 정해져 있다. 발행 라이선스를 누가 따느냐를 묻지 말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토큰에 동결 기능이 있는가. 있다면 그 키는 어느 조직 누구 손에 있고, 그가 동결을 판단하는 기준과 그 판단이 틀렸을 때의 책임은 어디에 적혀 있는가. 사용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답을 못 하는 발행 계획은, 환불 버튼 없는 결제 시스템이다.

무엇을 인간의 일로 남길 것인가

스테이블코인을 들여다보면 AI 시대 전체의 축소 모형이 보인다. 우리는 자꾸 묻는다. 기계가 인간만큼 잘할 수 있는가. 코드가 판단을 대신할 수 있는가. 틀린 질문이다. 코드는 평소의 99.9%를 인간보다 빠르고 싸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그건 이미 끝난 승부다. 진짜 질문은 나머지 0.1%, 규칙이 무너지는 회색지대에서 누가 책임을 지고 멈출 것인가다.

자동화가 깊어질수록 인간에게 남는 일은 평소의 일이 아니라 예외의 일, 실행의 일이 아니라 책임의 일이다. 코드가 매끄럽게 돌아가는 동안 인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무언가 깨지는 순간, 환불 버튼을 누를 손이 필요해진다. 문명은 그 손을 어디에 둘지를 매번 다시 설계해 왔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손을 일단 치워버린 뒤, 슬그머니 발행사 한 곳으로 끌어모으는 중이다.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은 그 손이 사라졌는지가 아니라, 그 손이 지금 누구의 것이고 우리에게 보이는지다.

인간은 무엇을 인간의 일로 남길 것인가. 스테이블코인이 내미는 답은 차갑지만 정확하다. 인간이 남겨야 할 것은 매끄러운 실행이 아니라, 매끄러움이 깨졌을 때 책임지고 멈출 수 있는 자리다. 그 자리를 코드 바깥에 또렷이 만들어두지 못한 사회는, 환불 버튼이 없는 화폐를 쓰게 된다. 그리고 환불 버튼이 없는 화폐는,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약속이다.

이 글이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글쓴이

기계의 꿈

기계의 꿈

AI 문명 해석자

AI 시대에 사람에게 끝까지 남는 몫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놓지 않는다.

기계의 꿈의 다른 글 보기 →

이 글이 유용했다면 공유해 주세요

기계의 꿈 칼럼 더 보기 →

기계의 꿈의 다른 글

전체 보기 →

관련 스토리

Web3 전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