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각잡이 ·기하학 플랫 벡터
우리는 잘못된 숫자를 세고 있다
AI 인재가 빠져나간다는 기사에는 거의 항상 연봉 표가 붙는다. 실리콘밸리는 얼마, 한국 대기업은 얼마, 격차가 몇 배. 그래서 돈을 더 줘야 한다는 결론으로 간다. 이 프레임이 편한 이유는 단순하다. 연봉은 셀 수 있다. 표로 만들 수 있고, 예산으로 메울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떠난 사람들의 말을 모아보면 돈이 1번인 경우가 의외로 드물다. 더 자주 나오는 문장은 이쪽이다. 여기서는 풀고 싶은 문제를 풀 수 없었다. 모델을 한 번 제대로 돌려볼 컴퓨팅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인재를 붙드는 문제를 개인의 보상 문제로 축소해서 보고 있다. 떠나는 건 사람이지만, 빠져나가는 건 그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능력이다.
보이지 않는 두 자원
AI 연구자에게 결정적인 자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연산 접근권이다. 대형 모델을 훈련하고 실험하려면 GPU 같은 가속기가 대규모로 필요하다. 개인이 노트북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망원경에 빗댈 수 있다. 천문학자가 아무리 똑똑해도 큰 망원경 앞에 줄을 설 수 없으면 그가 볼 수 있는 우주는 작아진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의 문제다.
다른 하나는 문제의 크기다. 연구자는 자기가 다루는 문제의 규모만큼 자란다. 수억 명이 쓰는 시스템의 안전성을 설계하는 사람과 사내 데모용 챗봇을 만드는 사람은 1년 뒤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큰 문제는 큰 데이터와 큰 연산이 있는 곳에 모인다. 그래서 인재는 돈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문제를 따라간다. 연봉은 그 문제에 따라붙는 부산물에 가깝다.
여기서 역수입 구조가 생긴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인재가 해외에서 큰 문제와 큰 연산을 경험하고, 그 경험치를 가진 채 다시 들어온다.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이 흐름이 국가전략 차원에서 관리되지 않으면, 우리는 인재 양성의 비용은 치르고 결정적 성장기의 결과물은 남에게 빌려주는 구조에 갇힌다.
이건 인사 문제가 아니라 인프라 문제다
연산과 문제 접근권을 자원으로 보는 순간 질문이 바뀐다. 누구에게 연봉을 더 줄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큰 연산과 좋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개인 생산성의 문제가 아니다. AI를 각자 알아서 잘 쓰는 도구로만 보면 이 질문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공공의 역할이 여기서 갈린다. 국가가 가진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는 공공 데이터다. 행정, 의료, 교통, 교육 기록은 잘 정제되면 세계적으로도 드문 연구 자원이 된다. 문제는 이 데이터가 부처별로 흩어져 있고, 연구자가 안전하게 접근할 표준 통로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누가 어떤 조건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 그 결과에 누가 책임지는지를 두고 공통 언어가 없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큰 문제를 풀 재료가 분명히 나라 안에 있는데, 그 재료를 만질 방법은 밖에 더 잘 갖춰져 있는 셈이다.
한국이 아직 비워둔 칸
지금 한국에 빠져 있는 건 두 개의 제도적 칸이다. 하나는 공공 연산 인프라다. 대학과 스타트업, 지역 연구자가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대규모 연산을 쓸 수 있는, 전기와 도로 같은 기반 시설로서의 컴퓨팅. 다른 하나는 공공 데이터에 대한 책임성의 언어다. 접근 권한과 익명화 기준, 오남용 시 책임 소재를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정의한 규칙. 이 두 칸이 비어 있는 한 보상만으로는 흐름을 돌릴 수 없다.
여기에 강한 반론이 있다. 연산은 결국 돈이고, 돈이면 글로벌 기업을 못 이긴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절대 규모로는 못 이긴다. 하지만 국가가 할 일은 가장 큰 연산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가장 공정한 접근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기업의 연산은 그 기업의 문제에만 열린다. 공공이 만드는 연산은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 시장이 외면하는 문제에도 열릴 수 있다. 규모 경쟁이 아니라 접근권의 설계가 국가가 둘 수 있는 수다.
부산 같은 지역에는 이게 더 절실하다. 지방이 인재를 붙들겠다며 연봉으로 수도권과 글로벌 기업을 따라가는 건 처음부터 지는 게임이다. 대신 지역 산업의 진짜 데이터, 항만 물류, 제조 공정, 고령 도시의 의료 기록 같은 구체적이고 큰 문제를 연구자에게 열어주고 거기에 연산을 붙이면, 돈으로는 못 사는 것을 줄 수 있다. 다른 데서는 만질 수 없는 문제다.
결국 핵심은 이것이다. AI를 잘 쓰는 나라는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인재가 왜 떠나고 왜 돌아오는지, 그것이 연봉이 아니라 연산과 문제의 흐름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나라는 적다. 잘 쓰는 나라보다 제대로 이해하는 나라가 결국 인재를 붙든다.
이 글이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이 글이 유용했다면 공유해 주세요
받아쓰기 칼럼 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