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어느 1인 창업자가 노트북 화면에 코를 박은 채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 에러 좀 봐줄 수 있어?" 답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창밖에서는 데이터센터 공사장 크레인이 부산의 밤하늘을 천천히 가로지른다. 같은 도시, 같은 'AI 허브'라는 이름 아래. 그러나 둘의 거리는 멀다.
부산은 2023년부터 'AI 허브'를 내걸었다. 데이터센터, 대형 투자 펀드, 줄줄이 이어지는 AI 행사. 선언은 웅장하다. 문제는 그 웅장함이 현장에 도착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거대한 계획 뒤의 작은 소리
크레인은 하늘을 채운다. 그런데 그 아래, 좁은 사무실에서 노트북 한 대에 사업 전체를 건 작은 팀들이 있다. 이 불균형이 진짜 장벽을 드러낸다. 데이터센터와 자금 지원이라는 큰 그림은 멋지지만, 정작 이들이 매일 부딪치는 건 다른 종류의 벽이다. 공공 데이터에 접근하려 해도 문이 잠겨 있고, 인터넷은 회의 도중 끊기며, 최신 AI 연구를 따라잡을 교육과 정보는 수도권에 가 있다.
이상과 현실은 어긋난다. 대형 행사 무대에서 유명 인사가 마이크를 잡고 거대 기업이 투자 의향서를 흔드는 동안, 친구의 손을 빌려 코드 한 줄을 디버깅하는 창업자는 자기가 이 잔치의 손님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박수는 무대 위에서만 터진다.
보이지 않는 벽, 그리고 대응
진짜 병목은 콘크리트가 아니다. 사람이다. AI 개발자와 전문가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부산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결과는 단순하다. 중소 규모 창업팀은 숙련된 인재를 구하지 못한 채, 한 사람이 세 사람 몫을 떠안는다.
두 번째 벽은 더 의외다. 바로 법과 규제의 빈틈이다. 기술은 달려가는데 규제는 그 속도를 못 따라가고, 그 사이의 공백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가령 어떤 스타트업은 보유한 데이터를 어디까지 써도 되는지 법 해석이 모호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결정을 몇 달째 미룬다. 인프라가 없어서가 아니다. 누구도 "해도 된다"고 명확히 말해주지 않아서다. 필요한 건 또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현장과 머리를 맞대고 답을 빨리 내려줄 법률적 지원이다.
AI 창업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거대한 경쟁자도, 두툼한 자본도 아니다. 비효율적인 시스템과 멈춰 선 규제다.
부산의 AI 허브 선언이 말의 무게를 가지려면, 눈에 보이는 인프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데 힘을 써야 한다. 역동적인 생태계는 크레인이 만들지 않는다. 정책을 짜는 사람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들은 만큼 빠르게 움직일 때 만들어진다.
막대한 자본과 화려한 무대만으로는 허브가 되지 않는다. 다시 그 새벽 두 시의 사무실로 돌아가자. 노트북 불빛 하나에 미래를 건 사람의 메시지에 누군가 제때 답해줄 때, 비로소 부산은 이름값을 한다. 크레인이 아니라, 그 답장이 도시를 바꾼다.